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유병언·유대균 부자에 대해 현상금 8000만 원을 걸고 전국에 수배전단을 배포했다. 지난 5월 16일 인천 중구 인천항에서 해양경찰 대원들이 유대균 씨의 밀항을 대비해 탑승객을 확인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지자마자 검찰이 그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에 대한 수사와 함께 실질적 선주인 유병언 전 회장 일가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을 때 법조계에서 가장 우려한 일은 유 전 회장 일가의 범죄 혐의를 검찰이 과연 입증할지였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면서 유 전 회장 일가의 측근들이 줄줄이 엮여 들어가고 유 전 회장과 자녀들의 혐의도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역시 최재경(세월호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인천지검장)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검찰은 측근 8명을 구속하고 유 전 회장의 형인 병일 씨까지 소환 조사해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자녀들 소환에 착수하면서 수사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유 전 회장의 차남 혁기 씨와 장남인 대균 씨는 검찰 소환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행방이 묘연하다. 검찰은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혁기 씨와 장녀 등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하고 미국 연방수사국(FBI)·국토안보수사국(HSI) 등 수사당국의 협조를 구한 상태다. 검찰의 소환 통보에도 아무런 연락 없이 출석하지 않은 장남 대균 씨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하지만 검찰이 미국 수사당국에 사법공조를 요청한 것과 달리 혁기 씨는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유 전 회장까지 검찰 소환에 불응하고 잠적하면서 검찰은 난감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이 수사 초기 혐의 입증에만 급급한 나머지 소재 파악 등 가장 기본적인 사전 준비를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혐의가 명백한 경우 검찰이 구속영장을 바로 청구하지만 유 전 회장의 경우 자녀들이 소환에 불응하기 시작했을 때 먼저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신병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반면 검찰의 한 관계자는 “수사를 시작했다고 해서 혐의자의 소재를 계속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사찰”이라면서 “수사에는 단계가 있다”고 말했다.
유 전 회장 일가의 계열사인 천해지의 고문변호사는 수사 초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 전 회장 일가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통감하고 있고 검찰이 부르면 출석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유 전 회장이 금수원에 머물고 있으며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피해배상도 액수에 관계없이 무한 책임을 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검찰은 유 전 회장 측이 책임을 질 것처럼 언론을 통해 호언장담해놓고 잠적할지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유 전 회장 측 변호인의 장담 중에 실제 지켜진 것은 하나도 없다. 유 전 회장 측이 선임한 변호인 2명마저 검찰 수사가 혁기 씨 등 소환통보로 이어지자 돌연 사임한 상태다.
이에 더해 기독교복음침례회(세칭 구원파)마저 종교 탄압을 주장하며 유 전 회장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금수원을 사수하고 나오자 검찰은 충돌 없이 금수원이 진입할 방도를 구상하다 결국 유 전 회장에게 도주와 증거인멸을 할 시간만 벌어준 셈이 됐다. 이에 검찰은 이례적으로 법정최고형을 받게 하겠다면서 대외적으로 경고했다. 또 현상금과 지명수배를 내리는 등 유 전 회장 일가를 압박함과 동시에 유 전 회장 등을 숨겨준 경우 범인은닉·도피죄로 적극 처벌할 것이라며 유 전 회장 일가에게 사실상 선전포고 했다.
다만 시민의 제보나 구원파 내부의 분열 등으로 인한 내부제보자가 ‘구세주’처럼 등장할 수도 있다. 검찰이 유 전 회장에게 탈옥수 신창원과 같은 액수의 현상금 5000만 원을, 장남 대균 씨에 대해 3000만 원을 걸고 수배전단지를 전국에 배포한 것도 이 같은 기대에서다.
또 구원파 신도들이 금수원을 사수하는 과정에서 강경파와 온건파 간에 분열이 감지되고 있는 만큼 검찰은 내심 구원파 내부 제보에 기대를 걸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도 내부 제보자의 제보로 시작된 수사라면서 이번 사건도 내부 제보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24일 신도들 중 유 전 회장을 숨겨주거나 금전적으로 도와주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어떤 행위가 범인은닉·도피죄로 처벌받는지 구체적인 예시와 과거 처벌 사례도 공개했다. 유 전 회장에게 숙소나 음식을 주고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자동차 제공 등 각종 심부름을 할 경우 엄히 처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검찰이 밝혀낸 유 전 회장의 범죄액수는 배임 1071억원, 횡령 218억 원, 증여세 포탈 101억 원 등 총 1390억 원에 달한다. 탈세 혐의로 국세청에서 줄줄이 재산을 압류당하고 있는 유 전 회장은 2011년경부터 사진사업과 관련해 101억 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르면 횡령, 배임으로 취득한 이득액이 50억 원 이상일 때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또 조세포탈의 경우에는 포탈 세액이 5억 원 이상인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과 포탈 세액의 3배 이하에 해당하는 벌금에 병과할 수 있다.
유 전 회장의 경우 횡령과 배임 혐의가 인정될 경우 횡령액과 배임액이 각각 50억이 넘어 5년 이상 최대 45년 또는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검찰이 유 전 회장과 자녀들의 소재를 파악해 구속한다고 해도 이번 세월호 참사와의 연관성을 입증하고 범죄수익을 밝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유 전 회장 신병확보에 이어 이번 수사의 두 번째 고비가 될 전망이다. 유 전 회장이 자기 명의로 소유한 계열사와 재산이 거의 없어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윤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