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렇게 되면 세 남매가 상속·증여세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삼성에버랜드를 활용하는 것뿐이다. 삼성에버랜드가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20.76%를 사들이는 것이다. 시가 4조 원어치의 이 지분을 매입하면 이 회장에게는 현금 4조 원이 생긴다. 약 50%의 세금을 감안해도 세 남매는 2조 원의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다. 삼성에버랜드는 이미 삼성생명 지분 19%를 갖고 있다. 삼성생명의 1대주주와 2대주주가 하나로 합해지는 효과가 생긴다. 세 남매가 삼성에버랜드만 지배하면 현재와 달라질 게 없다.
삼성에버랜드는 상장 이유로 투자확대를 꼽았다. 상장 후에는 보유 중인 자사주 38만 주(장부가 8000억여 원)도 현금화가 가능하다. 직원들에게 우리사주를 나눠주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신주발행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차입 여력까지 감안하면 4조 원의 자금을 마련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다만 이때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있다. 현행법은 총자산에서 종속회사 지분가치가 50%를 넘으면 강제로 지주회사로 전환하도록 정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가 비금융지주회사로 지정되면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삼성생명 보유지분을 매각하거나 회사 밖으로 분할해야 한다. 현재 지배구조에서 상호출자를 피해 삼성생명을 매각할 다른 법인을 찾기는 어렵다.
삼성에버랜드 상장은 이재용 부회장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하려는 핵심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전자 서초 사옥 전경. 일요신문 DB
그럼 세 남매에게 2조 원이면 충분할까? 이 회장 지분 가운데 또 다른 핵심은 삼성전자 지분 3.38%다. 그룹에서 가장 중요한 지분인 만큼 세 남매가 직접 보유하고 싶어 할 자산이다. 그런데 이 지분을 물려받으려면 세금만 3조 원 이상을 내야 한다. 삼성생명 주식을 삼성에버랜드에 팔아 2조 원을 만든다고 해도 1조 원 이상 부족하다. 하지만 이 회장이 전혀 현금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만 단정할 수 없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최근 10년간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서 받은 배당액을 모두 현금성 자산으로 갖고 있다면 약 5500억 원(배당소득세 약 15.4% 가정시)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며 “그동안 이를 잘 투자했다면 1조 원 정도의 가치까지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녀들에게 추가로 수천억 원의 현금을 물려줄 수 있는 셈이다.
그래도 삼성전자 지분 승계에 따른 세금을 다 충당하기는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상속·증여세는 개시 시점에 절반만 내고, 나머지는 5년간 분할해 낼 수 있다. 세금이 3조 5000억 원이라고 가정하면 2조 원 정도는 먼저 내고 나머지는 삼성전자로부터 배당을 받아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지난해 기준 지분 3.38%로 얻는 배당금은 730억 원 정도다. 배당소득세를 빼면 약 600억 원, 5년간 3000억 원이다.
이건희 회장 딸 서현·부진 씨. 이 회장이 최근 10년간 받은 배당액을 잘 투자했다면 자녀들에게 추가로 수천억 원의 현금을 물려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요신문 DB
이 때문에 삼성전자가 배당을 강화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지난해 12%인 배당성향(당기순이익에서 배당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24%로 올리면 6000억 원, 36%로 올리면 9000억 원이다. 여기에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및 삼성SDS로부터 지난 10년간 받은 배당 810억 원, 앞으로 받을 배당을 합하면 1조 원 이상은 너끈하다.
김지웅·김준섭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는 높은 삼성전자 배당금을 통해 상속세원 마련과 추가적인 지배구조 강화 그리고 현금 확보라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세 남매는 현재와 같은 수준의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한편 삼성에버랜드가 일치감치 지주사로 방향을 정한다면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곧바로 증여받는 방법도 있다. 증여자의 특수관계인이 주주인 영리법인이 증여를 받으면 그 지분율만큼만 증여세를 내면 된다. 세 남매의 삼성에버랜드 지분율은 41.9%로, 증여세율 50%보다 낮다. 삼성에버랜드 상장으로 보유지분율이 낮아지면 부담은 더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이때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 삼성생명의 지주사 전환과 통합이라는 복잡한 작업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 수차례에 걸친 인적분할과 현물출자, 합병 등의 방법이다. 결국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각각 7.6%와 1.26%,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4.06%, 삼성전자의 자사주 11% 등 24%를 삼성에버랜드로 집중시키기 위한 작업인 셈이다.
최열희 언론인
지주사 전환 남은 과제 “세금폭탄 피하려면 내년 말까지 완료해야” 삼성전자가 삼성카드가 보유한 제일모직 지분과 삼성SDI 및 제일모직 자사주를 인수하면서 삼성의 지주사 전환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거래는 삼성SDI와 제일모직 합병에 따른 삼성전자 지배력 약화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지만, 삼성이 결국 자사주를 지배구조 개편에 본격적으로 활용한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삼성전자에 대한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현재의 15%에서 26%로 높아진다. 여기에 다시 특수관계인의 삼성전자 지분 15%를 삼성전자지주에 현물출자하면, 삼성전자지주에 대한 특수관계인 지배력은 최소 40% 이상, 삼성전자지주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율은 최소 50% 이상이 된다. 엄청나게 지배력이 커지는 셈이다. 총수 일가 지분율이 낮은 삼성이 지주사로 전환될 것이란 관측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어마어마한 지배력 배가 효과 때문이다. 그 효과는 이미 LG나 SK 등의 사례에서도 입증됐다. 이미 47세인 이재용 부회장이다. 다음 후계까지 염두에 두며 지주체제로의 전환을 결정한다면 이번 기회에 지배력을 극대화시키려 들 수 있다. 현재 삼성은 삼성물산(5.76%), 삼성생명(5.46%), 삼성화재(13.47%), 삼성에버랜드(15.2%), 제일기획(15.84%) 등 지배구조상 중요한 위치에 있거나,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낮은 계열사들이 다수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 자사주를 회사분할이나 계열사 간 지분조정에 활용하면 손쉽게 지배구조를 강화시킬 수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보통 자사주는 매입해 소각시킴으로써 유통주식수를 줄여 주주들의 주식가치를 높이는 데 활용되지만, 경영권 방어를 위해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최대주주 동일 계열 내 자사주 거래는 실제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수를 늘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업상 명분만 분명하다면 기존 주주들이 반대할 명분도 그리 크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주사 전환시 사업회사 지분을 지주사에 현물출자하는 데 따른 소득세를 유예해주는 조세특례제한법은 내년 말 만료된다. 따라서 현물출자에 따른 막대한 양도소득세를 피하려면 내년 말까지 지주사 전환을 마무리해야 한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