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수천억대 자산가가 살해당한 채 발견된 서울 강서구의 한 건물. 현직 서울시의원이 이 사건에 연루돼 귀추가 주목된다. 임준선 기자
강서경찰서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 2010년부터 2011년 사이에 송 씨에게 5억여 원을 빌린 후 계속 돈을 갚으라는 압박을 받자 2012년 말 부천 상동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지인인 팽 씨를 만났다. 팽 씨는 김 씨에게 7000만 원을 빌린 터. 이 자리에서 김 씨는 팽 씨에게 “내가 빌려준 돈을 안 받을 테니 송 씨를 살해해 달라”고 제안했고 팽 씨가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두 사람은 송 씨의 출·퇴근 시간과 동선을 파악하는 등 치밀한 계획 끝에 팽 씨가 김 씨로부터 받은 흉기를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범행 후 도주한 팽 씨는 사건발생 3일 뒤 경찰을 피해 중국으로 도피했다. 김 씨는 팽 씨와 범행 전후로 ‘선불폰(대포폰)’과 공중전화로 통화하고 이후 대포폰을 없애 증거를 인멸했다. 또한 김 씨는 중국에 있는 팽 씨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등 도피를 도운 사실이 밝혀져 덜미가 잡히게 됐다.
김 씨는 중국에 있는 팽 씨와 경찰이 추격전을 벌이는 동안 의정활동을 지속했다. 지난 6월 지방선거 활동도 차질 없이 진행해 주변인들도 김 씨가 살인사건에 연루됐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중국에 있는 팽 씨에게 “자살해라. 네가 들어오면 내가 자살할 것”이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가 도주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공범이 없는 상태에서는 따로 조사할 수 없기 때문에 (김 씨가) 도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전했다. 경찰에 체포된 김 씨는 “팽 씨가 내게서 빌려간 돈을 갚으라는 독촉에 돈을 훔치기 위해 송 씨를 살해한 것 같다”며 범행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 씨의 체포 소식에 정치권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의 살인사건 연루가 드문 일인 데다 평소 김 씨의 행실을 봤을 때 믿기 힘들다는 것이다. 김 씨는 시의원이 되기 전 10년여 동안 민주당 국회의원 보좌관 생활을 했다. 김 씨와 가깝게 지냈던 앞서의 국회 관계자는 “그 친구는 의협심도 있고 심지가 굳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민주당에 대한 충성도도 매우 강했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이번 일이 믿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서울시의회에서도 이번 사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김 씨는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의 보좌관 생활을 오래 했었다는 점에서 새정치민주연합에도 적잖은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새정치연합 소속 서울시 의원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워낙 큰 사건이기 때문에 (당내에) 분위기가 안 좋다. 김 씨는 어린 나이지만 의정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실력이 있었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당황스럽다”며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정치인이 그렇게 들통 날 큰일을 저지르겠나.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김 씨가 피해자 송 씨로부터 돈을 빌린 시기는 김 씨가 처음 선거에 출마한 2010년께부터 였다는 점에서 선거자금과 관련된 의혹도 나오고 있다. 경찰은 송 씨의 사무실에서 발견한 차용증 등을 통해 김 씨가 당선된 이후부터 2011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송 씨로부터 5억여 원을 빌린 것으로 보고 있다. 강서경찰서 윤경희 강력2팀장은 “본인이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어 선거자금과 관련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보강 수사를 하고 김 씨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