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0일 조용기 목사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나오는 모습. 조 목사는 판결 직후 설교를 하며 ‘진주조개’ 발언으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교계 안팎의 비난을 받았다.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조 목사는 지난 2월 20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 131억여 원의 손해를 끼치고 세금 35억여 원을 탈루한 혐의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 벌금 50억 원이 선고된 바 있다. 지난 2002년 조 목사의 장남인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이 갖고 있던 주식을 적정가보다 4배 가까이 비싸게 사들이도록 지시해 교회에 손해를 끼친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이 판결로 조 목사는 목회자로서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지만 3일 후인 23일 여의도순복음교회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 등 건재를 과시했다. 이날 조 목사의 설교 주제는 ‘고난을 극복하는 세 가지 길’이었다. 자신의 유죄판결에 대해 “마치 조개가 진주를 만들 때 아파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신자를 진주처럼 만들기 위해 고난을 주시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조 목사의 ‘진주조개’ 발언에 교계 안팎에서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라는 비판적인 시각이 잇따랐다.
조 목사를 향한 시무정지 목소리는 이러한 비판적인 시각의 연장선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분석이 높다. 유죄 판결이 확정된 만큼 교회 차원에서 이를 유야무야 넘어갈 순 없다는 목소리가 극에 달한 셈이다. 특히 조 목사는 그동안 배임, 횡령 의혹뿐만 아니라 소설 <빠리의 나비부인>의 저자인 재불 성악가 정귀선 씨와의 불륜 사건 등이 불거져 사회적으로 숱한 논란을 자아낸 바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한 관계자는 “그동안 여러 논란도 많았지만 사법부 판결까지 나온 마당에 이제 교회 내부에서도 ‘교회법대로 해보자’는 얘기가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교회 바로세우기 장로 기도 모임’ 소속 목사와 장로들은 지난해말 조용기 목사 일가 퇴진 촉구 기자회견을 했다.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특히 교회 내부의 ‘사법부’로 일컬어지는 법제위가 나선 상황에 교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법제위가 조 목사의 시무정지 심의를 위한 당회를 당회장(이영훈 담임목사)에게 요청한 것은 순복음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조 목사의 유죄 판결을 보는 교회 내부의 시각이 남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는 셈이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법제위 임시운영위원회 소집 건의서’에 따르면 이러한 시각이 상당 부분 나타나 있다. 건의서는 임시운영위원회 소집 요청 이유에 대해 “일반 교역자들보다 더 높은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실천하여야 할 원로목사님이 교회에 대한 배임과 탈세로 기소되어 유죄판결까지 받은 것은 교회의 성결에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라며 “당회는 조용기 원로목사님이 이와 같이 유죄 판결을 받고도 원로목사로서 설교 기타 시무를 계속하는 것이 성결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있는지 여부를 심의 결정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인 원로목사님의 잘못을 은혜로 덮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분들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진리와 진실, 정의가 서지 않는 은혜는 거짓과 위선일 뿐이라고 믿는다”라고 밝혀 사안의 심각성을 암시했다.
법제위 내부 결정 과정에서 ‘만장일치’가 나왔다는 점도 주목된다. 전언에 따르면 조 목사의 시무정지 심의에 대한 결정은 법제위원들 사이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중립적인 성향으로 알려진 법제위의 이러한 결정을 두고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시각도 잇따랐다. 하지만 법제위는 아직까지 조심스런 입장이다. 법제위 한 위원은 “교회 내부에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도 있기에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당회가 열리기까지는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어물거리며 넘어갈 일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강남순복음교회가 일간지에 실은 광고(위)와 조 목사의 유죄판결 직후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홈페이지에 올린 입장문.
당회 소집 일정은 아직 미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회 소집 권한을 가진 이영훈 담임목사의 결정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회 소집은 ‘시간문제’라는 게 교회 내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또 다른 순복음교회 한 관계자는 “이영훈 담임목사가 조 원로목사의 말에 아직도 꼼짝 못한다는 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하고 있다. 원칙대로 하자는 교회 내부의 목소리를 당회장도 완전히 외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법제위 역시 이영훈 담임목사가 당회를 소집하지 않는 것에 대비해 또 다른 대안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당회운영규정 제12조 제1항이다. 조항에 따르면 ‘운영위원들은 재적 과반수의 동의로 운영위원회 소집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경우 당회장은 운영위원회 소집을 거부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법제위는 지난 23일 장로회장 앞으로 건의서를 보내 이 사실을 전달했다. 장로회장으로 하여금 임시운영위원회 소집과 재적 과반수 동의 여부 등을 확인해 달라는 취지다. 장로회장은 현재 공석이지만 곧 임명될 것으로 전해진다. 장로회장이 누가 임명되느냐에 따라 사안의 진행 속도도 달라질 전망이다.
결국 조 목사의 시무정지는 교회법에 따라 처리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시무정지가 최초이자 공식적으로 나온 점을 감안한다면 조 목사를 향한 ‘장로들의 이탈현상’이 심화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높다. 순복음교회 한 고위 인사는 “유죄판결 이후 조 목사 옹호층이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중립적인 장로들까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이제 때가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조 목사의 한 측근은 “당회장이 결정할 때까지 그냥 얘기만 떠도는 것이다. 떠도는 얘기로 자꾸 왈가왈부하는 것도 맞지 않는다. 원로목사님도 별 말씀 없으셨다”라고 밝혔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