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에 출마한 정몽준 의원, 김황식 전 총리, 박원순 시장. 왼쪽은 용산개발 시행사 드림허브 본사 입구에 있는 용산개발 모형. 일요신문 DB
“용산개발 재추진을 서둘러야 한다. 이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를 서울시장으로 밀어야 한다.”(통합개발 찬성 주민)
서울 용산이 시끄럽다. 선거전을 타고 불어온 용산개발 재추진 바람이 두 갈래로 나뉜 주민들 간의 감정싸움에 또다시 불을 붙였다. 양 진영 간 다툼은 상반된 공약으로 날을 세우고 있는 여야 정치권과도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중 한 명인 정몽준 의원은 최근 용산개발을 단계적·점진적으로 재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용산역세권을 3~4단계에 나눠 개발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 땅인 용산철도정비창 부지와 서부이촌동을 통합개발 하는데 찬성하는 주민들은 정 의원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다.
반면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올 초 서부이촌동 맞춤형개발계획을 내놓은 서울시 측에 희망을 걸고 있다. 서울시는 서부이촌동을 종상향(種上向)시켜 용적률을 올리는 등 재건축 사업이 가능하도록 하는 계획을 마련했다. 여기에 동조하는 이들은 박 시장이 야당 측 서울시장 예비후보라는 점에서 사실상 야당의 표와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
서로 다른 용산개발 방식을 주장하는 양측은 언론을 통해 상대방을 비방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박 시장은 한 라디오방송에 나와 “용산국제업무지구 얘기를 하는 것은 철지난 레코드판 돌리는 것”이라고 내쏘았다. 이에 정 의원은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박 시장을 향해 “상대 후보의 공약을 깎아내리기 전에 우선 그 내용부터 공부하길 권한다”고 맞대응했다.
양측의 설전이 이슈화하자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정 의원과 경쟁하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도 뒤늦게 여기에 동참했다. 김 전 총리는 기본적으로 “용산개발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용산을 포함한 한강변 건물의 높이 규제를 완화하는 등 한강변 스카이라인 재구성을 강조하는 공약을 발표했다.
정치권에서 선거 이슈로 용산개발을 들고 나오자 사업자들도 이를 기회로 삼으려는 분위기다. 용산개발 시행을 맡아온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 드림허브는 사업 재추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코레일이 토지를 매각하면 민간사업자 주도아래 사업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 부동산개발업체 녹지그룹과 국내 복합쇼핑몰 업체 서부T&D가 사업권 인수에 긍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이는 결국 용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 냉각됐던 용산지역 부동산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멈추다시피 했던 아파트 거래가 다시 이뤄지고 있고, 6개월 넘게 중지했던 통계기관의 서부이촌동 아파트 시세조사도 재개됐다.
아직까지 거래되는 물건은 급매물 위주인 데다, 집값은 가장 높았던 지난 2008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수요자들의 관심은 커지고 있다. 서부이촌동 D 공인 관계자는 “전세로 살던 사람들이 이참에 매매로 돌아서는 경우도 많고, 개발이 재추진될 것 같으냐는 투자자들의 문의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용산지역 일부 재개발사업도 다시 추진되면서 올해 분양시장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용산전면 2구역과 3구역 재개발사업에 대우건설과 삼성물산이라는 두 대형사가 참여해 올해 분양물량을 내놓을 예정이다.
부동산시장도 조금씩 회복되는 분위기다. 용산구 전체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 2월과 3월 각각 189건, 164건으로 월 100건이 채 안 되던 지난해 하반기보다 다소 늘었다. 서부이촌동은 종상향 계획 발표 이후 빌라 등을 중심으로 거래가 간간이 이뤄지고 있다.
시세도 오름세다. 한국감정원은 용산개발 핵심지역인 용산구 이촌동 시세를 지난해 말 3.3㎡(약 1평)당 2742만 원에서 올 들어 2758만 원으로 상향조정했다. 이는 해당지역인 서부이촌동 쪽뿐 아니라 동부이촌동 쪽 시세도 함께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이 같은 분위기가 용산개발 공약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또 시장이 회복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아직까지 용산개발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부동산 시장이 전반적으로 회복되는 분위기 때문인 듯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부동산뱅크 조사에 따르면 서부이촌동에 위치한 ‘대림아파트’의 시세는 전용 59㎡가 현재 5억 1000만~6억 원으로 1년 전 7억 6500만~8억 7000만 원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졌다. KB국민은행 시세에서도 서부이촌동 ‘북한강성원아파트’ 전용 59㎡ 시세는 5억8000만 원선으로 2008년께와 비교하면 3억 가까이 떨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선거 이후다. 공약이 기대만큼 지켜지지 않거나 시장 상황이 다시 침체될 경우 집값은 더 떨어질 수 있다. 변창흠 세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는 그동안 개발공약에 따른 피해를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다”며 “용산개발 공약은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이 나온 것이 아닌 예비후보자들이 내놓은 하나의 구상일 뿐인 만큼 수요자들의 올바른 판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수영 이데일리 기자 grassdew@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