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24일 인천 모자 살인사건의 범인 정 씨가 인천 남구 남부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왼쪽은 살해당한 모친 김 씨의 자택 내부.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8일 ‘인천 모자 살인사건’의 피고인 정 씨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정 씨의 요청에 의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재판에서는 배심원 9명 중 8명이 사형의견을 냈다. 배심원 대부분이 사형 의견을 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정 씨는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자동으로’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게 됐다(형사소송법 349조에 따라 사형·무기징역·무기금고형이 선고된 판결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항소 및 상고를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정 씨는 사형 선고를 받은 후 곧바로 자신이 직접 작성한 A4용지 한 장 분량의 항소장을 제출했다. 형량을 줄이려는 정 씨의 적극적인 자기방어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정 씨가 처음부터 재판에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구치소에 들어온 첫날부터 살 생각이 없었다고 했던 정 씨가 항소장을 제출하며 심경변화를 일으킨 데는 이모 김 아무개 씨(53)의 영향이 컸다. 이모 김 씨는 “그래도 살아서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사죄하며 살라”며 정 씨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 항소장을 제출한 정 씨는 국선변호인 선정을 결정했지만 쉽지 않았다. 정 씨의 변호인은 두 번 연속 사임서를 제출했다. 정 씨는 어머니와 형을 잔인하게 살인하고도 직접 항소를 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공분까지 샀다. 정 씨는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리기 전 한 번의 항소이유서와 두 번의 반성문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정 씨의 국선 변호인은 항소심에서 “(정 씨의) 죄가 너무 크지만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는 만큼 양형 부당을 주장한다”고 변호했다. 그러나 정 씨 변호인 측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정 씨의 반성문은 사생활이 담겨 있어 공개할 수 없는 입장”이라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한편 경찰에 남편 정 씨가 시신을 유기한 장소를 지목한 뒤 공범으로 몰리자 지난해 9월 26일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인천 논현동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내 김 아무개 씨(사망당시 30세)의 유족은 국가인권위에 경찰의 강압수사와 관련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취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기 전인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던 시점에 이미 인권위와 경찰의 강압수사와 관련해 상담한 사실이 있었다. 인권위 관계자는 “지난해 8월 김 씨가 민원을 넣고 상담한 사실이 있다. 하지만 인권위의 조사는 민원이 아닌 진정이 들어와야 진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당시 김 씨의 무죄를 주장했던 김 씨의 오빠는 지난해 8월과 9월 2번에 걸쳐 경찰의 강압수사와 관련된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한 바 있다. 하지만 강압수사에 대한 인권위의 조사는 진행되지 못했다. 앞서의 인권위 관계자는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김 씨의 오빠가 인권위에 접수했던 진정서를 모두 취하했다. 현재 해당 건은 모두 종결된 상태”라고 말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인천 남동경찰서 관계자도 “그때 인천 모자 살인사건 진상규명과는 별개로 강압수사에 대해 해당 수사관 조사를 했지만 인권침해 사실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부인 김 씨 자살 이후 ‘인천 모자 살인사건’의 실체는 남편 정 씨의 진술에 상당부분 의지해 흘러갔다. 부인이 범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던 정 씨는 뒤늦게 그의 자살 소식을 듣고 부인이 범행에 가담한 구체적인 사실을 털어놨다. 정 씨는 부인의 범행가담 사실을 뒤늦게 고백한 이유에 대해 “아내가 자살한 걸 알게 된 이상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상을 경악하게 했던 정 씨의 적극적인 방어가 시작된 가운데 ‘인천 모자 살인사건’ 항소심 3차 공판은 오는 6월 10일 4시 30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사건경위 어머니 재산 노린 패륜극 지난해 8월 13일 인천에서 김 아무개 씨(여·당시 58세)와 장남 정 아무개 씨(당시 32세)가 실종됐다. 김 씨는 인천 남구의 한 은행에서 현금 20만 원을 인출하는 모습이 찍힌 이후 행방이 묘연했다. 장남인 정 씨도 마찬가지였다. 장남 정 씨는 어머니 김 씨가 실종된 같은 날 오후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한 뒤 연락이 끊겼다. 사건 발생 9일 후 경찰은 차남인 정 씨를 용의자로 긴급체포했다. 하지만 정 씨는 증거 불충분으로 체포 15시간 만에 풀려났다. 사건이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던 때 어머니 김 씨의 시신이 강원도 정선군의 한 야산에서 발견됐다. 시신의 위치를 알려준 건 다름 아닌 차남 정 씨의 부인 김 씨였다. 어머니의 시신이 발견되자 차남 정 씨는 범행을 자백하고 형의 시신 유기장소를 진술했다. 그러던 중 경찰은 정 씨의 아내 김 씨도 범행에 가담한 정황을 포착,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 중이던 김 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고 출석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내 김 씨는 경찰 조사 예정 당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집에서는 자신의 결백과 경찰의 강압수사를 주장하는 연습장 2장 분량의 유서도 발견됐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차남 정 씨는 부인과 공모해 어머니와 형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어머니와 부인의 고부 갈등이 잦았고, 도박 중독 등으로 어머니가 마련해준 1억 원 상당의 집을 처분하고도 8000만 원의 빚을 져 생계가 곤란해지자 어머니의 재산을 노리고 살해하기로 공모한 것이다. 당초 인천 모자 실종사건으로 수사가 진행됐던 이 사건은 어머니의 재산을 노린 패륜극이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