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합동분향소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작은 사진은 세월호 참사 관련 촛불 집회 모습.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0(zero).’ 세월호 침몰 직후 스스로 탈출한 피해자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구조한 피해자들의 숫자다. 우리 정부는 해경과 해군을 통해 각종 해저 탐사 장비와 구조 로봇을 투입했지만, 그 어느 것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심지어 알파잠수기술공사(대표 이종인)의 잠수장비인 ‘다이빙 벨’의 투입과 관련해 논란만 가중된 채 전격 철수로 일단락됐다. 각종 첨단 기술로 무장한 대한민국이지만, 실제 현장에선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0(zero)’은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 정부가 해난 구조 기술 개발과 관련해 투자한 재난 분야 국가 R&D(Research and Development·연구개발)의 총액을 나타내는 숫자기도 하다. 지난해 우리 정부는 해양수산부와 안전행정부 등 그 어떤 부처에서도 이와 관련한 기술개발에는 단 한푼도 투자하지 않았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어쩌면 ‘뿌린 대로 거둔다’는 옛말이 그대로 적용된 셈이다.
‘1.26%.’
이는 지난해 우리 정부가 투입한 국가 R&D 예산 중 전체 재난 분야에 책정한 예산 비중이다. 지난해 17조 원에 달하는 전체 국가 R&D예산에서 고작 2131억 원을 재난 기술에 투자했다. 각 부처별로 살펴보면, 국토교통부(360억 원), 기상청(297억 원), 소방방재청(251억 원), 보건복지부(233억 원) 등의 순이다. 앞서 언급했듯 해난 구조와 관련한 기술개발 투자가 전무한 것을 떠나, 근본적인 재난 기술 분야 투자가 열악한 셈이다.
그 세부적인 내용을 따져 들어가면 심각성은 더한다. 지난해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작성한 ‘범부처 재난·안전 R&D 추진현황 및 전략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재난 R&D 예산 2131억 원 중 5억 원 미만의 소규모 프로젝트가 차지하는 비율이 41%에 달하며 10억 원 미만이 투입되는 프로젝트로 폭을 넓혀보면 전체의 6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내부에선 “새발의 피 예산 책정에 그 마저도 각 프로젝트 당 투입되는 예산은 대부분 소규모로 이뤄지기 때문에 성과 자체가 미진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민간 방재 기술업체인 방재안전기술원 최성열 대표는 “한국엔 재난 분야의 정의조차 없다”며 “국가과학기술표준코드에도, 국가산업표준코드에도 재난 분야의 코드는 없다. 지난해 이와 관련해 정부차원에서 코드 신설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고 지적했다. 그만큼 우리 정부에서 재난 기술을 두고 얼마나 홀대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서울 청계광장에서 시민들이 노란리본을 매달고 있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러한 환경에서 높은 기술을 바라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지난 2012년 미래창조과학부의 자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재난 기술 선진국 미국과 비교해 자연재해 모니터링 기술, 기상징후 조절 기술, 재난 정보통신체계 기술, 재난구조 로봇 기술, 재난현장 소방 장비 개발기술 등에 있어서 최소 4년에서 최고 8년까지 기술격차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웃 중국에 비한다면 고작 1~2년 앞선 수준으로 보고된다.
이 때문에 재난 기술과 관련한 국내 산업은 아예 형성조차 안 돼 있다. 국가 차원의 연구비가 소규모다 보니 민간 업체의 기술 개발과 연구는 당연히 걸음마 수준이다. 중소 민간 업체들까지 단단히 뿌리를 내린 바다 건너 이웃 일본과는 비교가 안 된다. 최성열 대표는 “우리와 같은 재난 기술을 다루는 업체들은 민간에는 내다팔 수 없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므로 결국 정부 차원에서 사들여야 한다”며 “우리가 자체적으로 연구개발에 나서 기술을 만들어도 정부의 입찰 경쟁을 통과하지 못하면 소용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문제는 정부가 우리 자체의 기술개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라며 “한 예로 재난 기술 중에는 재난을 사전에 대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전 분석을 내놓는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 각 재난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는 대다수 소프트웨어는 외국산이다. 국산화 노력은 뒷전이다. 우리 같은 민간 업체가 자체적으로 이러한 기술을 개발하려고 해도 정부가 받아주지 않는다. 자국의 환경에 적합한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려는 일본의 노력과 비교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이렇게 부실한 재난 분야 국가 R&D 투자 실상이 그대로 적용됐다는 분석이다. 사고 직후 투입되는 구조 기술은 둘째 치고, 사전 방지를 위한 방재 시스템 기술도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것. 최 대표는 “문제는 이번 세월호 참사 이후 문제를 드러낸 해난 구조 방재 시스템뿐 아니라 각 분야 사고와 관련한 대다수 방재 분야에 있어서 해당 기술이 막상 사고 후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준비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업계 내부에선 근본적으로 국내 재난 기술 확보를 위해선 정부의 투자 규모를 늘리는 것뿐 아니라 정부와 민간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해당 분야 학계, 산업계, 연구원 등 1100명을 대상으로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실시한 ‘바람직한 연구 방향’ 조사에서 응답자의 33%가 민간·정부 협력을 토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현재 정부에선 ‘기술 바우처 제도’ 도입을 논하고 있다. 이는 애초 민간 업체에 개발해야 할 기술을 지정해주고 예산을 투입하는 제도다. 민간 업체가 갖게 되는 사업의 불확실성을 애초 감소시키자는 것이다. ‘국가개조’ 수준의 대책을 내놓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재난 기술 투자 의지와 개선을 유심히 지켜볼 대목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