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회장(오른쪽)과 말에 탄 삼남 김동선 씨. 김동선 씨는 2006년 도하와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이들이 사퇴 의사를 밝히기 불과 하루 전인 8일 대한승마협회는 ‘공주 승마’라는 정치적 의혹에 휩싸였다.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근혜 대통령 최측근이라 불리는 정윤회 씨 딸의 승마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특혜 의혹이 있다”면서 “승마계에서는 특정 선수를 비호하고, 지속적으로 특혜를 줘 국가대표를 만들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안 의원은 이런 특혜에 이의를 제기하는 인사들에 대해선 지난해 5월 ‘살생부’가 작성돼 청와대에 전달됐고, 청와대 지시로 체육단체 특별감사를 추진해 살생부에 오른 특정 인사들에게 사퇴 압력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안 의원의 주장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승마협회는 곧바로 반박 자료를 통해 해명했지만, 안 의원 측에서 재반박을 하며 논란은 진실공방 양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화그룹이 승마협회 후원에서 손을 떼자 승마계에서는 민감한 정치적 시비가 일어나자 한화 측이 연루되는 것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한화그룹이 너무 몸을 사리는 것 아니냐고 보기도 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 2월 파기환송심을 통해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법정구속된 지 1년 6개월 만에 풀려났다. 구속기간 동안 우울증과 패혈증으로 인한 호흡 곤란 증세를 겪어왔던 김 회장은 지난 3월 미국으로 출국해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화그룹은 고 김종희 한화 창업주가 1964년 도쿄올림픽 때 외국에서 말을 공수해 한국 승마대표팀의 올림픽 참가를 도우면서 승마계와 인연을 맺었다. 김승연 회장도 ‘갤러리아승마단’을 운영하며, 매년 대한승마협회에 10억 원 이상을 후원하고 있다. 김 회장의 삼남 김동선 씨는 승마 선수로 2006년 도하와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이처럼 창업주부터 3대를 이어 승마에 애정을 가져온 한화그룹이 한순간에 지원을 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화그룹 측에서는 ‘공주 승마’ 논란과 한화그룹 계열사 임원들의 협회 집행부 사퇴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신 회장 등 집행부가 이전부터 협회 내부적으로 갈등을 겪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전부터 협회 운영이 어려워 사퇴를 결심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한승마협회도 “집행부 내부의 일이라 자세히 말하긴 어렵지만, 신 회장을 비롯한 한화그룹 계열사 임원들의 사퇴의 원인이 이번 (정윤회 씨 관련) 논란 문제만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화그룹 인사들의 협회 집행부 사퇴가 있은 지 2주 후, 한화그룹은 다시 승마협회의 후원사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20일 대한승마협회는 “한화그룹이 회장직을 내려놓고 협회 운영을 그만둔 일은 승마계에 엄청난 손실이자 충격적인 일”이라며 복귀를 촉구하는 건의서를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한화그룹에 전달했다.
건의서에는 “한화그룹은 선대 때부터 승마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왔고, 그 오랜 투자가 이제 결실을 보기 시작한 단계”라며 “특히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한화그룹의 역할과 지원이 한국 승마계에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 건의서에는 한화그룹이 다시 회장사가 되길 바라는 승마인 228명의 서명이 들어있었다.
이에 한화그룹도 이러한 승마협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지난 23일 후원사 복귀를 결정했다. 한화그룹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한국 승마계 발전이라는 본연의 취지를 되살리고,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국가적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 복귀하겠다”고 전했다. 이로써 한화그룹은 승마협회에 기존에 해오던 10억 원 상당의 지원을 계속하게 된다.
다만 신은철 회장 등 협회 집행부 인사는 따로 복귀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다음 협회장을 선출할 때까지 행정 공백을 막기 위해 김효진 실무부회장이 협회에 복귀해 회장직을 대행하기로 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