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도씨 | ||
그런데 해양수산부는 예산상의 이유로 선가장 설치를 차일피일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나서 지난 2000년에야 예산이 편성되었고, 지난해 공사를 하던 중 태풍 매미로 인해 다시 파손되었다고 한다.
해수부측은 “선가장 공사는 올해 3월에 다시 재개될 것이며, 9월에 완공되면 김씨 부부가 다시 입주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면서 독도에 거주하려고 하는 주민을 위해 좀더 일찍 서둘렀어야 하는 게 아닌가. 간단한 공사를 7년이나 미룬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최근 독도 담당자가 바뀐 지 얼마 안되어 정확한 답변을 못하겠다”고 얼버무렸다.
이에 대한 독도 주민 김성도씨의 입장을 들었다. 김씨는 독도 최초의 주민 고 최종덕씨(65년 입주)와 함께 70년대부터 독도에 입주해 9백98계단을 직접 만들고 식수용 샘물을 만드는 등 독도의 산 역사로 남아 있다. 월남전 참전 용사로 화랑무공훈장도 받았던 그는 현재 울릉도에 머물고 있다.
─독도 생활을 지난 70년대부터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나이(65)도 연로하고 가족들도 반대하는 것으로 들었는데.
▲그래도 난 독도에 들어간다. 요즘은 집사람(아내 김신열씨)도 반대한다(이때 전화기 너머로 아내 김씨의 “이 사람은 가정에선 빵점이야, 빵점”이라고 웃으며 외치는 소리가 전해졌다). 하지만 내 신조껏 사는 거지. 이제 60이 넘었는데 들어가면 거기서 묻힐 것이다.
─최근 다시 독도 문제로 한일간에 시끄러운데.
▲안 그래도 그 뉴스를 보면서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빨리 들어가야 된다 싶은데… 선가장 공사를 곧 한다고 하니, 다 되면 다시 들어가야지. 내가 빨리 들어가서 살아야 그 자들이 허튼 소리 못할 것 아니냐.
─독도 생활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나.
▲나랑 같이 독도에 주소를 두고 살고 싶다는 이들이 제법 나선다. 같이 동거인으로 되어 있는 편부경씨도 오는 가을에 함께 들어갈 것으로 본다. 그런데 들어가고 싶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규제 때문인가. 부부 두 사람만 있는 것보다 이웃 주민이 곁에 있으면 덜 적적할 것 아닌가.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뭐 오래 생활했으니 불편할 게 없지만 아무래도 (처음인 사람들은) 불편할 것 아닌가. 그리고 또… 다른 사정도 있을 거다(김씨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얘기를 안했지만, 해수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설치한 어업인숙소는 기본적으로 어업인들이 일시 머무르거나 또는 학술탐사팀들이 잠깐 머무르는 용도로 만든 것이지, 주민들을 이주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다. 그리고 그곳은 식수가 부족해서 여러 명이 살 수도 없다. 김씨 부부야 원래 살았으니까 할 수 없지만, 더 이상 이주는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기본적으로 독도 거주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눈치였다).
─개인적으로는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독도에 머물겠다는 것인데, 혹시 정부로부터 무슨 도움을 받는 것이 있나.
▲(언성을 높이며) 정부에 도움 받을 일도 없고, 받고 싶지도 않다. 라면 몇 박스 주고 생색 낼 바에야… 충분히 내가 거기서 능력껏 먹고 살 수 있는데 도움을 왜 받나. 내 전에 들어가 살았던 최종덕씨나 조준기씨 등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힘으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