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농협금융지주와 그 자회사의 사외이사가 대폭 교체됐다. 이를 두고 모피아 출신 임종룡 회장이 낙하산을 통해 관료 출신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려는 의중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NH농협중앙회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번 농협금융 주총에서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사외이사들의 대대적인 교체였다. 농협금융지주와 자회사에 속해 있는 29명의 사외이사들 중 이번 2014년 정기주총을 통해 교체된 이들은 절반이 넘는 18명에 이르렀다. 농협증권과 농협선물의 경우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인수·합병에 대비해 이번 주총에서 잠정적으로 사외이사를 각각 1명씩 줄여 선임했다. 이들 사외이사들은 상당수가 지난 2012년 농협 신·경분리 당시 선임됐던 이들로, 임기 2년이 만료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선임된 사외이사 중에는 임종룡 NH농협금융 회장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이들이 있어 관료 출신 자리 마련해주기와 임 회장의 이사회 통제를 위한 낙하산 인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NH농협금융은 이번 정기 주총을 통해 4명의 사외이사 중 임기가 만료된 2명을 교체했다. 그동안 사외이사를 맡았던 박용석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와 허과현 한국금융신문 편집국장 대신 김준규 전 검찰총장과 손상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새로운 사외이사로 선임·의결했다.
2명 모두 정부기관 또는 금융감독기관 출신으로 교체한 것이다. 특히 손상호 연구위원은 지난 2008~2010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로 지내면서,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과 대통령 경제금융비서관을 맡고 있던 임 회장과 업무적으로 많은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기존에 임기가 남아 있는 2명의 사외이사 역시 관료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배국환 사외이사는 임 회장이 기획재정부에서 근무할 당시 기획재정부 2차관까지 지냈고, 현정택 사외이사도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 국장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이들의 임기는 각각 오는 7월과 2015년 3월까지다.
농협금융의 핵심 자회사인 NH농협은행은 5명의 사외이사를 전원 교체했다. 강상백 전 여신그룹협회 부회장과 김국현 전 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김주훈 한국금융개발원 부장, 문창모 전 코람코자산신탁 부회장, 총 5명이 사외이사로 새로 선임됐다.
이중 강상백 전 부회장과 김국현 전 이사장, 문창모 전 대표이사는 대표적인 관료 출신이다. 김주훈 부장의 경우 기획재정부 장관자문관을 맡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임 회장의 경기고 동문이고, 김정식 교수는 임 회장과 연세대 경제학과 동문이라는 학연이 있다. 사실상 이번 주총을 통해 새로 선임된 농협은행의 사외이사 5명이 모두 임 회장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혹에 대해 농협금융지주는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사외이사 선임은 계열사별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돼 후보들을 추천받는다. 따라서 임 회장이 사외이사 내정에 자신의 의중을 반영하거나 좌지우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내이사로 추천된 인사들에 대해 “금융, 경제, 법률, 회계 등 다양한 관련분야의 전문지식과 실무적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출신을 사외이사로 선임해 농협금융 발전에 이바지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농협금융 자회사의 한 관계자는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해서는 지주회사에서 총괄적으로 교체했기 때문에 지주회사 측에서 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앞서 농협금융 측의 “계열사별로 추천을 받았다”는 주장과 배치되며 의혹을 키운다.
임종룡 회장 본인도 지난해 6월 취임 당시 관료 출신의 낙하산 인사라는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임 회장은 행정고시(24회) 출신으로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국무총리실 실장까지 지낸 대표적 모피아 출신 인사다. 임 회장 전임인 신동규 전 회장도 행정고시(14회) 출신이었지만, 신 전 회장이 회장직에서 사퇴할 당시 후임은 농협 내부에서 나오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막판에 이러한 예측이 뒤집히면서 임 회장이 내정됐다. 이에 임 회장 취임에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그러나 임 회장은 “회장추천위원회에서 전문성, 경험에 대한 검토를 거쳐 나에게 회장직을 제의했다”며 “그에 따른 해석은 향후 실적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농협금융은 이번에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NH농협생명은 앞서 문창현 전 금감원 보험감독국장 외에도 김기서 전 연합뉴스 사장과 김선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새로운 사외이사로 결정했다. 또한 NH농협손해보험의 새로운 사외이사에는 최상국 전 NH-CA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선임됐다.
이어 NH농협증권은 김만기 전 SH공사 감사와 이종구 단국대 법학대학 부교수를, NH농협선물은 권순직 전 동아일보 국장, NH-CA자산운용은 전순은 전 한국농수산정보센터 사장과 전육 전 한국농구연맹 총재를 새로운 사외이사로 추천하며 선임절차를 마무리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