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광수 검찰총창(왼쪽), 최종영 대법원장 | ||
대법원은 최근 판사와 변호사의 접촉을 엄격히 규제하고 감찰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했고 대검도 수사부서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진 내부 암행감찰반을 확대 개편했다. 일반 국민들은 물론 거물 정치인이나 대기업 임원들의 비리를 질타하던 법원과 검찰이 자기 비리 단속에 열을 올리는 것은 아이러니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 같은 움직임의 직접적인 계기는 춘천지역 판사의 `‘성접대’ 파문 등 최근 잇따라 불거진 비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양 조직의 사활이 걸린 심각한 문제가 숨어있다. 바로 청와대와 여당이 설립을 추진중인 공직자부패수사처(공수처)의 공격을 미리 차단하자는 것이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국회의원, 중앙 부처 고위 공무원과 지방자치단체장, 장성, 판·검사 등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이 중 가장 타격을 받게 될 대상은 판·검사들이다. 나머지는 이미 검찰이나 경찰, 감사원 등 기존 사정조직에 의해 끊임없이 감시를 받아왔지만 판·검사들은 사실상 비리에 있어 `성역’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동안 법원과 검찰은 자체 감찰을 통해 판·검사들의 비리를 적발하면 외부에는 전혀 공개하지 않은 채 감봉 등 비교적 가벼운 징계를 하거나 사표를 받는 차원에서 무마해왔던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공수처가 설립되면 이 같은 `제식구 감싸기’는 불가능해진다. 실제 공수처의 상급기관인 부패방지위원회에는 벌써부터 판·검사들의 비리에 대한 제보와 진정이 쇄도하고 있다. 춘천의 판사 성접대 사건도 술집 여종업원이 부방위에 진정하면서 불거진 것이다. 공수처가 설립돼 있었다면 당연히 맡았을 수사다.
이번 사건은 검찰이 수사한 뒤 법원이 이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판사 1명 사표와 판사 2명에 대한 전보·경고 조치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그러나 공수처가 수사를 했다면 수사결과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강도가 셌을 것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분석이다.
내부 단속에 먼저 나선 곳은 검찰이다. 검찰은 공수처 설립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올해 초부터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감찰을 강화해 왔다. 송광수 검찰총장은 대선자금 수사가 마무리된 지난 6월 올해 3대 정책 목표 중 하나가 감찰강화라고 공언한 바 있다.
이후 전국 고검은 관할 지검에 대한 감찰활동을 대폭 강화했고 최근 대검 감찰부는 2개로 운영하던 암행감찰반을 3개로 늘리기까지 했다. 암행감찰반은 수사부서로 보면 특수부에 해당되는 강력한 감찰 조직이다. 2~3명의 조사직원이 짝이 돼 전국 검사나 수사관들의 비리 첩보가 입수되면 미행과 잠복까지 하는 등 범죄 수사를 능가하는 강력한 조사를 벌인다. 검찰은 또 지난 8월에는 시민단체와 학계, 진보적 법조계 출신의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간감찰위원회도 출범시켜 검찰의 내부 감찰활동을 감시토록 하는 파격적인 조치도 취했다.
이 같은 와중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 바로 지난 10월 사표를 낸 춘천지검장이다. 춘천지검장은 단합대회에서 술에 취해 부하 직원에 대해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이 사표를 낸 이유로 확인됐다.
그러나 당시 상황 자체가 그리 심각하지 않았고 특히 해당 직원들도 대검에서 조사차 내려간 감찰부 직원들에게 지검장의 행동을 양해한다고 밝혔음에도 대검은 사표제출을 종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예전 같았으면 사표는커녕 문제 자체가 되지 않았을 사안”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대검의 감찰 강화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법원은 검찰보다 한 템포 늦게 바빠진 분위기다. 사실 제식구 감싸기에 있어 검찰보다는 법원이 한 수 위라는 게 주변의 평가. 그동안 판사들의 비리라는 것이 거의 적발된 사례가 없었다. 실제 사법개혁위원회가 최근 작성한 `법조윤리제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난 98년 이후 비리와 관련돼 징계를 받은 판사는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검찰의 경우 19명의 검사가 비리 등과 관련 징계를 받은 것과 비교해도 심하다 싶은 수준이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춘천지법 판사들과 지역 변호사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외부에 공개돼 한바탕 홍역을 치르면서 대법원의 분위기도 돌변했다. 이 사건은 과거 법조계에 엄청난 충격을 준 대전 법조비리나 의정부 법조비리 수준에는 못미치만 `성접대’ 의혹까지 드러나 국민들에게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기에 얼마전에는 현직 대법관의 비서관이 사건 청탁과 함께 억대의 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잠적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대법원도 다급해졌다.
결국 대법원은 지난 6일 최종영 대법원장을 비롯, 대법관 전원, 전국 법원장이 참석해 열린 전국 법원장회의에서 강력한 감찰 대책을 마련했다. 대법원은 우선 판사들의 비리가 변호사 등 사건관계인들과의 부적절한 만남에서 불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보고 이를 엄격히 규제키로 했다. 변호사가 판사를 만나려면 반드시 면담신청서를 제출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1998년 출범한 이후 지난 6년 동안 단 한 차례 회의만 열렸던 법관윤리강령위원회도 활성화해 법원 비리를 통제할 수 있는 법관윤리강령과 세부지침을 만들기로 했다.
특히 대법원은 판사의 판결 등 법원의 결정에 불만을 가진 소송 당사자들이 법원에 진정이나 청원을 제기하면 이를 철저히 조사하고 이를 법관들에게 공개해 경각심을 높이겠다는 방안도 내놓았다. 이는 공수처가 설립되면 판결 등에 불복하는 소송 당사자들이 대거 몰려갈 것에 미리 대비하자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처럼 검찰과 법원이 경쟁하듯 집안단속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여전하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감찰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비리를 적발, 처리하는 과정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며 “진정으로 내부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감찰 결과를 실시간으로 외부에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 대책에 대해서도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있다. 실제 판사와 변호사와의 만남은 지금도 규정상으로는 엄격히 규제되고 있고 면담신청서 제출 제도도 이미 존재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특히 부적절한 만남의 대부분이 법원 바깥에서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를 단속한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지적이다.
결국 검찰과 법원의 내부비리 단속 몸부림이 효과가 있는지 여부는 공수처가 출범한 이후 실제 얼마나 많은 판·검사들의 비리가 적발될 것인지에서 확인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