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파는 술집 이발소 등 유흥가가 밀집돼 있는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일대를 거점으로 해서 지난 80년대 후반 생겨난 조직이다. 1991년 범죄와의 전쟁 때 보스 P씨를 비롯한 조직원 14명이 구속되면서 일시 와해된 것처럼 보였으나, 부두목격인 박아무개씨가 계속 그 잔존세력을 규합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지난해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서울에서 암약하는 폭력조직 실태와 최근 동향’을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모두 31개파 3백30명이 관리대상으로 올라 있다. 여기에는 폭력조직이 소위 ‘3대 패밀리’로 통하는 양은이파 범서방파 신OB동재파를 비롯, 대흥동파 종진이파 등 호남주먹의 계열과 상택이파 만식이파 까불이파 이글스파 등 서울 자생 조직으로 크게 양분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들의 활동 지역 역시 호남세는 강남에서 주로 움직이고, 서울 자생 조직은 대부분 강북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동대문 청량리 등에는 까불이파 상택이파와 함께 장안파가 주요 세력으로 포함돼 있다.
현재 장안파의 보스는 예전의 부두목격인 박씨가 맡고 있으며, 과거의 보스 P씨는 고문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파악하고 있는 전체 조직원은 50여 명. 이들은 지난 90년대 인근의 화양리파와 호남 출신인 벌교파 등과 영역 다툼을 벌이면서 장안동을 굳건히 지켜온 뒤 이를 중심으로 최근에는 강남 지역까지 진출하며 서울의 주요 세력으로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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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이번 수사는 지난해 11월 장안동 일대 유흥업소 업주들의 불만에 따른 첩보가 입수되면서 비롯되었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올해 3월 보스 박씨의 검거를 시작으로 지난 8월까지 간부급과 조직원 38명을 대거 잡아들였다.
이들의 업소 갈취 및 아파트재개발 공사 이권 개입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이 드러났다. 출입국 조사에서 행동대장 정아무개씨 등 간부급 조직원들이 지난 97년 5월부터 수시로 타이베이를 방문한 기록이 뜬 것. 이들의 출국 목적은 타이베이의 최대 조폭인 주리엔빵과의 정기 교류 차원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리엔빵의 조직원들 역시 국내를 몇 차례 방문하는 등 양 조직은 서로 오가며 정기적인 단합대회를 가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지난해 6월과 7월에는 주리엔빵 조직원 20여 명이 대거 입국해서 경기도 양수리의 H호텔에 투숙한 채 수상스키를 타고 단합대회를 가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 경위는 “이들은 서로 조직원들을 정기적으로 꾸준히 오가게 하며 상견례도 갖고 골프도 치고 술자리도 갖는 등 정기모임을 계속 가져왔다”고 밝혔다. 그는 “정기만남에서 무슨 계획을 논의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했으나, 이들이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며 “주리엔빵 조직의 특성상 마약 밀매 등에 강한 의심을 갖고 계속 수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안파가 국제적 세력인 주리엔빵과 교류를 갖게 된 계기는 조직원 민아무개씨가 제공했다. 민씨의 누나가 타이베이 남자와 국제결혼을 했는데, 그가 바로 주리엔빵의 간부급 조직원이었던 것. 이 둘을 매개로 양 조직은 서로 활발하게 교류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이 특히 마약과 관련해서 강한 의심을 하는 것은 그동안 국내 마약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그 해외 공급책으로 주리엔빵이 심심치않게 거론됐기 때문이다. 주리엔빵은 일본의 야쿠자, 중국의 삼합회와 함께 국제 마약 공급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조직이다.
주리엔빵이 국내 마약사건의 배후로 본격적인 주목을 받은 것은 95년 7월 변호사와 연예인이 포함된 히로뽕 밀반입 사건 때부터. 그후 97년 2월 마약사범으로 일망타진된 국내의 ‘양동식파’와 ‘박대령파’는 수사 과정에서 주리엔빵과 연계된 것으로 밝혀졌고, 같은해 8월 국내 중소기업들의 마약 밀거래 역시 주리엔빵이 배후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경찰청의 한 수사 관계자는 “양 조직이 그냥 단순히 친목도모 차원에서 그처럼 활발히 양국을 오가며 조직간의 교류를 했을 리는 만무하고, 분명히 무슨 공동 범죄를 모의했을 것으로 본다”며 추가 범죄 수사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나타냈다. 검경합동수사반의 향후 수사에 따라 두 조직에 얽힌 새로운 사실이 조만간 속속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