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이 해외체류 96일 만에 귀국함에 따라 올 초 선언한 ‘마하경영’이 구체화될 전망이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앞으로 드러날 이 회장의 경영이 예전과 같은 방식은 아닐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 회장은 지난 2011년 4월부터 매주 두 차례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으로 출근해 현안을 챙기고, 관심 부문의 임직원들을 불러 점심을 함께해왔지만 최근에 이를수록 그 빈도가 줄고 비정기적이었다. 출근경영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일각에선 삼성 사장단 회의를 주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삼성 관계자는 “매주 수요일에 이미 사장단 회의가 열리고 있는데, 이 회장은 그런 자리에서 현안을 꺼내놓고 토론하거나 지시하는 스타일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이 회장의 변함없는 ‘메신저’인 최지성 미래전략실 부회장(미래전략실장)을 통한 업무지시 채널이 상시적으로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굳이 작명하자면 장소를 가리지 않는 ‘올 코트 경영’이 지속되는 것이다.
재계에선 이 회장의 향후 행보와 메시지가 두 가지 어젠다(화두)에 집중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먼저 이 회장이 올 초 신년하례식에서 영상을 통해 “삼성그룹이 다시 한 번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한 ‘마하경영’의 구체화다. 이 회장은 당시 “5년 전, 10년 전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하드웨어적 프로세스와 문화를 과감하게 버리자”며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 속에서 변화 주도권을 잡기 위해선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회장의 세 자녀 서현, 부진, 재용 씨.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마하경영은 이 회장이 지난 2002년 “제트기가 음속의 두 배로 날려고 하면 엔진의 힘만 두 배로 있다고 되는가. 재료공학부터 기초물리, 모든 재질과 소재가 바뀌어야 초음속으로 날 수 있다”라고 강조한 데서 유래했다. 이는 삼성의 체질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라는 뜻이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임원 세미나와 온라인 사보 등을 통해 전 임직원에게 마하경영의 메시지를 전파해왔다. ‘마하경영 하우 투 보고서’도 나왔다. 여기에 이 회장의 메시지가 어떤 형식으로든 보태질 경우, 그룹 전반의 혁신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 내 사업재편도 핵심 현안이다. 주된 방향은 투자여력에 기반한 부실부문의 경쟁력 강화와 연관부문 간 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의 제고다. 삼성은 지난 3월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흡수 합병하게 했다. 2020년까지 매출 29조 원의 거대 에너지·소재 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 목표다. 이번 합병으로 삼성전자의 소재부문 수직계열화가 완성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삼성종합화학의 삼성석유화학 합병도 단행됐다. 재무구조가 탄탄한 삼성종합화학이 실적부진에 빠진 삼성석유화학을 안고 가게 한 것이다. 삼성은 이미 지난해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를 삼성에버랜드로 이관하면서 사업재편의 시동을 걸었다. 최근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에는 ‘빈폴 아웃도어’, ‘에잇세컨즈’ 등 제일모직 브랜드들이 입점했다.
이 같은 움직임의 기저에는 삼성의 위기의식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삼성그룹의 수익추이가 ‘성장형’에서 ‘정체형’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4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8조 4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시장의 기대에 무난하게 부응했지만, 사실 그 정도가 최정점으로 앞으로는 이를 기준으로 등락을 반복하는 수익패턴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는 수익이 올라갈 일보다 내려갈 일이 더 많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외 스마트폰 시장 경쟁 심화로 인한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의 수익성 하락 우려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전 세계 스마트폰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끊임없이 중국 등 경쟁업체의 추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등 핵심 계열사를 제외한 여타 계열사 성과가 부진한 것도 그룹 전체에 부담요인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에 대한 수익편중 현상이 지속되지 않도록 그룹 전체 차원의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올해 주력상품들의 시장 판매 상황이 관건으로 떠오른 상태다. 올해 새로 내놓은 ‘갤럭시S5’, 프리미엄 냉장고인 ‘셰프컬렉션’ 등이 얼마나 선전하느냐에 삼성그룹 차원의 사업재편 방향이 달려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업계는 대대적인 삼성그룹의 사업재편이 이 회장의 3남매 후계 구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구도는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자·화학과 금융계열을,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리조트·건설·상사, 차녀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경영기획실)이 패션 및 미디어부문을 나눠 경영하는 것이다.
향후 삼성물산의 사업재편에 따라 후계구도가 더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의 귀국 후 행보가 주목을 받는 또 하나의 이유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