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검찰, 재판부, 구치소측은 유씨가 보통 수감자들과는 다른, ‘집중 관찰 요망 피의자’ 신분이고, 또한 자신에 대한 보도를 보고 자극을 받아 재판을 보이콧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 그에 관한 모든 정보의 유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심리적 갈등과 변화를 겪는 유씨의 모습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일요신문>은 구치소 주변 관계자들과 변호인들을 통해 유씨가 과연 어떠한 심리적 변화를 겪고 있으며 그가 내심 철창 밖으로 전하려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분석해봤다.
구치소 주변 관계자들에 따르면, 유씨는 우울증과 조증이 교대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조울증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울증은 일반인들에게서는 0.3~ 0.5%의 확률로 발생하는 정신 질환으로 말 그대로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다가 흥분하여 공격적으로 되는 조증과, 자아 상실이나 죄책감 등으로 인해 생기는 우울증 증상이 주 간격 혹은 몇 달 간격으로 ‘오버랩’되는 심리불안정 상태다.
특히 유씨의 경우, 두 가지 증상이 수시로 역전되는 시간이 상당히 빠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9월21일 1심 2차 공판에서 재판을 진행하던 황찬현 부장판사에게 기습적으로 뛰어든 것이나, 지난 10월3일 새벽 피해자들과 유가족에게 사죄의 뜻을 남기고 자살을 시도했던 점은 바로 유씨가 매우 짧은 기간 안에 조증과 우울증이 교차되는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잘 대변해주는 대목이다.
그는 법정에서 “검찰과 경찰은 내가 21명 외에 사람을 더 죽였으나 믿지 않으면서 내가 하지도 않은 사건을 내가 했다고 몰아세우고 있다. 누구도 내가 말하는 진실을 몰라준다. 내가 말하는 것은 진정 진실이며 누구든지 이를 밝혀내야만 한다”고 말하면서도 “죽겠다는데 왜 난리법석이냐. 그냥 나를 내버려두라”는 식의 말로 재판 출석을 거부하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점 또한 유씨의 심리가 매우 빠르게 극과 극을 오가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하는 부분이다. 구치소 주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옥중의 유씨가 그 나름대론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과 씨름하고 있는 셈”이라고 표현했다.
구치소 주변 관계자들은 이 같은 유씨의 극심한 심리변화는 바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유씨 변호인들도 “유씨가 생사를 초월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를 상당히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가난과 아버지의 가정 이탈 등으로 불우했던 소년기를 보냈던 유씨가, 그 때문에 범법자라는 꼬리표를 달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자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의 자신’도 일말의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는 데서 큰 심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 유영철이 직접 그린 사체 토막 과정. 요즘 그는 재판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와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사죄 등 극과 극을 오가는 ‘조울증’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 ||
“X발. 주부, 임산부가 보도방에 나오고…”라는 식의 ‘툭툭’ 내뱉는 유씨의 혼잣말에서도 바로 사회의 구조에 대한 불만 심리가 최대치 수준에 올라와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는 것.
교도소 주변 관계자나 유씨의 변호인들은 이 같은 유씨의 현재 심리 상태를 감안했을 때, 유씨의 극단적인 행동이 단순히 영웅 심리에서 나온 행위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 유씨는 자신을 면회했던 친구나 변호인들에게는 “나는 한국 사회가 낳은 전형적인 피해자”라는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전하면서 “내 처지가 이렇게 된 이상 모든 진실을 말하고 있는데도 불구,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며 흥분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유씨에 대한 검증과 재판 절차가 무조건 형량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한정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연히 죄 값은 달게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사건의 총체적 진실을 밝히고 왜 이러한 사람이 등장하게 됐는지에 관한 문제에까지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는 얘기다.
유씨는 검거 직후 줄곧 21명 외에 추가 피해자가 더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최근에 와서는 구체적인 추가 범행 내용을 털어놓고 있다. 특히 이문동 사건은 경찰이 조작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했다고 주장하는 추가 범죄에 대해 수사기관이 무관심으로 일관하자 더욱 강한 어투와 몸짓으로 수사의 허점을 지적하며 반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유씨가 이런 행동을 취하려는 의도와 그가 말하려는 ‘진실’이 무엇인지는 그만이 알고 있다. 그의 얘기가 전적으로 진실일 수도 있고, 모두 거짓일 수도 있다. 혹은 그 뒤범벅일 수도 있고.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유씨가 자신이 말한 ‘진실’이 계속 외면당할 경우 또 다른 돌출 행동을 벌일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