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이윤형씨 | ||
26세로 세상을 떠난 윤형씨가 보유하고 있던 2천억원대 재산은 앞으로 어떻게 처리될까. 유족들로서는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호사가들의 관심은 끝이 없다. 삼성그룹 내부에서 이에 대한 공식 논의는 아직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윤형씨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지난 시점에서 거론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대로’ 따지면 미혼인 윤형씨의 재산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 어머니 홍라희씨가 절반씩 상속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안기부 도청 파문 이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그룹총수 부부가 지분을 늘리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한 최근 이건희 회장 자녀들이 편법상속 논란에 휩싸인 터라 형제들이 윤형씨 지분을 흡수하는 것 또한 여의치 않아 보인다. 윤형씨 소유 지분이 모두 비상장 주식인 만큼 앞으로 상장될 경우엔 막대한 평가차익을 기대할 수도 있다. 당분간 제3자가 관리하다가 상장 직전 형제들이 환수하는 방법도 있지만 여론의 시선이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까닭인지 삼성 안팎에선 이 회장 일가가 윤형씨 재산을 그대로 상속받기보다는 의미 있는 일에 투자할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우선 23세로 세상을 떠났던 김우중 전 대우 회장 장남 선재씨 경우처럼 윤형씨를 추모하는 사업에 쓰일 가능성이 있다. 김우중 전 회장 부부는 선재씨 사망 이후 선재미술관을 만들어 선재씨 넋을 기리는 동시에 문화사업에 투자하는 모습을 보였다.
▲ 2000년 1월 말 이건희 회장의 서울대 명예경영학박사학위 수여식. 왼쪽부터 재용씨, 홍라희씨, 장녀 부진씨, 이건희 회장, 부진씨 남편 임우재씨, 차녀 서현씨, 윤형씨. | ||
윤형씨 재산이 자선사업에 투입되는 그림도 그려볼 수 있다. 윤형씨 사망소식이 알려지자 윤형씨에 대한 추모의 글들이 사이버공간을 가득 메웠다. 지난 2003년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통해 소개된 윤형씨의 재벌2세답지 않은 소탈하고 발랄한 모습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던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윤형씨에 대한 동정여론이 조성된 것이다.
윤형씨 소유 지분을 출자해 자선사업단체를 만들 경우 이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윤형씨에 대한 추모 분위기를 극대화시켜 ‘반 삼성 정서’를 희석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윤형씨를 추모하는 자선단체의 설립과 활동은 편법상속 논란으로 얼룩진 삼성 이미지 재고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지금으로선 문화재단이나 자선사업 같은 목적으로 윤형씨 재산이 쓰일 가능성이 높게 거론되지만 다른 사업 부문에서 윤형씨를 추모하는 작업이 진행될 수 있다는 평도 나온다. 큰 언니인 부진씨가 신라호텔 상무로, 둘째 언니 서현씨가 제일모직 상무보로서 경영에 참여해 왔지만 학업중인 윤형씨의 경영 참여 가능성은 높게 거론된 적이 없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선 ‘이건희 회장이 윤형씨에게 유통사업 분야를 물려주려 한다’는 소문도 나돌았던 바 있다. 고 이병철 창업회장이 가장 예뻐했던 딸로 알려진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유통사업을 물려받은 것과 비슷한 관점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윤형씨 사망으로 윤형씨의 직접적인 경영 참여는 불가능해졌지만 윤형씨 이름을 딴 신규사업 구성 등 윤형씨 넋을 기리는 사업 구상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