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위였던 고승덕 전 후보의 서울교육감 낙선으로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일가가 새삼 조명을 받고 있다. 아래 사진은 박 명예회장의 영결식 모습. 연합뉴스
지난 2011년 12월 13일,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8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둘째딸 유아 씨를 제외하고 유가족들이 모였다. 고 박태준 회장은 부인과 사이에 1남 4녀를 두었다. 그러나 자녀들 모두 외부 노출이 그다지 많지 않다. 아버지의 명성에 비하면 자녀들은 묻혀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아들 박성빈 씨는 통신솔루션업체 사운드파이프코리아 대표로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네 딸(진아·유아·근아·경아)은 비교적 ‘조용히’ 살고 있다.
외아들 박성빈 씨
희경 씨의 페이스북 글을 계기로 박 명예회장이 타계한 지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 그의 일가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고 전 후보가 문용린 전 서울교육감 후보와 박성빈 씨의 관계를 언급한 일과 희경 씨의 글에 이모(박태준 명예회장 딸)들이 응원의 글을 남기면서 박 명예회장 일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박 명예회장은 생전에 우리나라 정·재계에 역사적인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자녀들은 정치권에서는 물론 재계에서도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만큼 나서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들의 혼맥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까지 박 명예회장의 1남 4녀들은 크게 부각되는 일이 없었지만 그들의 배우자들은 이름깨나 있는 인물들이어서 박 명예회장의 일가 얘기는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박 회장의 자녀들과 그들의 배우자들은 ‘화려한 혼인관계’로 정·재계를 걸쳐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먼저 박 명예회장의 외아들 박성빈 씨. 박 씨는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차녀 지윤 씨와 결혼, 대기업과 연결돼 있다. 비록 지금은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삼표그룹의 전신인 강원산업은 1997년 외환위기 전만 해도 재계 30위권에 해당하는 대기업이었다. 삼표그룹은 현재 삼표를 중심으로 삼표이엔씨, 삼표로지스틱스 등 20여 계열사를 두고 있지만 전부 비상장사여서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삼표그룹은 지난해부터 동양이 내놓은 레미콘공장 9곳을 인수하는 등 과거 명성을 되찾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최근 한국철도시설공단의 비리 사건과 관련해 정도원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가 출국금지 조치를 당하는 등 위기를 맞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정도원 회장과 아들 정대현 전무가 철도부품 납품 과정에서 거액의 회사 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빈 씨와 연결되는 대기업은 삼표에 그치지 않는다. 박 씨의 손윗동서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다. 정 부회장과 정도원 회장의 장녀 지선 씨가 부부인 것. 현대차 관계자는 “동서지간일 뿐 특별히 일감을 준다거나 사업적으로 연결된 것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첫째사위 윤영각 PSG 회장
‘삼정’이라는 사명은 장인인 박 명예회장이 지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1년 6명의 회계사·변호사와 함께 설립한 삼정KPMG를 윤 회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회계법인으로 성장시켰다.
2004년 출간된 책 <박태준>(이대환 지음, 현암사)에는 박 명예회장의 장녀 박진아 씨와 윤 회장이 처음 만난 일화가 생전의 박 명예회장의 육성으로 소개돼 있다. 두 사람이 만난 곳은 미국 테네시주. 대학시절 테네시주로 야외활동을 나갔던 진아 씨는 거기서 안내자로 나온 윤 회장을 만났다. 당시 윤 회장은 시카고대 대학원생이었다.
삼정KPMG를 우리나라 대표 회계법인으로 일군 윤 회장은 2012년 조건호 전 리먼브러더스아시아 부회장과 공동으로 사모펀드(PEF)인 파인스트리트그룹을 설립했다. 현재 대체투자자문업, 자산운용업 등에도 진출해 있다. 파인스트리트그룹은 지난해 말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는 등 국내 IB업계에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파인스트리트는 앞으로 있을 현대증권 인수전에서 강력한 인수 후보자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이처럼 내로라하는 경력과 능력을 갖고 있는 윤 회장이지만 최근에는 막내 동서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에 밀리고 있는 듯하다. 김 회장의 활동과 성과가 워낙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막내사위 김병주 MBK 회장
영문학도로서 극작가를 꿈꾸던 김 회장은 MBA 취득 후 투자은행(IB)업계에 뛰어들었고 이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살로먼스미스바니(현 씨티그룹)와 골드만삭스 등을 거쳐 세계 최대 사모펀드(PEF)인 칼라일에 입사하면서 김 회장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칼라일아시아파트너스 회장까지 지낸 김 회장은 2005년 국내 토종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MBK)를 설립했다. 2004년 정부가 토종 사모펀드 육성 방침을 밝힌 것이 계기가 됐다. MBK는 김 회장의 이름 ‘마이클 병주 김’에서 따온 사명이다.
김 회장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사실 2000년 칼라일 재직 시절이다. 2000년 9월 김 회장의 주도로 칼라일이 한미은행을 인수하면서 김 회장이 주목받았던 것. 칼라일은 2004년 2월 한미은행을 되팔아 7000억 원대 차익을 거뒀다. 1963년생인 김 회장의 당시 나이는 만 37세. 젊은 나이도 그렇지만 김 회장이 박 명예회장의 막내사위로 알려지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MBK 설립 후 김 회장은 IB업계와 재계에 큰손으로 부상했다. 2011년에는 우리금융지주를 통째로 인수하겠다는 의욕을 보인 바 있다. MBK는 2006년 HK저축은행 인수를 시작으로 2008년 C&M과 태크팩솔루션, 2011년 뉴차이나생명 등 지난해까지 모두 20여 차례에 걸쳐 M&A를 성사시켰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저축은행, 보험, 방송, 제약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식탐’을 과시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1월 코웨이(1조 2000억 원)와 일본 커피프랜차이즈업체 고메다(6000억 원), 4월 아웃도어업체 네파(1조 1200억 원), 12월 ING생명 한국법인(1조 8000억 원)을 잇달아 인수했다. 지난해 이들 업체를 인수하는 데 쏟아 부은 돈만 5조 원가량이다. 현재 MBK가 보유하고 있는 회사들의 연매출은 22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산 규모는 32조 원에 달한다. 재계 10위권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의 자산이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 자료 기준, 재계 12위인 두산의 자산 30조 원보다 많다.
또 국내에서 M&A 시장이 열릴 때마다 MBK는 늘 후보군에 포함되고 있다. LIG손해보험 인수전과 ADT캡스 인수전에서 MBK가 강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됐던 것이 대표적이다. 극작가를 꿈꾸던 영문학도가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설립한 후 불과 9년 만에 이뤄낸 일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힘든 성과다.
김 회장과 MBK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사모펀드의 구조적 특성상 ‘저가 매입 고가 매각’을 통해 투자금 회수뿐 아니라 수익 창출과 펀드 청산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아직 그런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IB업계 관계자는 “MBK는 기업이 아니라 사모펀드다. 너무 많이, 급하게 먹어 배탈이 날 수 있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MBK는 2006년 인수한 HK저축은행 매각 작업을 2008년과 2011년 두 차례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MBK가 인수한 국내 기업의 인수 후 영업이익률이 11.9%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투자금 회수에 대한 압박은 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사모펀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김 회장이 극복해야 할 문제다. 이는 박 명예회장의 맏사위 윤영각 회장도 마찬가지다.
박 명예회장의 셋째사위는 부산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