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액 펀드 조성’ 파문을 계기로 민경찬씨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그동안 민씨에게 피해를 본 사람들도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왼쪽은 <시사저널>과 인터뷰 모습, 오른쪽은 6일 구속 장면. | ||
특히 그가 어떤 경로를 통해 자금을 모았는지와 이 펀드에 돈을 낸 투자자의 정체, 그리고 자금 관리책의 신원, 원금 보장을 약속하는 투자계약서 존재 여부 등이 관심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민씨가 모금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또한 거액 투자자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자 수사는 민씨의 개인 사기 행각으로 바뀌었고, 결국 수사방향은 ‘펀드 조성’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단서를 찾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실제 경찰은 지난 2월6일 ‘유사 수신 행위’가 아닌 사기 혐의로 민씨를 전격 구속했다. 벤처나 펀드 투자가 아닌 이천 병원 식당 운영권 등을 빌미로 수억원대 돈을 받은 혐의에 대해 구속 사유를 적용한 것이다.
앞으로 쉽게 노출되지 않는 금융 투자 가능성을 짚어내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눈에 잘 띄는 토지 매입이나 그 과정에서 얽힌 투자자들을 소환, 이들이 민씨에게 제공한 ‘돈’과 ‘6백50억원’과의 관련성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 바꾸어 말하면 ‘사기 행각이 모금 시도의 실체’라는 결론으로 압축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민씨가 2002년 3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운영했던 김포 푸른솔병원을 둘러싼 사기 시비가 또 하나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푸른솔병원 운영 과정에서 민씨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혹시 민씨가 투자 목적의 돈을 요구한 적이 있는가 하는 것.
그동안 민씨가 직원들에게 임금을 미지급하고 병원 내·외부 공사와 설비를 담당한 업체나 개인 등에게 대금을 지불하지 않아 여러 차례 경·검찰에 고소를 당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
그러나 이번 ‘거액 펀드 조성’ 파문을 계기로 민씨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그동안 민씨에게 금전적으로 피해를 본 피해자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요신문>은 민씨가 구속된 지난 2월6일 김포를 찾아 각종 피해사례와 현재 민씨가 피의자인 형사 고소 수사 및 판결 진행 상황을 추적했다.
취재 결과 병원 운영 과정에서 빚어진 피해는 억대 이상만 해도 예상외로 많았다. 등기부 등본에 기재된 채권자들 이외에도 가압류 신청을 하지 않은 피해자들 또한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씨는 이들에게 주로 병원 부도를 막는다는 이유를 대며 거액의 돈을 빌리거나, 구내 식당 식대 및 임대료, 장례식장 임대료, 진료 기구 및 각종 시설 공사대금 등을 지불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병원 구내 식당을 운영했던 H씨. 그는 푸른솔병원 구내 식당을 운영하면서 식대와 식당 임대료 등 총 3억원 이상을 받지 못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H씨는 은행 대출을 받아서까지 돈을 마련해 식당에 투자했으며, 민씨가 병원을 휴업하고 잠적하자 시어머니가 직접 땅을 팔아 은행 대출금을 갚아준 것으로 전해졌다.
푸른솔병원 부근 건물 소유주인 이아무개씨도 병원 토목 공사 및 병원 앞 도로 보수 대금 1억8천만원을 받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지난 97년 병원 토목 공사를 완료했다는 이씨는 “민씨는 B씨에게 병원을 인수받으면서 공사 대금 지급 책임도 같이 넘겨받았다. 나는 민씨가 대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까지 받아 놓은 상태다. 민씨는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 만난 자리에서 대금을 결제해 달라고 하니 ‘병원이 잘 되면 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 이후에도 대금 결제를 해달라고 병원을 찾아갔으나 허탕만 쳤다”고 분노했다.
의료기기 사업자 B씨에게서 민씨를 소개받아 몇 차례 만난 뒤 1억3천5백만원을 빌려줬다는 또 다른 이아무개씨. 그는 “투자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단지 민씨가 ‘병원 부도를 빨리 막아야 한다. 1시간 후에 돈이 들어오니 먼저 빌려달라’고 해 급하게 현금을 마련해줬다. 그러나 돈을 받은 이후 소식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민씨가 써 준 차용증을 갖고 있으며 동생과 함께 민씨를 추적중이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곧 민씨를 검찰에 고소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한편 주민들은 병원 개업 당시 민씨의 소개를 받아 병원 옆 건물 2층에 Y약국을 낸 사장도 큰 손해를 입고 점포를 정리했으며, 푸른솔병원 관리과장이자 최근에도 민씨와 함께 서초동 S빌라 2층에서 일해온 것으로 알려진 A씨의 형도 민씨에게 거액을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 김포의 푸른솔병원. | ||
민씨의 소액 고소사건을 다루고 있는 인천지법 부천지원 김포시 법원측은 내부 규정을 이유로 정확한 소송 내역에 대해 밝히진 않았으나 상당건이라고 전했다.
주민들은 소액 고소건이 수백 건이 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병원과 거래한 식당이나 철물점, 전파사, 가구점, 목재소 등 수백개 업체들이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 피해액은 1인당 평균 1천만원대로 알려졌다. 임금을 받지 못한 병원 간호사나 경리 등 일반 직원 상당수도 소액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병원 직원들의 식사비를 받지 못했다는 S식당의 피해 액수는 약 1천4백만원. 식당측은 병원 개원 직전 70여 명의 직원 한 달 식사비를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식당의 사장은 “자꾸 결제가 늦어져 병원으로 돈을 받으러 가면 부원장(민씨 동생 민상철씨)이 항상 ‘피부터 사야 한다. 곧 병원이 잘 될 테니 기다려라’고 말하면서 차일피일 결제를 미뤘다. 우선 일부라도 결제하라고 말하면 민(상철)씨는 법인카드를 긁어 번호를 보여주기까지 하며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대통령 사돈이라기에 ‘설마’하고 기다렸는데 결국 이 지경까지 오게 됐다. 할 수 없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즉결 소액심판을 받았다. 생각만 하면 괘씸하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판결이 종료된 사항도 있으나 아직 선고되지 않은 고소건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민씨에 대한 소액 민원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혀를 내두르기까지 했다.
한편 기자는 김포경찰서에 접수된 민씨 관련 고소건에 대해서도 확인 작업을 했으나 경찰은 “피해자 신분 보호상 정확한 고소 내용을 밝힐 수 없다”며 공개를 꺼려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부분 일반 소액 채무 관련 사항이며, 민씨가 사업상 어려움 때문에 돈을 갚지 못한 것이어서 사기혐의를 적용하기 힘든 건”이라고 말했다.
직원 임금 체납 상황도 심각했다. 현재까지 부천노동사무소 근로감독관에게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고소장을 접수시킨 직원은 1백20여 명. 그 중에는 의사, 간호사는 물론 일반 직원과 청소원도 포함돼 있으며 액수는 무려 8억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포시 법원에서 처리되었거나 계류중인 임금 체불 고소건을 포함하면 총 액수는 최소 1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천지방노동사무소 이재형 근로감독관은 “민경찬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사무소에 네 번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며 “2002년 5월16일부터 진정서가 접수돼 모두 6번에 걸쳐 1백20여 명의 조서를 작성, 부천지청으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주민들과 푸른솔병원 전직 직원들에 따르면, 민씨는 병원 개원 전 직원들을 공사 현장에 투입시키면서 개원 일자가 다가오자 오히려 봉급을 깎으려 했다는 것.
2001년 11월25일 날짜로 고용계약을 맺고 푸른솔병원에서 일했다는 한 간호사는 지난해 김포시청 홈페이지에 “병원이 개원 전 인부들을 구하기 어렵다며 대리석과 시멘트를 나르는 등 잡일을 시켰다. 그러나 막상 개원을 하자 그동안의 경제적 손실이 많았다며 월급을 깎으려했고, 제 날짜에 준 적도 없다”는 글을 올렸다. 이 간호사는 글 마무리에 퇴직금까지 받지 못했다며 경찰에 민씨를 고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금이 체불되면서 일부 직원들은 수백만원대의 카드빚에 시달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기자가 병원에서 발견한 원무과 직원의 A은행 신용카드 내역서에는 직원 J씨가 2004년 1월9일까지 2백93만원, H씨는 미결제액 4백98만원에 연체료가 70만원이 붙어 총 5백69만원이 밀려 있었다. 이미 계속된 연체로 인해 카드회사에서는 이들에게 총 이용한도를 부여하지 않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