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가문은 일본 남부 규슈 지방의 최고 명문가로 꼽힌다. 우선 아소 다로 외상의 증조부 아소 다키치는 1872년 탄광지인 후쿠오카 치쿠호 지방에서 탄광사업에 진출해 가이지마, 야스카와와 함께 치쿠호 탄광 3대 명가로 성장했다. 메이지 정부 중기에 들어서면서 석탄이 새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 시작하고 정부의 공업입국 정책과 수요확대가 겹치면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다키치는 탄광업을 기반으로 은행, 전력, 철도, 병원, 학교사업 등으로 규모를 확대했다. 아소광업은 아소상점, 아소그룹 등으로 이름을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소가의 성장이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한다. 우선 다키치는 1900년 중의원 의원에 진출, 중앙정계와 인연을 맺었다. 1933년 다키치가 사망한 뒤에는 손자 아소 다카기치가 가업을 잇는다. 한국인 연행자에 대한 가혹한 처사가 이뤄진 것이 주로 다카기치가 경영권을 쥐고 있던 때였다.
그는 요시다 시게루 총리의 딸과 결혼한 뒤 1949년 중의원 의원에 당선된다.
당시 아소광업이 요시다의 자금줄이었다는 것은 일본 정가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다카기치는 현재 외상인 다로(장남), 아소그룹 회장을 맡고 있는 유타카(차남), 노부코(딸)를 뒀다. 노부코는 현 아키히토 일왕의 사촌동생인 미카사노미야의 부인이다.
다로는 스즈키 젠코 전 총리(재임 1980~82년)의 딸과 결혼한 뒤 73년 아버지 다카기치가 그룹 회장으로 승격한 뒤 3대 사장에 취임했으나 79년 정계에 진출하면서 차남에게 뒤를 물려줬다. 현재 차남이 총수를 맡고 있는 아소그룹은 80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한국인 징용문제를 추적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아소가는 한국인의 피땀으로 부를 일군 뒤 혈연 등으로 정치와 연결되면서 현재 최고의 명문가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용채 재일 저널리스트
탄광 자금줄로 정계 왕실과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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