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규제개혁에 편승한 기업들의 우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개혁 관계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3개 경제단체는 4월 초 ‘지방세특례제한법’에서 세액공제·감면 대상에 내국 법인도 포함시켜달라는 건의서를 정부에 낼 계획이다. 이들은 “정부가 지난해 말 취득세율 영구인하 등에 따른 지방자치단체의 세수 감소를 보전하기 위해 지방세법 등을 개정했는데, 이로 인해 기업들의 법인세부담이 9500억 원 정도 늘어나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립세로 분리된 지방소득세가 개인 납세자에 대해서는 세부담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세액공제·감면 사항이 기존과 같이 유지되는 반면, 법인 소득분에 대해서만 세액공제·감면이 원칙적으로 배제돼 있어 세 부담이 급격히 늘어난다는 것이다.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는 난감한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현재 지방세의 세액공제와 감면율이 국세보다 높아 지방재정이 힘든 상황”이라며 “지방재정 건전화를 위해 앞으로 공제·감면을 합리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지방재정을 위해 비과세 부문에 대한 정비 차원에서 진행된 일을 놓고 기업들이 문제를 삼고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세액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상화된다고 판단해야 할 일”이라며 “이런 조세제도의 민원사항까지 규제개혁 바람을 타고 끼워 넣으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재계는 이득과 직결된 법인세, 가업상속세제 등에 대한 속내도 숨기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의 독일 방문에 맞춰 전경련은 지난 27일 ‘독일 경제에서 배워야할 4가지 요소’라는 자료를 배포했다.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기업투자 유치 및 지원 등을 독일 경제성장의 비결로 꼽으면서, 독일이 기업투자 촉진을 위해 단행한 기업조세 부담완화를 치켜세웠다. 1981년 56%에 달하던 법인세의 최고세율을 지속적으로 인하해 2008년에는 15%까지 낮췄다는 것이다. 한국은 현재 22%다. 다양한 세제혜택으로 기업들의 투자를 독려하고 기업의 계속성을 보장한 것이 경제성장의 비결이라는 논리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같은 날 ‘상속·증여세제 국제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는 최대주주 주식에 대한 할증과세를 감안하면 상속·증여세율이 최고 65%에 달한다”며 “과세부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가업승계에 대한 세제지원은 일본, 독일, 영국 등의 선진국보다 불리해 원활한 가업승계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두 경제단체가 입을 맞춘 듯이 기업세제 기준 완화를 대놓고 요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착한 규제 구하기’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필수적인 시장 규제는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일 박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제안된 해외여행객의 휴대품 면세한도 상향 문제가 대표적이다. 기존 400달러에서 800달러로 올리자는 것인데, 조세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재 면세 기준인 400달러는 1979년 여행자 휴대품 면세기준(10만 원)이 도입된 후 1988년 30만 원(400달러)으로 확대하고 1996년 400달러로 전환한 뒤 18년 동안 변동이 없었다. 이 때문에 그동안의 물가인상과 국민소득 상승, 해외여행 수요 등에 맞춰 이를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실제 해외여행자수는 전 국민의 15% 남짓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다시 말해 휴대물품 면세한도를 올릴 경우, 일부 국민에게만 비과세 감면 혜택을 확대해주는 것이다. 일부 계층에게 해외 과소비를 조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면세한도 400달러에는 술, 담배의 구입액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이를 포함할 경우 600달러 정도로, 700~800달러인 글로벌 평균보다 크게 낮은 수준도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지적이 일자 27일 기획재정부가 밝힌 규제개혁 회의에서 논의된 52개의 규제 가운데 ‘당장 처리하기 어려운 규제’로 분류됐다.
금융 관련 규제들도 마찬가지다. 업계 요구가 잇따른다는 이유로 덜컥 완화해줬다가 큰 화를 자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각 업권별 협회에 공문을 보내 규제 완화와 관련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현장 목소리를 수렴하는 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내부적으론 규제 완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지난해 ‘동양 사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모두 시장의 비정상적 쏠림 현상을 막을 규제가 풀리면서 비롯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분야는 일괄적으로 규제를 줄이기는 무리가 있다”면서 “규제를 10% 줄이자는 식의 발상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한 은행 관계자도 “스스로 족쇄를 만들지 않아야 하지만 과당경쟁 중인 시장에서 스스로 자율 규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라면 누군가는 견제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