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내공을 쌓은 뒤 드디어 실전에 들어갔다. 김 씨는 사람들의 통행이 뜸한 늦은 밤 주택가로 향해 주차된 차량 3대의 번호판을 훔쳐봤다. 아파트 절도를 하기 전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함이었다. 그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복면을 뒤집어쓰고 장갑까지 착용한 채 번호판을 훔쳤고 며칠이 지나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자 본격적으로 범죄의 길로 빠져들었다.
그의 범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적으로 이뤄졌다. 김 씨는 범행 전 아파트 우유 투입구에 초소형카메라를 설치해 집주인의 동선, 집안 상황, 현관문 비밀번호 등을 치밀하게 파악한 뒤 범행에 나섰다. 범행도 제압이 쉬운 주부들이 혼자 있는 낮 시간대를 택했다. 그렇게 김 씨는 지난해 4월부터 약 1년 동안 서울과 경기 일대의 아파트를 돌며 6차례에 걸쳐 빈집을 털어 2500만 원의 금품을 훔쳤다.
초범이었지만 김 씨의 범행은 ‘깔끔함’ 그 자체였다. 모자와 마크스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장갑을 낀 채 범행에 나서 지문도 전혀 남기지 않았던 것. 하지만 김 씨의 이론에 충실했던 절도행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4월 김 씨는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를 털다가 결국 꼬리가 잡혔다. 김 씨는 아파트 앞에 숨어있다 집주인이 밖으로 나오려 문을 여는 순간 범행을 시작했다. 집주인을 밀치고 들어간 뒤 흉기로 위협하고 신용카드, 휴대전화, 카메라 등 2000여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또한 집주인을 위협해 알아낸 현금카드 비밀번호를 통해 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돈을 인출하기도 했다.
김 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완벽한 범행이라 생각했지만 이번엔 피해자가 달랐다. 김 씨가 떠난 뒤 침착하게 바로 결박을 풀고 경찰에 신고해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것. 경찰은 피해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은행에서 돈을 찾아 달아나던 그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김 씨를 ‘평범한’ 도둑인 줄로 알았던 경찰은 조사 도중 그가 서울대를 졸업한 뒤 번듯한 직장까지 다닌 엘리트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서울대 가는 머리로 ‘제2의 조세형’을 꿈꿨던 김 씨에게 돌아온 건 차가운 쇠고랑이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