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발생 초기부터 운전자가 왜 버스를 멈출 수 없었는지, 그 원인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경찰은 일단 운전자 과실쪽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피해 유가족과 일부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사고 원인에 대한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며 진상규명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운전사를 포함해 3명의 희생자를 낸 ‘송파버스추돌사고’의 최종결과발표가 지난 5월 30일 나왔다. 사고 원인 분석을 맡은 송파경찰서는 택시 3대를 추돌한 1차 사고를 운전사의 졸음운전 탓으로, 30-1 버스와 옆 차선에 있던 벤츠 등의 차량 두 대를 추돌한 2차 사고에 대해 운전 과실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경찰의 발표를 그대로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공개한 사고 당시 3318번의 폐쇄회로(CC)TV 영상에 찍힌 운전사 염 씨의 모습을 졸음운전과 운전과실로 보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 결과에 의문이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염 씨의 적극적 방어운전이다. 버스 안 블랙박스 영상에 따르면 염 씨는 1차 사고 후 빠른 속도로 운행하는 차 안에서 핸들을 이리저리 틀어 갈지자형으로 운전하며 보행자와 자동차들을 피해간다. 정규노선대로라면 100여 m를 더 가서 우회전해야 했을 버스가 잠실역 사거리에서 우회했다. 영상을 보면 교차로에서 직진차로는 신호대기 중인 차들로 막혀 있기에 염 씨는 급커브임에도 그대로 핸들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염 씨가 적극적으로 방어운전을 한 모습과 정황이 CCTV를 통해 공개되면서 경찰 결과 발표에 대한 의혹은 식지 않고 있다.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점은 또 있다. 경찰은 3월 29일 중간수사 발표에서 “1차 사고가 발생하여 당혹감으로 인해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밟았을 개연성이 높다”고 밝혔다. 운전 경력 20년의 염 씨가 1분여 가까이 브레이크와 엑셀을 혼동했다는 얘기다.
설령 염 씨가 브레이크페달과 엑셀을 혼동했다 하더라도 경찰의 발표와는 정황상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경찰이 발표한 운행기록계 자료에 따르면 1차 사고 당시 버스 속도는 22km/h에 1097rpm(엔진 분당 회전수)이었다. 사고 1초 후 엔진 분당 회전수는 956rpm으로 약간 떨어진 수치를 보인다. 같은 시점 블랙박스 영상에는 염 씨가 이를 악물고 상체를 뒤로 젖히며 무언가를 온 힘을 다해 밟는 모습이 찍혔다. 만일 경찰이 발표한 대로 이때 염 씨가 브레이크를 엑셀로 오인해 밟았다면 rpm은 치솟아야 했다. 반대로 브레이크를 제대로 밟았다면 rpm이 큰 폭으로 떨어졌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고의 경우 어느 쪽으로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많은 이들이 차량 결함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3월 19일 서울 송파구청 사거리에서 발생한 버스 추돌사고 현장과 블랙박스 복원 영상. 경찰은 운전자 과실로 결론을 내렸지만 유가족 등은 수사과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가속 부분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았다. 1차 사고 이후 속도와 rpm은 빠르게 올랐다. 운행기록계에 따르면 버스는 25초만에 22km/h에서 70km/h로 가속했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이 ‘버스가 짧은 시간에 저 정도 가속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품었다. 도로교통공단 천정환 선임과장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4월 19일 있었던) 현장검증에서도 정상적으로 가속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송파 버스 사고 3일 후인 3월 21일 저녁 7시 인천 서구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일어났다. 인천 석남동을 달리던 28-1 버스는 인도 난간과 부딪치고 앞서 신호를 기다리던 통근버스를 들이받고 멈췄다. 22명의 부상자를 낸 이 버스 역시 3318과 같은 ‘현대 뉴슈퍼에어로시티 초저상SE’다. 차량을 몰던 운전사 원 아무개 씨(60)는 “출발하는데 갑자기 차가 탄력을 받더니 브레이크를 밟아도 소용이 없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경찰은 이 사고 역시 운전사 과실에 의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지난 5일 기자는 서울 강동구 강일동에 위치한 강동공영차고지를 찾아 사고 차량과 같은 버스를 모는 운전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삼삼오오 모여 승차 대기를 하던 기사들의 표정엔 회의감이 묻어 있었다. 한 운전사는 “수사결과 다 나온 마당에 다시 얘기 꺼내 뭐하겠느냐”는 말을 하면서도 “현대차라는 대기업이 있기에 밝힐 수 없었을 것”이라며 ‘급발진설’에 무게를 실었다. 역시 옆에 있던 한 정비사도 “현장검증에서 사고차량 부품을 떼다 시운전했다고 하는데 급발진이라는 게 갑자기 일어나는 거지 시운전한다고 똑같이 재현되겠느냐”며 경찰의 조사방식에 의문을 표했다.
송파 버스사고 차량에서 회수된 6개 주요 부품을 떼 실험용 차량에 장착, 사고 상황을 재연해보는 모습. 연합뉴스
운전사 문 아무개 씨는 염 씨가 리타더(보조제동장치)와 사이드브레이크와 같은 또 다른 보조제동장치를 사용하지 않은 점에 대해 “과거에는 일정속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리타더와 사이드브레이크가 듣지 않았다. 차량이 좋아지면서 두 보조 장치가 개선된 것”이라며 “오랜 기간 운전을 해 구형 차량에 익숙한 염 씨가 급한 순간에 보조장치를 생각해내지 못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버스 사고 희생자 유족들도 경찰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3318 버스 앞차에 타고 있다 변을 당한 이 아무개 군(19)의 아버지는 송파경찰서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려 경찰의 수사 미흡을 규탄했다.
이 씨는 글에서 “(경찰의) 발표는 1차 사고에 대한 발표임에도 마치 모든 사고가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건으로 호도되고 있다”며 “2차 추돌 이전 5초간의 블랙박스(영상)는 복원하지도 못하였다”며 경찰을 질책했다. 또 3월 31일 올린 글에서는 “1, 2차 사고가 3분 간격이라는 발표를 (경찰이) 69초로 수정 발표했다”며 수사과정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운전사 염 씨의 동생 염 아무개 씨 역시 지난 5일 게시판에 글을 올려 담당 경찰의 실명을 거론하며 “끝까지 가슴 아픈 유족들에게 거짓말하면서 차마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생각을 해냈다”고 울분을 토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운전자 과실 가능성 ‘핸들 꺾지 않고 돌진 왜…’ 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운전자 염 씨의 사고 당일 운전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경찰의 발표대로 1차 사고 전후로 보조제동장치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장애물에 들이받아 2차 피해를 줄이는 등의 적극적인 사고 방지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염 씨와 자주 어울리며 꽤 친하게 지냈다는 박 아무개 씨(55)는 “사고 당시 염 씨의 운전 방식에도 석연찮은 점이 많다”며 건강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상적인 운전자라면 추돌 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무의식중에 핸들을 왼쪽으로 꺾는 게 보통이다. 이번 사고에서는 어떤 방어도 하지 않고 30-1번을 뒤에서 똑바로 들이받았다”며 의문을 표했다. 또 “당시 송파구청 근처에는 제2롯데월드 공사장이 있었다. 만약에 풋브레이크가 들지 않았다면 핸들을 틀어 가로수든 공사장이든 들이받아 충격을 줄였을 거다”고 말했다. 버스 운전경력 10년의 박 씨는 운전사들의 졸음운전은 흔한 일이라고 증언했다. “몇 해 전에는 운전사가 갑자기 뇌졸중이 온 일도 있었다. 1회 차 운전을 하는데 접촉사고를 세 번 내고 차고지에 와서도 다른 버스의 사이드미러를 부쉈다. 그런데도 기억을 전혀 못 하더라”며 염 씨도 ‘비슷한 상황’을 맞았을 가능성을 조심스레 내놨다. 간접적인 사고 원인으로 자율배차를 꼽은 이들도 있었다. 김 아무개 씨(60)는 “사고 전엔 배차가 엉망이었다. 26명의 고정 기사들과 3명 남짓한 ‘스페어’ 기사들이 자율적으로 배차표를 짰다”고 말했다. 회사의 어떤 관리감독도 없이 기사들끼리 협의해 운행시간을 정하다보니 이를 악용하는 기사들이 있었다는 것. 염 씨가 사고 당일 18시간 가까이 운전을 한 이유도 자율배차 때문이었다. 김 씨는 “다른 회사는 기사 7~8명에 팀장을 한 명씩 둬 근무 스케줄을 짠다. 강동차고지의 송파상운 차량은 20대 정도만 운행돼 회사 측에서 관리자를 따로 두지 않았다. 때문에 누군가에게 운전 시간을 몰아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사고 이후 서울시는 송파상운 측에 관리자 한 명을 상시 근무시킬 것을 명령했다. 송파상운은 관리자 1명을 상시 배치해 스케줄을 조정하고 수시로 배차 간격을 조정한다. [서] |
김필수 급발진연구회장 인터뷰 “급발진 가능성 배제 못해” 경찰은 송파 버스추돌 사고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급발진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했다. 보통의 급발진 사고는 자동차가 정지 상태나 저속 운행을 하다가 제동력이 상실돼 엔진회전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가속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당시 버스의 가속도가 그리 높지 않았고 기기 조사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기에 급발진 가능성이 없다고 봤다. —30일 발표된 경찰의 최종조사발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사고 후로 조사 과정을 예의주시했다. 경찰이 최대한의 노력을 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발표한 자료로 운전사 과실로 결론짓기엔 무리가 있다. 운행기록계에 따르면 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이용하지 않았다고 나오지만 기록이 잘못 됐을 수도 있지 않은가. 또 운전사가 보조제동장치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직접적 증거도 없다.” —버스에 관한 급발진 의심 사례는 처음이지 않나. “그렇다. 때문에 일반 승용차의 급발진 의심사례와 단순비교해서는 안 된다. 버스는 일반 차에 비해 차가 무거워 관성이 세기 때문에 급발진의 주요 증상인 급가속이 천천히 일어날 수 있다. 또 시내버스는 가속이 안 되도록 조치 해뒀기에 가속도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왜 이제야 버스 급발진 의심사례가 보고되나. “경우의 수가 적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내버스가 수동변속차량이었다. 수동변속차량에서는 급발진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사고와 지난 3월 21일 인천에서 발생한 사고는 같은 차종으로 모두 자동변속기를 장착했다. 자동변속기 장착 버스가 보급됨에 따라 급발진 의심 사례는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다.” (실제 새정치민주연합 박수현 의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동변속기가 장착된 저상버스 보급률은 일반 수동변속기 장착 버스에 비해 현저히 낮다. 2012년 기준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12.7%, 서울권역은 25.2%, 인천 5.7, 경기 8.7% 등에 그친다.) —경찰이 ECU, TCU, 브레이크페달, 가속페달, 에어스위치, 제동등 6개 부품을 떼서 현장검증을 했는데 신뢰할 만하다고 보는가. “한마디로 웃기는 실험이다. 사고 원인은 사고 난 차가 말해준다. 물론 ECU 등이 급발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품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차는 종합적으로 움직인다. 만약 급발진이라면 어느 한 부품이 문제가 생겨서 사고가 생겼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상인 자동차에 사고차량 부품 장착해서 검증한다고 똑같은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 사고 당시와 똑같은 도로상황이 주어진 것도 아니지 않나.” —급발진 사고는 원인규명이 가능한가. “급발진은 차에 흔적이 전혀 남지 않는다.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지만 수년 내에 원인 규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는 진공배력장치(엔진의 흡기다기관이나 구동되는 진공펌프를 이용해서 페달을 밟을 때 필요한 힘을 배가시키는 장치) 상의 문제가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진공배력장치 이상에 영향을 주는 부품은 다양하다.” —급발진이 의심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일단 기어를 중립에 둬야 한다. 바로 차량의 시동을 끄고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우면 속도를 줄일 수 있다. 운전자가 당황하게 되면 다른 차와 장애물을 피해 다니기 마련인데 차라리 장애물에 부딪쳐서라도 차를 빨리 세우는 게 안전하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