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오전 전국의 ‘밤꽃’들이 여의도를 뒤덮었다. 이들은 “우리도 국민이다. 생존권 보장하라” 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들은 서울 청량리·미아리·용산·영등포 ‘밤꽃거리’(집창촌)뿐 아니라 경기도 수원·평택·파주, 인천과 대구, 포항, 춘천 등 전국 각지의 대표적 집창촌에서 올라온 성매매 여성들. ‘음지의 밤꽃’들이 대낮에 입법부 코앞에 대거 집결한 까닭은 무엇일까. 사상 초유의 성매매 여성들 집단 시위 현장을 발로 훑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집결지’인 여의도 대한주택보증 건물 앞 보도에는 챙이 긴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집창촌 여성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오전 11시30분께 ‘밤꽃 시위대’는 어느 새 2천5백 명(경찰 추산)으로 불어났다. ‘진행요원’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각 지역별로 참가인원을 확인하고 구역을 나누어 자리를 배치하는 등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이들은 미리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들고 오후 12시30분부터 본격적인 시위에 들어갔다.
자리가 정리되자 사회자가 시위 현장 맨 앞에 마련된 무대차에 올랐다. 20대 후반의 그녀는 자신이 ‘청량리 아가씨’라고 밝혔다. 이내 마이크를 고쳐 잡은 사회자의 입에선 멘트가 흘러나왔다.
“미아리 자매님들, 오셨습니까? 일어나 주십시오.” “영등포 자매님들, 오셨나요? 일어나 주십시요.” 그녀는 각 지역별 집창촌 여성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소개했다. 해당 여성들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주위에서 “와” 하는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지역별로 소개가 끝나자 사회자는 “우리는 모두 자발적으로 참가했다”는 말을 거듭 강조하면서 준비해온 구호를 외치고 결의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우리도 국민이다. 우리의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며 “집창촌을 공창으로 만들어 제대로 관리하면 되지 않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 ‘청량리 아가씨’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회자는 참석자들을 지역별로 일일이 소개했다. | ||
분위기가 무르익자 사회자가 자유발언시간을 주며 각 지역별로 대표들을 불러 무대차에 오르게 했다.
영등포에서 왔다는 한 여성은 “성매매 특별법 때문에 굶어 죽게 생겼다. 우리도 부양가족이 있는데 갑자기 영업을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하나. 애초에 2007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한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유예기간을 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이 여성은 여성단체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녀는 “여성단체들이 자기들의 잣대로 우리를 재단한다. 우리는 성매매를 강요받지도 않았고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것이다”며 “여성단체와 우리는 (어찌 보면) 동업자다. 우리 때문에 여성단체들이 먹고 산다”고 ‘이색 주장’을 폈다.
미아리에서 왔다는 빨간 모자를 쓴 여성은 “우리도 국민이고 시민이다. 제발 먹고 살게 해달라. 우리가 집창촌을 나가서 신문배달을 하겠나, 대기업을 다니겠나. 내가 중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집창촌에서) 열심히 살았다”고 말했다.
대구 ‘자갈마당’에서 올라온 한 여성은 “한 여성단체 간부는 우리가 세금 낼 테니 공창을 하자고 하니 ‘그러면 대통령이 포주가 된다’고 하더라”며 “대통령이 포주 되기 싫으면 우리가 살아갈 대책이라도 만들어 달라” 고 요구했다.
그러나 연단에 올라온 여성들이 거침없이 자기 주장을 말하는 것과 달리 시위에 참가한 여성들은 약속이나 한 듯 거의 모두 일 대 일 인터뷰를 거절했다. 또한 사진기자들이 시위 여성을 촬영하려 하자 심한 욕설과 함께 “찍지 말라니까!”라며 거친 반응을 보였다.
기자는 인천 ‘옐로우하우스’에서 올라온 한 여성과 어렵게 일 대 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25세의 이 여성은 “솔직히 우리가 하는 일이 떳떳하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가 거액을 바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단돈 6만원 받고 우리 일을 하는 것뿐인데…. 외화도 벌어들이고 국가적으로 좋은 일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 시위 참가자들이 꽹과리와 징을 치며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아래는 ‘결의’를 다지는 듯 손을 꼭 잡은 채 무대를 쳐다보는 두 ‘아가씨’. | ||
시위가 계속되고 성매매 여성들의 구호 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가던 오후 2시40분께 인천의 한 여성단체 간부 3명이 무대차 뒤에 나타났다. 가방에 ‘NO 성매매’라고 쓰인 배지를 단 한 여성단체 간부는 기자들과 인터뷰 중 “오늘 시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왔다. 이 집회는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한 것이 아니라 포주에 의해 동원된 것이니 언론은 이를 잘 짚어야 한다. 시위 모습만 가지고 보도해선 안된다”며 이번 시위가 (성매매 업소) 업주에 의해 ‘기획된 작품’라고 주장했다.
이때 주변에 있던 업주들이 여성단체 간부의 인터뷰를 목격하고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마치 머리채를 잡으려는 듯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업주 10여명이 인터뷰 도중 끼어들어와 “XX년 어디서 그런 말 지껄이냐” “무대 위에 올라가서 말해봐라”며 분을 감추지 못했다.
여성단체 간부를 보호하려는 경찰과 이들을 붙잡으려는 업주들, 그리고 이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한데 엉겨 10여분간 무대차 뒤는 난장판이 돼 버렸다. 경찰이 간신히 여성단체 간부들을 빼돌려 사태는 진정됐으나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업주들은 기자들을 향해 “우리(업주)가 시켜서 나온 것인지 애들한테 물어보라”고 소리쳤다.
소동이 가라앉고 오후 3시30분이 되자 사회자는 “오늘 시위는 이것으로 마치자. 앞으로 정부의 반응을 보며 다시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시위여성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업주의 도움으로 준비된, 각 지역별 전세버스로 흩어졌다.
그러나 포항, 대구, 미아리에서 온 여성들은 계속 남아 “여기까지 왔는데 국회에라도 들어가자”며 거세게 항의했다. 하지만 이들도 사회자와 업주들의 설득으로 ‘다음’을 기약하고 오후 4시30분께 모두 자리를 떠났다. 6시간이 넘게 걸린 그녀들만의 시위가 마감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영등포경찰서는 이날 집회에서 일부 여성들이 ‘알몸 시위’를 벌일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해 여경 1백여 명과 모포 1백 점을 준비했으나 알몸시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밤꽃’들과 업주들이 까 보인 것은 그네들의 타들어가는 속마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