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첫날, 일반객장에서 만난 40대 여성은 게임도 안하면서 테이블을 기웃거렸다. 기자가 “아주머니는 왜 안하시냐”고 물으니 “차비로 남겨둔 만원까지 다 잃어 빌릴 사람이 없나 찾아다니는 중”이라고 답한다. 집이 강릉인 이 여성은 전날 찜질방에 간다며 거짓말을 하고 나왔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데리러 오라는 말도 못한다고 했다.
몇 시간 뒤, 다시 찾은 카지노. 차비가 없다던 그 아주머니의 손에 칩이 들려있었다. 차비를 빌려서는 그 돈으로 다시 게임을 시작한 직후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돈을 모두 잃은 그녀는 또다시 ‘차비를 가장한 게임비’를 얻기 위해 오전 6시 게임장이 폐장하는 시간까지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오래 전부터 카지노를 출입해 오던 갬블러들과 주변 지역 상인들로부터도 강원랜드를 찾는 사람들의 웃지못할 이야기를 얼마든지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솔깃햇던 얘기는 갬블러가 직업이 되어 버린 한 부부의 사연. 집에서 강원랜드까지 차로 1시간 이내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는 이 부부는 매일 이곳에서 30만원가량을 따서 돌아간다고 한다. 수년간의 경험으로 익힌 노하우를 바탕으로 욕심을 내지 않는 게 비결. 그러다보니 월수입은 어지간한 직장인보다 많은 5백만원 이상이 된다.
한때 자영업으로 수십억원을 벌었던 한 50대 여성은 카지노에 빠진 뒤 하루 아침에 식당 종업원으로 전락해 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 여성이 전 재산을 날리는 데는 불과 1년이 걸리지 않았다. 사북 지역의 한 전당포 업주는 “그 많던 재산을 잃고 마지막으로 전당포를 찾아와 돈을 빌려갔었다. 처음엔 차를 맡기더니 나중에는 휴대폰도 팔아 게임을 했다”며,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 주변의 한 식당에 밥을 시켰더니 바로 그 아주머니가 배달을 오더라”며 난감했던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그 여성은 현재도 이 지역에서 1년이 넘게 배달일과 카지노를 들락거리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3대가 도박에 빠진 경우도 있었다. 카지노에서 생활하던 아들을 찾아 나선 어머니가 도박에 빠지고 이 어머니를 찾아 카지노에 왔던 할머니까지 카지노를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사북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전설처럼 전해진다.
카지노가 폐장하는 오전 6시. 인근 호텔의 사우나는 발 디딜 틈이 없다.
3시간여 후인 오전 9시30분경. 카지노 앞 라운지와 카페테리아는 벌써부터 카지노가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빈틈이 없었다. 카지노 폐장 전 잠시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이 눈에 띄어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며 “어떤 사람들은 자릿세를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되파는 게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거래되는 자릿세는 5만원에서 크게는 30만원까지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특히 12월25일이나 12월31일 같은 날에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다.
카지노에서 전 재산을 잃은 사람들 중 일부는 이렇게 매일 아침 자리를 팔아 챙긴 몇 만원의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특히 20~30대 젊은 사람들 중 도박에 빠져 재산과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자신을 파멸로 이끈 카지노를 떠나지 못하고 이런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 지역주민은 “이 근방(사북, 고한)에 월세방을 얻어서 생활하면서 매일 아침 자리를 팔아 번 몇 만원의 돈으로 게임을 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수십명이 넘는다. 이들 중 일부는 월세방을 얻을 돈도 없어 동사무소에서 운영하고 있는 쉼터에서 생활하며 사실상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전 10시. 카지노가 개장을 하면 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사람들은 귀신에 홀린 듯 카지노가 있는 곳을 향해 지금도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희망이 ‘잭팟’인지 아니면 또 다른 희망인지는 알 수 없다. ‘도박공화국’의 하루는 또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강원 정선=양하나 프리랜서 hana01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