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 26일 전국 상공회의소 회장단과 오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제조업 혁신 3.0 전략’의 론칭 의지를 밝혔다. 사진제공=청와대
이 자리에 상공인들과 함께 참석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그룹 회장)의 건배사도 여느 때와 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제5단체장과 정부 측이 만날 때마다 나왔던 기업 옥죄기 중단, 규제완화, 세제 지원 등의 ‘주문성’ 요구는 없었다. 다만 “책가방을 들고 애국가를 들으며 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기업인들은 어려움을 딛고 중동에서, 오지에서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회고하면서 “다시 기업들이 국가경제의 중심에 서겠다”는 다짐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에게 ‘이거 해 달라’, ‘저거 주세요’라는 문법 대신, ‘우리가 열심히 할 테니 힘내세요’라는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한 참석자는 “박 회장이 박 대통령의 최근 힘겨운 상황을 많이 고려한 듯한 말들을 했다”고 전했다. 잇따른 총리후보자의 중도하차에다, 2기 내각의 출범조차 구관을 다시 불러 짜야 하는 지경에 이른 ‘힘 빠진’ 대통령을 바라보는 기업인들의 시선을 보여준다.
재계는 세월호 참사에 뒤이은 6·4 지방선거, 개각 등으로 ‘경제 국정’이 사실상 중단되고 있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지난 2월 내놓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이를 추진하기 위한 규제완화, 내수부양정책 등이 현재 갈 길을 잃은 상태다. 정부의 규제완화 드라이브에 반색하며 투자시기를 앞당기려던 기업들도 줄줄이 투자집행을 미루고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체제에 이어 등장할 ‘최경환 체제’의 경제운용 방향을 탐색해야 ‘정책 리스크’를 최대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나마도 지연되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다. 새로운 경제팀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와 업무파악을 거쳐 실질적인 경제국정이 중심을 되찾으려면 적어도 7월 말이나 돼야 한다. 내수진작을 위해 발표한 사교육비 경감 대책, 주택연금 공급 확충 대책, 잠자는 돈 활용 방안, 중산층 기반 강화 방안, 자영업 경쟁력 강화 대책 등은 8월 휴가철이나 빛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기업들이 정부의 경제운용계획에 가장 주목하는 것은 국가 예산의 집행 방향이다. 이른바 ‘돈줄’의 흐름이다. 어디에 관급의 자금이 풍부해지는지, 어떤 부문에 시장이 활성화될지, 어디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지를 판단한다. 그 기조를 파악하는 시점이 늦어지니 속이 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대기업의 대관담담 임원은 “정부 수주 물량에는 상당 부분 대기업 참여가 제한적이어서 직접적인 수혜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건설부문의 경우 정부의 정책지원 방향에 따라 시장이 민감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정부의 기조변화에 늘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설경기와 관련해 이미 정부는 세입자 부담을 줄이고 주택시장을 정상화하겠다는 취지로 주택임대차 선진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부처 간 이견으로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황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발언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담보대출인정비율(LTV) 규제 완화 기대감이 형성돼 있지만 현실화 시기와 방안도 불투명하다. 내수경기에 직결돼 있는 건설경기 활성화에 기대를 걸며 하반기 실적 만회를 벼르고 있는 건설사들은 요즘 “목을 내놓고 처분만 기다리는 심정”이라고 드러내놓고 말한다.
세제와 금융, 재정 등 측면에서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 차별을 철폐하고 보건·의료와 교육, 관광, 금융, 소프트웨어 등 5대 유망 서비스 분야를 육성하는 대책도 당초 이달 중 발표를 목표로 작업해왔지만 2기 경제팀 출범 이후로 미뤄진 상태다.
대통령 일정과 경제정책 방향 등과의 우선순위 등을 감안하면 서비스 대책이 발표되는 무역투자진흥회의는 빨라야 7월 중순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업들의 투자를 막아온 ‘덩어리 규제’들을 도마에 올려놓고 한꺼번에 처리해주는 민원처리 창구였는데, 이 역시 기대난망인 셈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기업들을 잡겠다고 나서서 최대 리스크였는데, 올해는 정부가 손 놓고 있거나 주체가 없어서 리스크가 되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