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세월호 사고 가족 대책위원회 대표단을 면담하던 중 눈물을 보였다. 정계 일각에서는 이번 지방선거가 30~40대 분노한 부모들과 정권의 위기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50대 이상 고령층의 대결이 될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다. 사진제공=청와대
지난 2012년 18대 대선을 끝으로 정치일선을 떠난 한 야권 인사는 최근 세월호 참사에 따른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율 폭락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지방선거가 분노한 30~40대 부모들의 정권심판 의지와 정권의 위기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50대 이상 고령층의 박근혜 대통령 사수 의지의 대결이 될 것이며, 최종 결과는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다는 전망이었다. 새누리당 내에서 지방선거 완패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분석이다.
현재의 분위기에 맞지 않는 다소 생뚱맞은 분석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 인사는 “야당이 방심했다간 또 한 번 땅을 치고 울어야 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18대 대선이 있었던 2012년 12월 19일 자신이 상상을 뛰어넘은 투표율에 잔뜩 고무됐다가 결국에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는 경험을 들면서 “선거 결과를 예측하려면 세대별 지지율뿐 아니라 세대별 투표율, 세대별 유권자비율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당 지지자들이 들으면 짜증을 낼 수도 있겠지만,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에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뜯어보면 이 인사의 분석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1일 단위 조사를 이어가면서 매주 그 결과를 공개해 오고 있는 ‘한국갤럽’의 4월 첫째 주와 5월 둘째 주 조사 결과를 비교해 보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율이 전반적으로 크게 하락했으나 세대별 하락률에서는 큰 차이가 나타났다.
세월호 참사 이전인 4월 첫째 주 조사(조사기간 3월 31일∼4월 3일, 휴대전화 RDD 조사, 전국 성인남녀 1205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8%포인트, 응답률 16%)에서는 박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 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가 61%, 잘못 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가 28%였다. 반면 세월호 참사 이후인 5월 둘째 주 조사(조사기간 5월 12일∼15일, 휴대전화 RDD 조사, 전국 성인남녀 1204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8%포인트, 응답률 19%)에서는 박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46%, ‘부정 평가’가 42%로 나왔다.
이 기관이 올 들어 실시한 조사에서 박 대통령 지지율은 4월 첫째 주 가장 높았고 5월 둘째 주에 가장 낮게 나타났다. 한 달여에 불과한 기간 동안 박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15%포인트(p) 내려간 반면 ‘부정 평가’는 14%p 급등한 것이다. 박 대통령을 지지하다 이탈한 층이 무당파층으로 가지 않고 거의 그대로 비토(반대)층으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급격한 변화다. 성별, 세대별, 지역별, 직업별 차이와 상관없이 전반적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늘어나지 않고서는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
그러나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 철회 정도는 세대별로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두 조사 결과를 비교했을 때 박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이 가장 많이 빠진 세대는 30대로, 4월 첫째 주 44%였던 지지율이 5월 둘째 주 24%로 20%p 급락했다. 같은 기간 동안 40대에서도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17%p(59%→42%) 빠졌고, 19~29세에서는 11%p(41%→30%) 빠졌다. 30~40대가 ‘반 박근혜’로 돌아섰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50대의 박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도 11%p(70%→59%), 60대 이상은 13%p(85%→72%) 줄었다. 이들 연령층에서도 이탈이 있었지만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여전히 60~70%대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0대 이상 고령층의 공고한 친여 성향은 정당 지지율 변화에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두 조사에서 50대와 60대 이상 층의 정당 지지성향엔 별다른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다. 50대의 경우 새누리당 지지율이 4%p(54%→50%) 줄었고,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도 4%p(24%→20%) 줄었다. 무당층은 8%p(20%→28%) 늘었다. 60대 이상에서는 새누리당 지지율이 2%p(67%→65%) 줄었고, 새정치연합 지지율은 10%로 변화가 없었다. 무당층은 22%에서 24%로 2%p 늘었다.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감리교신학대 학생들이 지난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강제연행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큰 변화 없이 새누리당에 대한 충성도를 철회하지 않는 이들과 달리 40대 이하는 야당을 중심으로 결집하지 않고 있다. 19~29세의 경우 새누리당 지지율은 2%p(25%→27%) 오른 반면 새정치연합 지지율은 13%p(36%→23%)나 내려갔다. 무당파층은 11%p(33%→44%) 늘었다. 40대에서는 새누리당 지지율이 9%p(42%→33%), 새정치연합 지지율이 5%p(32%→27%) 빠졌다. 무당파층만 14%p(22%→36%) 늘었다. 다만 30대에서는 새누리당 지지율이 6%p(27%→21%) 빠지고 새정치연합 지지율이 5%p(36%→41%) 늘었다.
야당이 긴장해야 할 요인은 세대별 지지율만이 아니다. 총유권자 중 50대 이상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월 16일 안전행정부가 발표한 이번 지방선거 총유권자 수는 4130만 4394명으로, 연령별로는 40대가 21.7%로 가장 많고, 50대 19.7%, 30대 19.2%, 20대 16%, 60대 11.1%, 70대 이상 10.6% 등으로 나타났다. 19세 유권자는 1.7%로 집계됐다.
총유권자 수는 4년 전 지방선거 때보다 244만 2631명 늘었다. 특히 50대 이상 유권자 수는 1709만 2711명으로 4년 전과 비교하면 285만 명가량 늘어난 반면 40대 이하 유권자 수는 오히려 41만 명가량 줄었다. 비율로 보면 50대 이상이 전체 유권자의 41.4%를, 40대 이하가 58.6%를 차지한다.
유권자 비율 면에서 아직 40대 이하가 50대 이상보다 17%p 이상 많지만, 세대별 투표율 격차를 무시할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제18대 대통령선거 투표율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 대선 당시 50대의 투표율은 82.0%, 60대 이상은 80.9%에 달했다. 20대(68.5%)와 30대(70.0%), 40대(75.6%)에 비해 훨씬 높았다. 지난 대선이 이례적으로 젊은 층의 높은 투표 열기 속에 치러졌음을 감안하면 이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세대별 투표율 격차가 이보다 더 컸다. 당시 투표율은 60대 이상이 69.3%, 50대가 64.1%를 기록한 데 비해 40대는 55.0%에 불과했다. 24세 이하의 20대 전반은 45.8%, 20대 후반은 37.1%, 30대 전반은 41.9%, 30대 후반은 50.0%였다.
한 정치평론가는 “투표율이 높고 박 대통령과 여권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50대 이상 유권자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 악화된 민심 때문에 고령층이 지지성향을 드러내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투표 결과 간에 무시 못 할 차이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장기적으로 박 대통령과 여권에 득이 될 게 없다는 주장도 있다. 새누리당 비박계의 한 의원은 “세월호 참사는 제2의 IMF 사태에 비견될 정도로 정부의 무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거에서 처참할 정도로 심판받는 게 반성과 새로운 모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청와대가 불통과 오만 속에 독주하는 동안 새누리당은 허수아비 같은 존재가 됐던 것 아니냐. 지금 박 대통령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오직 국민들밖에 없기 때문에 차라리 이번에 호된 매를 맞는 게 미래를 위해 더 나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정치학 교수도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면 2016년 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 전까지 2년 동안 전국 단위 선거가 없다”며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이 이번에도 쇄신하지 못할 경우 기강해이와 독주가 박근혜 정부 말기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