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명에 달하는 금융사 임직원에 대한 징계가 결론 없이 미뤄져 양대 금융당국이 충돌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금융위가 세종로로 청사를 옮기기 전 같은 건물에 위치한 금융위·금감원 입구.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금감원에 따르면 징계대상에는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이건호 국민은행장, 하영구 한국씨티금융지주 회장 겸 씨티은행장 등 CEO(최고경영자)뿐 아니라 현직 임원 수십여 명도 중징계 대상에 올라있다.
금융권은 금감원의 엄포에 겉으로는 반발하면서도 물밑으로는 정치권 등을 접촉해 구명로비에 적극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징계 자체를 피할 수는 없지만 수위를 낮춰 보려는 의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무더기로 문책경고 등의 중징계를 받는 상황은 면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각 금융사들마다 가동할 수 있는 채널을 총동원해 금융당국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징계는 ‘주의, 주의적 경고, 문책경고, 직무정지, 해임권고’, 5단계로 나뉜다. 이 중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은 은행 임직원은 내부적으로 연임이나 승진이 거의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해당 회사에서 퇴직한 뒤에도 금융권 재취업이 제한된다. 사실상 금융권에서 퇴출당하는 셈이다.
금융사들이 거센 저항을 했지만 금감원의 입장은 단호했다. 금감원은 당초 예정대로 지난 26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금융사들의 징계 수위를 논의했다. 하지만 일은 금감원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오후 2시 30분부터 시작해 밤 9시가 넘어서야 끝난 마라톤 회의는 결국 “징계 결정을 연기한다”는 싱거운 결론으로 막을 내렸다.
이날 제재심의원회에 소명을 위해 출석했던 금융권 CEO들은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기고 회의 장소로 향했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은 “나쁜 경우보다는 좋은 경우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고, 김중웅 이사회 의장은 “억울하게 피해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어찌 보면 이미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발언들이다.
요란했던 출발에 비해 맥없는 결과가 나온 이유 중 하나는 금감원의 상위기구인 금융위원회가 “독단적인 결정”이라며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기도 하다. 금융위는 “이번 제재 결정에 관해 사전 협의가 부족했다”면서 “이런 식이면 금감원의 징계권을 회수할 것”이라며 금감원을 압박했다.
금융위는 지난 16일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금감원에 ‘위탁’한 금융사 제재권을 되찾아 오겠다는 내용을 담은 법률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개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앞으로 중징계 사안에 대해서는 금융위가 직접 해당 금융회사에 제재 내용을 사전 통지하고 의견을 청취하기로 했다. 금융사나 임직원에 대한 중징계는 기본적으로 금융위의 의결이 필요한 사안이지만 그동안 금감원에 맡겨졌던 권한이다.
개정안은 또 금감원의 금융회사 검사결과를 금융위에 신속히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기존에는 금감원이 검사를 끝낸 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징계 수위를 결정한 뒤 금융위에 보고 했지만, 앞으로는 검사가 끝나자마자 내용을 보고하도록 한 것이다. 금융위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두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금융사들의 구명활동이 주효했다는 시각이다. 반민반관(半民半官) 조직인 금감원과 달리 공무원 조직인 금융위에 정치권을 통한 입김이 먹혀들었다는 분석이다. 민간 금융사 관계자는 “정보유출 사태와 KB금융 내분 등에 대해 금융당국 책임론도 비등한 상태 아니냐”고 되물으면서 “지난해 동양그룹 사태 당시의 상황에서 보듯 국정감사나 대정부질문 등에서 정치권의 압박에 시달려야하는 금융위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금융위의 자존심을 건드린 결과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통상 대규모 징계나 중대한 사안을 다룰 경우 금융위와 사전협의를 거치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런 절차가 생략됐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KB금융 고위층에 대한 징계수준을 놓고 금융위와 금감원의 의견이 다소 달랐던 것으로 안다”면서 “이견이 충분히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감원이) 징계수위를 발표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전했다.
이유야 어쨌든 금감원은 금융위의 돌발행동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의 검사 업무까지 금융위가 간섭하겠다는 것은 지나치다”면서 “월권행위가 아닌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금융위는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징계권은 원래 금융위의 고유권한”이라며 “위탁했던 업무를 되찾아 오는 것일 뿐”이라고 맞받았다. 두 당국의 물밑 충돌을 금융권이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이영복 언론인
금융위-금감원 ‘관계’ 한 가족? 알고 보면 ‘물과 기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당초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와 함께 금융시장에 관한 감독과 정책결정을 담당하는 사실상의 ‘한 식구’로 출발했다. 지난 2008년 3월 이전까지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최고 결정권한은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금융위원회의 전신), 금융감독원, 세 기구가 나눠 갖고 있었다. 특히 금융감독위원장은 통상 금융감독원장을 겸직하며 막강한 경제권력을 휘둘렀다. 금융감독위원회가 금융위원회로 바뀐 것은 이명박 정부 때의 일이다. 이명박 정부는 금융위원회를 신설해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가 갖고 있던 금융정책 결정권과 금융회사 감독 기능 등 금융 관련 전권을 금융위로 이관했다. 이로 인해 재경부의 금융관련 정책권한은 급속히 축소됐고, 금융감독원은 금융위원회가 위임하는 감독 업무를 수행하게 됐다.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의 겸직도 금지됐다. 현재의 시스템은 정부조직인 금융위가 금융에 관한 포괄적인 행정 권한을, 민간조직인 금감원은 감독 권한을 갖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금융위는 국무총리 산하 중앙행정기관으로 공무원들로 구성된 반면 금감원은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민간 직원들로 구성돼 있다. [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