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몰락 직전 펜트하우스를 거의 매일 수시로 출입하며 김 전 회장의 업무지시를 수행했던 대우의 한 전직 고위 임원은 전화 인터뷰에서 “원래 펜트하우스는 객실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나 역시도 엘리베이터로 22층에서 내려서 계단으로 걸어 올라갔다”고 밝혔다. 그는 “흔히 김 회장의 집무실을 23층으로 알고 있는데, 엄격히 말하면 23층은 부인 정 회장의 집무실이었고, 김 회장 집무실은 24층이었다”고 말했다. 즉 펜트하우스의 두 개 층을 부부가 각각 한 층씩 자신의 집무실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펜트하우스 한 층의 크기는 약 1백50평 정도로 30~40명이 한꺼번에 파티를 할 수 있는 연회장이 있고, 회의실과 집무실, 그리고 접견실, 목욕탕, 침실 등이 각각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원래 대우그룹 회장실은 대우센터 빌딩 25층에 있었으나, 사용하기에 불편했던지 김 회장은 펜트하우스를 주로 이용했다”고 전했다. 실제 대우센터 빌딩은 경비원들도 있고 특히 야간에는 외부인사들의 수시 출입이 번거로웠던 반면, 호텔은 24시간 오픈된 데다 펜트하우스는 객실과 분리된 공간이어서 ‘조용한’ 출입이 용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필요시에는 부인 정 회장의 ‘뒤에 숨을 수 있는’ 피난처로도 펜트하우스를 긴요하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실제 힐튼호텔의 소유자는 부인 정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대우가 지난 96년 무기거래 로비 사건으로 언론의 표적이 되었을 당시 김 전 회장을 접촉하기 위해 취재진들이 펜트하우스에 몰려들자, 대우측은 “이곳은 정 회장의 집무실이지 김 회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김 회장 사무실은 대우센터 빌딩에 있지 않느냐”며 취재진을 따돌린 적도 있다.
앞서의 관계자는 “펜트하우스는 김 회장의 집무실이며 사실상 자택이었다. 여기에 많은 고위 인사들이 드나든 것이야 뭐 말할 것도 없다. 호텔에서 만나서 식사하고 바로 펜트하우스로 올라가서 대화하고, 조용한 만남을 갖기에 적격의 장소였다”고 밝혔다.
특히 펜트하우스는 92년 대선 정국 때 김 전 회장의 신당 대통령 후보 추대설이 나돌면서 정계 인사들의 밀실로도 사용됐다. 당시 이종찬 김용환 전 의원 등 신당 관계자들은 자정이 넘은 새벽에도 펜트하우스를 수시로 드나든 것으로 밝혀졌다.
펜트하우스 내부에서 김 전 회장이 은밀한 ‘거래’를 했음직한 정황을 보여주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98년과 99년 당시 펜트하우스를 몇 차례 방문했던 인사 C씨는 당시 자금 사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김 회장에게 해외 투자자를 소개했고 이를 계기로 김 회장에게 상당히 융숭한 대접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C씨는 “98년 1월 하순경 이○○ 사장의 인도를 받아 힐튼호텔 펜트하우스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김 회장은 품위유지비가 많이 들 것이라며 내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1억원짜리 7장, 7억원이 들어 있었다. 그곳에서 김 회장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함께 식사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라며 정중히 돌려줬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월간중앙>은 “김 전 회장이 98~99년 당시 정계 주요 인사를 펜트하우스로 청해서 그곳에서 접견 또는 식사를 하고 그 사이에 이 인사가 지하에 주차해둔 차량에 돈가방을 실어주는 식으로 로비를 펼쳤다”고 보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