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구자원 LIG그룹 회장이 LIG건설 CP 투자자 피해보상 자금마련을 위해 LIG손해보험 매각 의사를 밝힌 지 5개월 만인 지난 3일, LIG손해보험의 매각주관사인 골드만삭스가 인수적격후보 5곳을 선정했다. 선정된 곳은 롯데그룹, KB금융지주, 동양생명-보고펀드, MBK파트너스, 그리고 중국의 푸싱그룹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실사 후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면 LIG손보 매각 작업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인수적격후보 발표 직후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LIG손해보험지부(노조·위원장 임남수)가 후보자인 롯데그룹과 사모펀드, 외국자본 인수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힌 것. 노조는 지난 8일 서울 역삼동 LIG타워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 매각이 명확한 비전 없이 진행되고 있다”며 “보험업 경영 능력이 부족한 롯데그룹과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 여부보다 투기성이 강한 자본의 결합체인 사모펀드, 검증되지 않은 외국계 자본이 인수적격후보로 선정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비판했다.
노조의 반발이 아니더라도 LIG손보와 골드만삭스 역시 본격적인 매각작업을 앞두고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낮은 매각가 때문이다. 이번에 내놓은 매물은 구자원 회장을 비롯해 LIG그룹 오너 일가가 내놓은 LIG손보 주식 1257만 4500주(20.96%)다. 오너 일가의 지분을 시가로 환산하면 3800억 원대에 달했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감안하면 금융업계나 LIG손보, 골드만삭스 측에서는 매각가가 5000억~6000억 원이 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최대 1조 원 이상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그러나 막상 인수의향서(LOI)를 받고 뚜껑을 열어보니 가격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롯데그룹만이 5000억 원을 넘겼을 뿐, 다른 4곳은 4000억 원대에 머무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예비입찰 결과에 “골드만삭스에서 매각 가격을 높이기 위해 인수후보군을 간추려 추가 입찰을 한다, 경매식 호가 입찰인 ‘프로그레시브 딜’을 준비한다”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LIG손해보험 사옥.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그러나 LIG손보 매각을 발표한 지난해 11월과 매각 예비입찰 단계인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다. LIG손보 매각을 결정했을 당시에는 LIG건설 CP를 샀다가 피해를 본 투자자 700여 명(2100억여 원 규모) 중 일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고 1300억 원가량의 자금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구 회장은 지난해 말 피해자 보상을 완료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 회장이 범 LG가로부터 2000억 원을 빌린 게 도움이 됐다. 구 회장은 이 2000억 원의 상환 기일도 차후로 연기하기 위해 협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LIG그룹 관계자는 “회장의 개인적인 일이라 확인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선처를 호소했지만 기대했던 재판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 2월 11일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김기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구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으며 풀려났다. 구본상 부회장은 1심 징역 8년에서 4년으로 줄었다. 그러나 1심에서 무죄였던 차남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은 항소심에서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이러한 상황에 LIG그룹 입장에서 굳이 낮은 가격에 LIG손보를 매각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LIG손보는 LIG그룹 총 매출 12조 원 중 86%인 10조 원을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다. 손보업계 시장점유율도 13.8%로 4위다. LIG그룹의 차세대 사업으로 평가받는 LIG넥스원이 성장하고 있긴 하지만 LIG손보와 비교했을 때 규모 차이가 크다.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LIG손보 매각을 LIG그룹 해체로 바라보기도 했다. 따라서 급한 불을 끈 LIG그룹과 구자원 회장 측이 LIG손보 매각을 접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렇지만 매각 철회는 쉽지 않다. 매각 결정을 뒤집을 경우 금융당국과 시장의 신뢰를 저버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각 가격에 대한 이견을 내세우는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LIG그룹에서는 LIG손보를 6000억 원 이상에 팔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예비입찰에서 가장 높은 금액은 롯데그룹의 5000억 원대 수준”이라며 “따라서 LIG그룹에서는 최대한 높은 가격을 부르며 협상하는 태도를 보이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매각 결정을 철회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이 앞으로 나올 대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서울고검은 지난 2월 17일 LIG그룹 오너 3부자에 대해 “공범 문제나 가담 정도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법리를 오해했다고 판단해 대법원에서 다퉈볼 필요가 있다”며 상고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법원의 선처를 호소하며 계열사 매각을 결정했는데 이를 철회하면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LIG그룹에서도 매각 철회는 고려되지 않고, 매각 절차가 차질 없이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LIG손해보험 관계자는 “최종 인수적격후보들을 대상으로 실사가 진행 중이다. 일정에 맞춰 매각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