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3월16일 경찰대학교에서 열린 21회 졸업식 및 임용식. 경찰대 출신들이 경찰 내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견제론도 커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전·의경을 제외한 10만 경찰 중 경찰대 출신은 2%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경찰대 출신들의 성장은 놀라운 것이다.
이 같은 경찰대 출신들의 약진은 경찰 권력 내에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경찰대 출신들을 그저 ‘똑똑한 후배’ 정도로 취급하던 간부후보생 출신 등 비경찰대 출신 사이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찰대 출신을 경찰 내 ‘하나회’로 비유하면서 노골적으로 경계심을 표출하고 있다. 매년 50여 명을 뽑는 간부후보생은 50년 넘게 경찰 간부를 양산하면서 경찰의 주류를 형성해 왔다.
경찰 입문은 고시 출신, 군특채, 순경특채, 경찰대 등 다양하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경위’로 임명되는 경찰대 졸업생들이 85년부터 20년 이상 매년 1백20명가량 배출되면서 경찰의 새로운 권력집단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경찰 내 총경 4백20명 중 경찰대 출신은 19%인 80명이다. 이들은 서울시내 경찰서장, 경찰청과 서울지방청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경찰 승진인사에서 ‘영순위’에 해당되는 핵심자리를 경찰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대 출신 중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윤재옥 대구지방청 차장이다. 올 초 경무관으로 승진한 그는 경찰대를 수석 입학하고, 수석 졸업했다. 그는 경찰대 출신 1호 경감, 1호 경정, 1호 총경 등의 기록을 세운 최선두주자다. 지난 99년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논란을 빚을 때 그 중심에 서서 경찰대 동문들을 이끌기도 했다. 경남 합천 출신으로 대구 능인고를 졸업한 윤 차장은 대구 달서서장, 경찰청 외사 2과장, 서울 구로서장을 지내고, 참여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됐다가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능력이 출중한데다 경찰 내 선후배들의 신임도 두터워 미래의 경찰총수감이라는 평을 듣는다.
윤 차장보다 1년 늦게 총경에 승진했지만 김성훈 경찰청 외사 3과장과 서천호 서울 수서서장도 선두그룹에 든다. 대전 출신인 김 과장은 충남 당진서장과 4기동대장, 관악서장, 영등포서장을 지냈고, 서 서장은 경찰대 학생지도과장, 과천서장, 경찰청 정보2과장 등을 역임했다. 김 과장은 판단력이 뛰어나고, 서 서장은 추진력이 좋다는 평이다.
이밖에 경찰대 1기생 중 총경급으로는 강경량 청량리서장, 이강덕 남대문서장, 김호윤 송파서장, 박병국 2기동대장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또 경찰청의 박기선 장비과장, 장전배 경비2과장, 황성찬 부산 APEC 경호단장과 조항진 일본 도쿄 주재관, 이승현 중국 심양 주재관, 박승용 모스크바 주재관, 서울경찰청의 정철수 경비 2과장 등도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경찰대 1기 중 총경 이상 간부는 46명에 달한다.
경찰대 2기 중 선두는 박종준 경찰청 혁신기획과장이다. 충남 출신의 그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바로 경정에 특채된 케이스다. 박 과장은 충남 공주서장, 강원 평창서장, 경찰청 마약수사과장, 서울 마포서장 등 일선 현장 경험이 풍부한 수사통으로 통한다. 경찰청 채희곤 지능범죄수사과장과 서대용 정보 1과장, 임호선 업무혁신과장, 이운주 자치경찰추진팀장, 이만희 뉴욕 주재관 등이 2기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5기에서 총경 승진자는 이상식 총경과 이봉행 총경 등 2명이다. 이 총경은 행정고시 합격자다. 7기에서 총경은 사법시험을 합격한 강승수 총경이 유일하다. 강 총경은 다른 동기에 비해 승진이 워낙 빨라 왕왕 윤재옥 경무관에 비교되곤 한다. 4기와 6기에서는 아직 총경 승진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경찰대 출신 서울경찰청 한 간부는 “간부후보생이나 특채 출신에 비해 경찰대 출신들의 승진이 빠른 것은 사실이지만 경정까지는 시험과 심사로 승진이 결정되기 때문에 특혜를 받은 것은 없다”면서 “경찰의 인사 적체가 누적되면서 경찰대를 견제하는 흐름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대 출신 간부는 “현재 경찰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는 간부후보생과 특채 출신들이 ‘칼을 잡고 있다’”며 “경찰대 출신들의 위기는 지금부터”라고 잘라 말했다. 총경 이상의 승진인사는 심사로만 결정되기 때문에 현재 경찰수뇌부들이 경찰대 출신들을 견제하려 든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견제 움직임은 경찰 주변 곳곳에서 감지된다. 우선 경찰대 폐지론이 심심치 않게 불거지는 것을 경찰대 출신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실제 경찰 주변에선 “경찰대 출신은 사관학교 출신이고, 다른 출신들은 하사관 출신이냐” “일반 대학 경찰행정학과 졸업자는 시험을 거쳐 경위가 되지만 경찰대 출신은 시험 없이 경위가 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처사다”라는 말들이 돌고 있다. 이런 특혜논란은 경찰대 폐지론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경찰의 고질적인 인사적체도 경찰대 출신들을 압박하고 있다. 경찰 직급은 순경-경장-경사-경위-경감-경정-총경-경무관-치안감-치안정감-치안총감 등의 순이다. 이중 하위직인 순경, 경장, 경사의 수는 많은 반면 경위 이상 간부들의 수는 위로 갈수록 급격히 줄어든다. 그만큼 승진경쟁이 치열해 질 수밖에 없다.
경찰 중 경위 이상 간부는 1만4천여 명. 계급별로 보면 경위 9천4백여 명, 경감 2천9백여 명, 경정 1천3백여 명, 총경 4백20명, 경무관 이상 66명이다. 제주도를 제외한 광역지방자치단체 청장은 치안감이 맡고, 치안정감은 서울청장, 경찰청 차장, 경찰대 학장, 경기청장 등 4명이며 치안총감은 경찰청장 한 명이다.
비경찰대 출신 경찰 고위인사는 “경찰 전체 비율로 볼 때 소수에 불과한 경찰대 출신들이 간부를 많이 차지하는 것은 경찰 발전을 위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며 “경찰대 출신들도 이젠 우산을 벗을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찰대 출신 대 비경찰대 출신의 경쟁은 물론 경찰대 출신 간의 경쟁을 적극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영욱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