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처지의 두 회장이 서로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왼쪽)의 경영전략은 원론적 수준에 그친 반면, 황창규 KT 회장은 구체적인 사업계획과 투자규모를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연합뉴스
지난 5월 19일 포스코는 한국거래소에서 기업설명회(IR)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이례적으로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참석해 사업구조 개편 방향과 향후 경영 전략을 직접 발표했다. 권 회장이 직접 기업설명회에서 경영 전략을 밝힌 것에 대해 재계와 증권가에서는 “애널리스트들과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심어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권 회장의 발표를 듣고 적잖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업설명회에서 권 회장이 밝힌 사업구조 개편과 경영 전략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내용이었으며 새롭거나 확실한 방안이 없었다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들을 상대로 하는 기업설명회인데 권 회장은 확실하게 말한 게 거의 없었다”며 “회장이 직접 참여해 설명한다는 효과를 전혀 보지 못했다”고 평했다.
권 회장은 이날 “사업 구조조정을 분명히 한다”며 “포스코를 제외한 모든 사업이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밝혔다. 회장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해온 재무구조 개선과 철강 본원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거의 없었다. 시장에서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대우인터내셔널 매각 문제나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 인수 문제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매각설이 불거진 대우인터내셔널에 대해 권 회장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보고 있지만 현재 상태에서 확정된 것은 없다”고 답했다. 동부 패키지 인수에 대해서도 “실사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 포스코의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방안으로 결정하겠다”며 원론적인 수준의 의사를 표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두 가지 모두 포스코 관계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답변”이라며 “시장에서는 포스코 회장을 통해 그런 말을 원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 관심거리였던 포스코엠텍에 대한 권 회장의 생각은 그나마 확실했다. 권 회장은 “기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사업을 택했다”고 인정하면서도 “현 시점에서 (포스코엠텍) 매각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못 박았다.
일반적으로 최고경영자(CEO)가 구조조정 의지와 방안을 밝힌 다음에는 주가가 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포스코의 경우 회장이 직접 앞장서 구조조정 의지를 알렸음에도 오히려 주가가 하락했다. 기업설명회가 있던 지난 19일 포스코 주가는 0.48% 하락했으며 이후에도 계속 하락해 지난 29일에는 29만 9000원으로 마감,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30만 원도 붕괴됐다.
반면 구조조정과 경영 전략에 대한 황창규 KT 회장의 목소리는 비교적 단호하다는 평가다. 지난 4월 초 직원 8000여 명의 명예퇴직 신청을 받은 데 이어 지난 20일에는 서울 광화문 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해 KT의 미래를 밝혔다. 권오준 회장이 기업설명회에 참석한 이튿날이다.
황 회장은 이 자리에서 “속도, 용량, 연결이 폭발하는 융합형 기가 인터넷 시대를 선도하고 5대 미래 융합서비스 사업 육성을 통해 ‘기가토피아(GiGAtopia)’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기가(Giga·1000Mb) 인터넷이란 인터넷 속도가 지금보다 3~10배 빠른 것을 의미한다. 또 5대 미래 융합서비스 사업은 스마트 에너지, 통합 보안, 차세대 미디어, 헬스케어, 지능형 교통관제를 말한다.
황 회장의 이 같은 비전 제시는 하루 앞서 기업설명회에서 향후 계획을 밝힌 권 회장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권 회장이 큰 틀에서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면 황 회장은 구체적인 사업계획과 투자 규모를 밝혔다. ‘민영화된 공기업’으로서 닮은 꼴 두 기업의 CEO가 판이한 모습을 보인 것.
KT의 주가 역시 포스코와 달리 4월 초 구조조정 소식과 지난 20일 황 회장의 기자간담회 이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직원 명예퇴직 뉴스가 전해진 지난 4월 8일 KT 주가는 무려 6.84%나 폭등했다. KT 주가가 6% 이상 폭등한 것은 지난 2010년 1월 27일 7.09%가 오른 이후 4년 3개월 만이다. 지난 20일에도 KT 주가는 1.72% 상승했다.
재계에서는 두 회장의 사뭇 다른 행보의 이유를 ‘출신 성분’에서 찾기도 한다. 권 회장은 연구원 출신에다 1986년 포스코 입사 후 줄곧 포스코에만 몸담고 있었던 내부 출신인 데 반해 황 회장은 사기업인 삼성전자 출신에다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 단장을 지냈다. 황 회장은 또 취임 초부터 KT 내부의 공기업적 성격을 우회적으로 비판해왔으며 이를 개혁하겠다는 의지도 시사한 바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