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의 밤풍경으로 기사 내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 ||
요즘의 삐끼들은 단순히 거리의 취객들을 유혹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업소와 연결된 이들은 보다 ‘적극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조폭과 같은 불량배들과 연계해서 협박을 일삼고, 심지어는 술에 약을 타서 잠들게 한 다음 술값을 바가지 씌우는 경우도 늘어났다고 한다. 최근에는 인터넷에 여성 삐끼들도 등장한 상태다.
더욱 악랄한 수법으로 ‘재무장’해 유흥가를 휘젓고 있는 삐끼들. 피해사례를 중심으로 실태와 대처법을 취재했다.
'삐끼' 는 일반적으로 업소의 매출 증대를 위해 거리에서 직접 홍보를 하는 사람을 총칭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통상적인 의미로는 유흥업소에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취객을 현혹시키는 사람을 가리킨다.
삐끼의 유래는 당구용어인 일본말 ‘히끼’(끌다, 끌어당기다, 딸려오게 한다)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고, ‘미끼’, ‘뺏기’, ‘벗겨먹기’ 등에서 연유했다는 설도 있다. 단어 자체부터가 그다지 좋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최근 인터넷 사이트 등에 올라오는 피해사례를 보면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평소 유흥을 꽤 즐기는 직장인들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사회 초년병이나 어수룩한 대학생들은 오히려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최신판 삐끼의 수법이 어떻길래 경험 많은 ‘주당’들도 여기에 꼼짝없이 결려들게 되는 걸까. 기자가 현장으로 직접 나가서 생생한 얘기들을 들었다.
“삐끼는 술기운이 올라 다소 기분이 ‘업’된 취객들의 심리를 묘하게 잘 이용할 줄 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한 삐끼가 취객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길게 말하지도 않는다. ‘형님들, 양주 한 병에 아가씨하고 놀다가 2차까지 해서 20만원입니다. 한번 보고 가세요.’ 맨정신에 들으면 ‘말도 안된다’고 그냥 지나칠 테지만 이미 취기가 오른 사람들에게는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듣고 그들을 따라간다면 적어도 한두 달 치 월급을 2~3시간 만에 날리게 되는 불상사를 당하기 십상이다.
기자가 어렵사리 강남의 한 삐끼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본 결과 삐끼가 받는 수수료는 업소에 따라 매상의 25%에서 많게는 40%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최근 극성을 부리고 있는 강남역 주변 삐끼의 경우 최대 40~45%까지 받기도 한다는 것. 하루에 괜찮은 한 테이블만 엮어도 남부럽지 않은 수입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집요함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삐끼의 일반적인 수법은 앞서 말한 ‘서비스 거리’를 먼저 제시해 손님의 심리상태를 흔들어놓은 다음 그것을 합리화시키는 요인을 제시하는 식이다. 예를 들면 ‘술값과 아가씨 팁, 2차 비용까지 모두 20만원이면 해결된다. 일단 가셔서 아가씨라도 보시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나오셔도 된다’고 미끼를 던진 뒤, ‘제가 사장인데, 이번에 새로 오픈해서 가게 홍보가 필요하다. 일단 아가씨들 수입부터 맞춰줘야 하기 때문에 이번은 싸게 해드릴 테니 다음에 주위 분들에게 홍보 좀 많이 해달라’라고 그럴듯한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삐끼에게 이끌려 업소에 입장한 후에는 상황이 백팔십도 달라진다. 대체로 다음과 같은 수순이 기다린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직장인 H씨(30)가 들려주는 지난 주말의 피해사례.
“친구 한 명과 함께 삐끼를 따라 한 업소에 들어갔는데 선택 절차도 생략하고 그냥 아가씨 두 명이 들어와서 우리 옆에 앉더라. 순식간에 양주 한 병이 비워졌다. 또 한 병 더 시킨 것까지는 기억난다. 술잔이 몇 차례 오가고 어쩌고 하는 사이에 계산서가 들어왔는데, 양주 4병에 안주하고 해서 2백만원가량이 나왔다고 했다.
항의했더니 잠시 후 계산서를 들고 마치 조폭과 같은 험상궂은 인상의 건장한 청년들이 들어와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더라. 그땐 정말 돈이 문제가 아니라 무사히 그 술집을 나오는 것이 중요했다. 기대했던 2차는커녕 오히려 협박에 시달렸다.”
또 다른 사례를 제보한 B씨(35·자영업자)의 얘기는 더욱 충격적이다.
“삐끼를 따라 룸에 들어갔고, 폭탄주가 돌려졌다. 한 잔을 먹고 조금 있으니 머리가 몽롱해지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솔직히 당시엔 취해서 잠든 건지, 약을 먹은 건지 아무 정신이 없었다. 아무튼 나중에 흔들어 깨우길래 눈을 떠보니 2백만원에 가까운 계산서를 내미는 것이었다. 친구와 함께 울며 겨자 먹기로 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계산하고 나왔는데, 둘이 동시에 폭탄주 한 잔에 쓰러진 것으로 봐서는 술에 약을 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밖에도 취재 과정에서 들은 얘기는 실로 다양했다. 당초 “선불로 10만원만 주면 양주 한 병에 안주가 기본”이라고 해서 들어갔다가 “추가 양주값은 40만~50만원”이라는 황당한 얘기와 함께 술값을 턱없이 물리는가 하면, 룸 안에서 흔히 ‘즉석 불고기’라는 명칭의 성행위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한 다음, 바가지를 씌우고는 “막말로 손님들도 불법 성매매를 한 것 아니냐”고 협박조로 윽박지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삐끼의 개념도 다양해지고 있다. 남성 삐끼들이 유흥가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면 인터넷 안에서는 여성 삐끼들이 암약한다. 이런 신종 수법에 피해를 입은 사례도 최근 부쩍 늘고 있다. 이른바 ‘사이버 삐끼’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다.
사이버 삐끼는 오프라인의 꽃뱀을 연상시킨다. 채팅방 등에서 남성과 일대 일 대화를 하며 ‘애인과 방금 싸우고 헤어져서 기분도 울적해서 PC방에 게임이나 하러 왔는데 술 한잔 사달라’는 식으로 접근한다. 대화 내용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대부분 쉽게 속아 넘어간다고 한다.
문제의 여성이 만나자고 한 술집으로 가게 되면 그때부터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 여성은 ‘십중십’ 그 업소에 고용된 이른바 프리랜서 종업원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이버 삐끼에게 속아서 하룻밤 술값으로 수십만원을 날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유명 채팅사이트인 S에 자신이 당한 피해사례를 올린 한 남성을 만났다. 전문직 종사자인 C씨(34)의 얘기다.
“어느 날 채팅사이트에 접속했는데 쪽지가 날라오더라. 상대방 여성이 ‘비도 오고 해서 우울하다’고 해 ‘같이 만나서 가볍게 술이나 한잔하자’고 제안했다. 그 여성이 다소 망설이는 듯하면서 응하길래 그때만 해도 아무 의심도 들지 않았다.”
그는 ‘가끔씩 자주 혼자 가는 술집이 있다’는 상대 여성의 말에 그곳으로 나갔다. 함께 양주 2병 정도를 비웠을 즈음 화장실을 간다고 나선 그 여성은 소식이 없었고, 술값으로 50여만원이 나왔다고 한다.
그는 “나 같은 경우는 그나마 술값 50만원만 바가지 쓰고 말았지만, 술에 취해 곯아 떨어졌더니 자신의 지갑이 없어졌다는 사람들도 꽤 있더라”며 이런 식으로 접근해오는 여성들이 있으면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구성모 유흥 전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