▲ 올 9월 초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군사전시회 2003’에 처음 선보인 국내 개발 중어뢰 ‘백상어’(왼쪽)와 경어뢰 ‘청상어’(가운데)의 축소모형. 청상어의 시험 도중 배터리 문제가 발견되면서 실전배치한 백상어도 다시 테스트하게 됐다. 그 결과 결함이 발견되 | ||
문제의 어뢰들은 이미 98년 당시 시험발사에서 합격점을 받아 지난 2000년부터 실전배치된 것들. 그런데 올해 5월과 8월에 시험발사를 다시 해본 결과 두 번 모두 발사 실패를 기록해 해군이 개발업체에 손해배상을 요구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백상어가 반납된다면 이를 대체할 만한 어뢰의 도입에도 시간이 걸려 해군의 전력손실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또한 개발비 3백억원에 양산비까지 합쳐 무려 9백억원의 경제적 손실까지도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국내 업체가 10여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연구·개발한 국산 어뢰가 결국 ‘부실작품’이었다는 사실. 방산업체의 기술 수준에 의구심이 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이번 기회에 국내 무기개발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리뷰’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백상어의 탄생에서부터 ‘침몰’까지의 과정을 다시 따라가 봤다.
지난 99년 4월25일은 한국 해군사에서 잊지 못할 날로 기록될 것이다. 한국 해군이 미군의 큰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99서태평양훈련’에 참가중이던 한국 잠수함 이천함(당시 함장 이동진 중령)이 실전용 어뢰를 발사해 표적이 된 미국의 퇴역 순양함 오클라호마시티(1만6백70t급)를 격침시키는 개가를 올렸던 것.
훈련 작전권을 쥐고 있던 미군측은 자신들의 공대함 미사일 매브릭 2발이 명중되고도 오크라호마시티가 끄떡없자 한국 해군의 어뢰 발사 요청을 받아들였다. 당시 미군측은 ‘어뢰 3~7발을 맞아야 격침되는 1만t급 순양함이 설마 한국 잠수함이 쏘는 어뢰 1발에 격침되겠는가’라고 반신반의하며 우리 해군의 어뢰 발사 요청을 받아들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해군은 환경오염 우려와 표적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실사격 훈련을 단 한 차례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천금 같은 실사 훈련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결국 이천함은 단 1발의 어뢰로 8km 밖에 떨어진 오클라호마시티의 선체를 두 동강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국산 잠수함인 이천함에서 쏘았던 이 어뢰는 바로 독일제 ‘슈트’(SUT)였다. ‘소총’은 국산이었지만 정작 ‘실탄’은 외국제였던 것이다. 한국은 이때까지만 해도 독일에서 어뢰 전량을 직도입해 총 ○○○대의 어뢰를 보유, 운용중이었다.
이런 ‘비상식적인 실태’를 잘 알고 있던 해군은 한국에 잠수함이 첫 도입(독일제 소형잠수함 장보고함)된 92년보다 2년이나 앞선 지난 90년 1월부터 국산 어뢰 개발에 들어갔다. 국방과학연구소(ADD)와 유도무기전문 방산업체인 L사가 개발비 3백2억원을 들여 연구에 몰두했고 8년 6개월 만인 지난 98년 6월 마침내 국산 어뢰 ‘백상어’가 탄생했다.
백상어는 잠수함과 잠수정에 탑재해 수상함과 잠수함 그리고 수송선단을 공격하는 ‘중어뢰급’으로 개발된 어뢰. ‘백상어 프로젝트’는 연간 53명의 전문가들과 양산비를 포함해 총 예산 9백억원이 투입된 중대형 사업이었다. 개발업체는 대당 10억원대에 모두 ○○대의 백상어를 해군에 납품했다.
▲ 대우조선에서 조립한 209 장보고급 디젤 잠수함의 위용. 해군에 따르면 백상어를 장착했던 잠수함들은 백상어의 결함이 발견된 이후 수입어뢰를 장착하고 있다고 한다. | ||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져나왔다. 해군은 중어뢰인 백상어와 함께 경어뢰 ‘청상어’의 개발도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경어뢰는 주로 수상함정이나 헬기 그리고 해상초계기에 탑재되는 경량급 어뢰. 청상어 개발 사업은 지난 95년에 시작돼 9년 5개월 뒤인 2003년 12월에 완료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개발진은 지난 4월 초순 청상어 시험발사 과정에서 어뢰의 동력원인 배터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사실을 접하게 된 해군은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청상어에 쓰이는 배터리가 백상어에도 똑같이 쓰이기 때문에 백상어에도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결국 해군은 시험발사과정을 마치고 실전배치중인 백상어를 다시 시험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백상어 시험발사 결과 더 큰 문제가 터졌다. 이번에는 어뢰가 폭발이 안되거나 목표물에 도달하기도 전에 터져버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에 열린 1차 시험에서는 어뢰가 목표물에 명중했지만 전혀 폭발하지 않았다. 국방과학연구소는 폭발계열(신관이나 탄두)의 불량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8월에 열린 2차 시험에서는 어뢰가 목표물에 도달하기도 전(약 1백50m 전방)에 폭발해버렸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어뢰의 표적감지 센서가 오작동해 조기폭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시험 발사 결과 실패한 원인이 모두 다른 데 있었다는 점이다. 똑같은 결함 때문이라면 적절한 조치를 취해 보완할 수도 있지만 매번 다른 결함 때문에 시험이 실패할 경우 어뢰 자체에 대한 신뢰성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백상어 ○○대를 납품 받아 실전배치중이었던 해군은 결국 보유량 전량을 제조사인 L사에 반납키로 했다. 그리고 시험 때 사용된 백상어 2발과 신관, 탄두 등도 전액 배상할 것을 업체에 요구했다. 또한 향후 백상어를 재발사할 때 드는 소요량과 시험평가 비용 일체를 업체가 부담할 것과 원인 규명 뒤 성능이 완전히 보장될 때까지 양산을 중지하도록 요구했다.
어뢰는 잠수함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무기다. 중어뢰급의 경우 단 1발로 구축함을 격침시킬 수 있으며 구 소련의 민스크급 항공모함은 4발, 미국의 키티호크급 항공모함은 8발이면 침몰시킬 수 있을 만큼 파괴력이 크다.
지난 2000년 8월 바렌츠해에서 침몰한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의 사고 원인은 잠수함 내부의 어뢰 폭발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수중배수량 2만4천t의 초특급 핵추진 잠수함이 침몰했고 승조원 1백18명이 전원 사망했다. 만약 쿠르스크호 수중배수량의 10분의 1도 안되는 한국의 소형잠수함에서 어뢰 폭발사고가 일어난다면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들 것이다.
이렇듯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어뢰에 이상이 있다면 해군 잠수함의 운용에 심대한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이경재 한나라당 의원은 “아무리 개발이 어렵다지만 한 업체가 10여 년 동안 3백억원을 들여 심혈을 쏟은 결과가 고작 이것인가. 더구나 이 업체는 미사일 등 다른 유도무기도 생산하는 전문업체인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난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한 “이번 일로 해군이 추진하는 다른 개발 사업에도 철저한 사전조사와 관리감독을 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해군은 해당 관계자와 업체에 페널티를 물려 사고책임을 지게 하고 다시는 해군의 개발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