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 은행이 예금금리는 내리면서 자동화기기 이용 수수료는 줄줄이 올려 서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종현 기자 | ||
지난 5월18일 국민은행의 정기예금 금리인하로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금리를 내리더니 이번엔 너나 할 것 없이 각종 수수료 인상에 나서고 있어 서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특히 최근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은행은 고객과 소비자보호원의 수수료원가 공개 요구를 무시하면서 지속적으로 수수료를 인상하고 있어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더욱이 올해 1분기 시중은행의 당기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3배 늘어난 1조6천억원을 기록하고 올해 은행권의 사상 최대 순익이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또 다시 수수료 인상을 실시해 소비자의 요구에도 아랑곳없이 은행권이 제 배 채우기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지난 4월 신한, 조흥은행은각종 증명서 발급 수수료, 자기앞수표 발행 수수료, 타행 현금인출 수수료 등을 큰 폭으로 인상했고 6월부터는 하나은행, 제일은행도 자행 및 타행환 수수료, 현금인출기 수수료 등을 인상했다. 다른 은행들도 고객의 반응을 봐가며 곧 수수료를 인상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도은행인 국민은행은 은행업무 전반에 걸친 원가분석을 통해 새로운 수수료 항목을 개발하거나 기존의 수수료 인상 수준을 정해 하반기부터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나은행의 경우 1일부터 자행, 타행환 수수료, 자동화기기(CD/ATM) 이용 수수료, CD공동망 이용 수수료, 계좌이체 수수료, 인터넷뱅킹 및 폰뱅킹 수수료 등 각종 수수료를 일제히 인상했다. 이에 따라 CD공동망으로 현금을 인출할 경우 수수료가 영업시간에는 8백원에서 1천원, 영업외 시간에는 1천원에서 1천2백원으로 오르고 영업외 시간의 계좌이체 수수료도 1천5백∼2천원에서 1천6백∼2천1백원으로 뛰었다.
특히 시중은행이 일제히 인상하고 있는 수수료는 대부분 개인고객들이 자주 이용하는 서비스에 집중돼 “은행이 곶감 빼먹듯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수신과 여신을 주업무로 하는 은행이 이처럼 수수료 인상에 몰두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전통적인 예대업무에서 더 이상의 수익을 올리기 어렵게 되자 손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수수료사업에 매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은행의 예대업무와 신탁, 투자업무 등은 정교한 금융기법이 필요해 위험부담이 따르는 반면 수수료는 추가적인 투자가 거의 필요하지 않은 ‘무위험사업’이라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의 수수료 수입 중 인터넷뱅킹과 자동화기기 등 전자금융 관련 수수료는 유지·관리 비용이 그다지 들지 않는다. 은행 입장에서 보면 땅 파서 장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이 가운데 인터넷뱅킹과 폰뱅킹은 이용수수료도 저렴하고 계좌이체 서비스만을 제공하므로 CD, ATM 등 자동화기기 운영에 따른 수수료 수익이 은행 수수료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물론 은행 입장에서 초기 전산망을 설치하고 CD, ATM 등 자동화기기 설치에 따른 투자비용이 발생한다. 국내에 설치된 자동화기기(CD/ATM)는 93년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돼 현재 6만여 대에 이르고 있다. 기기 한 대 당 가격이 1천6백만원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은행들이 자동화기기 설치에 약 1조원을 쏟아 부은 셈이다.
하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은행의 초기 투자 비용은 이미 회수가 끝났고 초기 비용만큼의 이익을 더 남겼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금융권 전문가들은 현재 은행권이 거둬들이는 수수료의 대부분이 은행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은행이 자동화기기를 운영하면서 연간 거둬들이는 수익은 과연 얼마나 될까.
금융감독원 은행국의 한 관계자는 “은행권 전체로 보았을 때 원화수수료수익의 최소 40% 이상이 계좌이체, 현금인출시 붙는 수수료 수익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은행권이 현금인출과 계좌이체 등의 수수료 수입으로 올리는 수익은 연간 4천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은행권에서는 여전히 현행수수료가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자동화기기와 관련된 수수료는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기기의 유지·관리 비용이 적잖게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소비자들의 요구대로 구체적인 원가를 공개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수수료 원가에는 자동화기기 가격, 기기의 보수유지비, 금융결제원 분담금 등의 직접적인 비용이 포함된다고 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동화기기 설치에 따른 은행권의 초기 비용은 회수가 완료됐다는 게 금융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자동화기기 시장도 포화상태라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은 새로운 기기 설치보다는 기기의 보수·유지 쪽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은행에 자동화기기를 공급하는 업체 관계자 A씨는 “자동화기기 한 대당 보수유지비는 월 5만원 정도”라고 전했다. 전체 기기가 6만대인 점을 감안하면 은행권은 연간 3백60억원의 보수·유지비를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은행권이 공동전산망을 공유하며 지출하는 금융결제원 분담금 또한 전체 수수료 수입(지난해 4천억원 이상 추산)의 4%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결제원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시중은행들이 금융결제원 분담금으로 낸 돈은 1백50억원 정도로, 이것은 자동화기기 이용과 인터넷뱅킹, 타행 계좌이체 등의 전산망 사용료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금융결제원 분담금이란 금융결제원이 각 시중은행들과 전산망을 설치, 공유하는 데 드는 비용 가운데 시중은행에서 부담하는 돈을 말한다. 금융결제원 전산망을 통해 고객들이 타 은행의 자동화기기나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현금인출과 계좌이체를 할 수 있는 것.
결국 은행권에서 주요 비용으로 꼽는 기기 보수유지비, 금융결제원 분담금 등은 전체 이용수수료 수입의 9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시중은행들은 여전히 현행 수수료가 ‘원가’에 못 미치는 상태라고 주장한다.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직접비용 외에도 인건비, 임대료 등의 간접비용이 발생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회계지식 부족으로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며 “원가공개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1년 12월 한국금융연구원에서 발간한 정책보고서 <은행 수수료체계 선진화 방안>에 제시된 B은행의 내부자료에는 자동화기기 이용수수료의 원가가 3백원이라고 명시돼 있다. 또한 은행측은 ‘현금인출기 관리 등으로 추가 인건비가 발행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시중은행들이 현금인출기를 대대적으로 도입한 이후 창구직원의 수를 줄여 오히려 인건비 부담을 낮추고 있다는 점만 봐도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 은행국 관계자도 “은행권의 2백여 가지의 수수료 항목 중 대부분이 원가 혹은 그 이하의 수수료를 받지만 인터넷뱅킹, 폰뱅킹, 자동화기기 관련 수수료에서 은행은 상당한 수익을 내고 있다”며 “시중은행들이 상대적으로 고객의 저항이 적고 적잖은 이윤을 내고 있는 이들 수수료를 너무 쉽게 인상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한국은행이나 금융감독원은 은행의 수수료 문제에 거의 손을 놓고 있다. 다만 한국은행의 은행국 관계자는 “금리는 한국은행이 철저히 통제하고 있지만 수수료는 서비스에 대한 대가이므로 우리로서도 규제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수수료가 금리와 유사한 효과를 가지므로 한국은행에서도 내부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방안을 검토중이다”고 전했다.
소비자보호원은 은행 수수료 문제와 관련해 “원가도 공개하지 않은 채 ‘현행 수수료가 현실화돼야 한다’며 무작정 수수료만 올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은행들마다 통일된 원가 산정 기준도 없어 은행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며 “은행들이 정확한 원가 산정 기준과 수수료 원가를 공개해 국민들의 공감을 얻는 게 순리”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대다수 시중은행들은 원가 공개는 거부한 채 “수수료 사업에서 은행은 손해 보고 있다”고 주장하며 추가적으로 수수료를 인상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전문가들은 은행들이 수수료 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수수료 수익이 경기침체와 상관없는 안정적인 수입원으로서 불황 시에도 은행 수익이 급격히 악화되는 것을 막아줄 것이라는 편의주의적인 생각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자동화기기 이용 현금인출시 수수료 | 자동화기기 이용 계좌이체시 수수료 | |||||
은행 | 구분 | 영업시간 | 영업시간외 | 영업시간 | 영업시간외 | |
신한 | 당행 | 면제 | 600 | 면제 | 600 | |
타행 | 1000 | 1200 | 1300 | 1900 | ||
국민 | 당행 | 면제 | 600 | 면제 | 600 | |
타행 | 800 | 1000 | 1000~1500 | 1600~2100 | ||
제일 | 당행 | 면제 | 면제 | 면제 | 면제 | |
타행 | 1000 | 1200 | 1000~1500 | 1500~2000 | ||
농협 | 당행 | 면제 | 400 | 면제 | 300 | |
타행 | 700 | 900 | 500~2500 | 800~2800 | ||
기업 | 당행 | 면제 | 500 | 면제 | 500 | |
타행 | 800 | 1000 | 1000~1500 | 1500~2000 | ||
하나 | 당행 | 면제 | 600 | 면제 | 600 | |
타행 | 1000 | 1200 | 1000~1500 | 1600~2100 | ||
우리 | 당행 | 면제 | 600~1000 | 면제 | 600~1000 | |
타행 | 1000 | 1200 | 1000~1500 | 1500~2000 | ||
한미(7/14예정) | 당행 | 면제 | 600 | 면제 | 600 | |
타행 | 800 | 1000 | 1000~1500 | 1600~21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