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가 전경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일요신문 DB
이처럼 대형 증권사들이 대규모 희망퇴직을 준비 중인 가운데, 일부 증권사는 일회성 인건비가 많이 드는 희망퇴직 대신 공공연하게 ‘상시 직원퇴출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회사에서 요구한 영업 할당량을 못 채우거나 인사고과가 안 좋은 직원들을 ‘부진자’로 묶어 과다한 영업 할당량을 주고 결국 퇴출시키는 방식이다.
회사 창립 53년 만에 노동조합이 결성된 대신증권은 영업 할당량을 못 채운 부진자들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퇴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간 주식 약정 목표치를 채우지 못할 경우 단계별로 가혹해지는 교육이 진행된다는 것.
이른바 ‘전략적 성과관리’로 지난 2012년부터 시행 중인 대신증권의 부진자 프로그램은 노조파괴 논란을 일으켰던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이 개입해 만든 것으로도 전해졌다. 특히 전략적 성과관리 교육을 이수하는 직원들은 영업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매일 전단지와 명함을 받아 오는 굴욕적인 일도 겪어야 했다.
대신증권의 한 관계자는 “신입사원 교육도 이렇게 자존심을 버려가면서까지 진행하지 않는다. 결국 직원들에게 수치심을 줘 스스로 그만두게 하려는 의도로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며 “1, 2차를 거쳐 3차 프로그램 전 단계에서 사표를 쓴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3차 프로그램의 내용을 확인하고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껴서 스스로 사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해당 내용을 본사 담당 부서에 항의하자 나중에 복직할 때 영업 기반으로 삼으라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며 “심지어 어떤 지점의 경우는 전략적 성과관리 대상자로 포함된 직원들은 자리도 없고 컴퓨터도 없는 사례까지 있었다”고 덧붙였다.
대신증권의 부진자 교육 3차 프로그램 대상자가 되면 대기발령 상태로 2주 간격으로 지점을 옮겨 다녀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3차 프로그램 대상자는 전단지를 매일 50장씩 돌리고 고객들에게 명함 10장씩을 받아오며, 등산이나 봉사활동에 참여해 ‘인증샷’까지 찍어 와야 한다. 또 월급도 절반으로 깎이는 데다, 주식 약정 목표치는 일반 영업직원의 두 배 가까이 할당돼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증권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대신증권이 일반 기업에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지시하며 직원들에게 수치심과 모욕감을 줘 상시 퇴출을 촉진하고 있어 업계에서도 악명이 높다”며 “전략적 성과관리 프로그램에 포함된 직원들이 현재까지 100명 이상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대신증권은 이 같은 직원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지난 3월 초 직원 대상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인사정책 및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설문조사 결과 명예퇴직을 도입하자는 직원들의 의견 67.7%에 달해 상반기 중 희망퇴직 조건 등을 구체화 시키고 실행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부진자 퇴출 프로그램이 증권맨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A 증권사의 수도권 소재 영업지점에서 근무하던 B 과장이 지점 건물 내에서 목을 매 결국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회사 측은 개인적인 이유로 B 과장이 신변을 비관했다며 업무와 연관성을 부인했지만, B 과장의 지인들은 그가 평상시 업무적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 왔다고 전했다.
실제 A 사는 수익성 악화와 맞물려 최근 영업직원 대상으로 고강도의 평가를 벌여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직원 등급을 ‘S·A·B·C·D’, 다섯 등급으로 나눠 하위 C·D등급 대상 직원들에겐 성과급은 물론 연봉을 삭감하는 제도를 시행해 왔다.
매각 작업이 공론화된 현대증권도 최근 영업 부진자들을 따로 발령 내는 등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이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다고 했지만 최근 수도권의 한 지점 내에 ‘종합자산운용센터’라는 영업 조직을 신설, 영업 부진자들을 발령 내고 있다. 벌써 10여 명이 이 부서로 향했다.
이를 두고 현대증권 내부에선 실적이 너무나 형편없는 직원들이라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업계에서 현대증권이 구조조정 본격화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도는 이유다.
이승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