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12월 윤태식씨가 쓴 진술서. ‘목숨으로 용서를 빌겠다’고 적고 있다. | ||
“이러한 사태와 관련해 큰 충격과 더불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한 심정을 금치 못합니다.”
대통령의 그 한마디는 윤태식에게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파멸의 전조였다. <주간동아>와 서울방송에 윤태식의 살인혐의가 보도되고 경찰청은 수사에 착수했었다. 그러나 권력기관에 의해 그 수사가 중단됐다는 의혹이 떠돌았다. 그건 권력기관이 윤태식의 살인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논리이기도 했었다.
마침내 윤태식에 대한 수사가 성역 없이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서울지검 부장검사 박영렬의 지휘하에 고석홍 검사가 수사 담당검사가 됐다. 수지 김 사건은 1987년 1월13일 발생했고 살인죄라고 하더라도 공소시효가 15년이니까 두 달만 지나면 처벌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검찰은 전력을 기울였다. 주임검사인 고석홍은 홍콩으로 가서 수지 김에 대한 수사기록 8백여 쪽을 복사해 왔다. 다행히 1년 전부터 한국과 홍콩 간 맺어진 사법공조협정이 발효된 때문이었다.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윤태식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검찰의 소환을 피했다. 몇 달만 시간을 벌면 운명은 다시 그의 편일 수 있었다.
검찰은 2001년 10월24일 오전 9시10분 윤태식을 긴급체포했다. 모든 것들이 철저히 파헤쳐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점화된 ‘패스21 게이트’ 사건에서 운 나쁘게 최초로 걸려든 피라미가 청와대 경호과장이었다. 경호과장의 부인이름이 윤태식의 회사 주주명부에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경호과장의 변호사인 나는 물증인 주주명부와 함께 핵심증언인 윤태식의 이 같은 진술을 찾아냈다.
“청와대 경호과장이 먼저 접근해서 명함을 달라고 하고 거기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주식을 요구하고 또 돈도 요구했습니다. 청와대 경호과장에게 잘 보이고 싶어 승낙했습니다. 경호과장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납품계약이 방해를 받을까봐 돈과 주식을 주었을 뿐입니다.”
그 내용이나 문체를 보면 수사관들의 ‘희망사항’이었다. 법적 틀에 맞추기 위해 모종의 거래를 한 냄새가 났다. 거물들이나 사회명사들은 다 빠져나갔다. 주식을 받은, 아는 언론인은 정책적으로 자기는 수사명단에서 빠졌다고 좋아하기도 했다.
수사기록의 문장 속에 등장하면 어떤 인물이라도 바로 음흉하고 타고난 범죄인이 됐다. 검찰이 파악해서 발표한 벤처기업인 윤태식의 혐의에는 살인 외에 사기가 추가됐다.
‘1988년 윤태식은 대신영화사를 차렸다. 외국에서 비디오를 수입, 복사해서 비디오가게에 공급하는 회사였다. 1992년경 사업이 어려워졌다. 그는 방송국 직원들의 신분증이나 재직증명서를 위조해서 그들 명의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다가 1994년 2월 구속됐다. 구치소에 있으면서 알게 된 수감동료의 소개로 한 여자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녀는 늙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독신녀였다. 그는 편지에 육군 제3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만대학교와 홍콩의 중문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고 얘기했다. 영화사를 운영하기도 하고 안기부 공작원으로 북한을 출입했다고 쓰기도 했다.
편지는 점점 농도가 짙어졌다. 윤태식은 출소하면 결혼하자고 했다. 1992년 5월경 그 여자가 의왕의 서울구치소로 면회 왔다. 윤태식은 수감 중 돈이 꼭 필요한데 출소하면 갚겠다고 간청했다. 그때부터 윤태식은 50만원씩 전신환을 송금받게 됐다.
윤태식은 그녀 이외에도 다른 여자와도 편지를 계속하면서 관계를 유지했다. 1996년 7월22일 윤태식은 출소했다. 그 이후 그는 그녀와 동거하면서 그녀 명의로 신용카드를 발급받고 그녀의 도움을 받고 살았다. 윤태식은 그녀와 동거하면서 다른 여자와도 사귀었다. 상황에 따라 만나는 사람에게 다른 여자를 자기의 처로 소개하기도 하고 그 자식을 자기애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같이 살던 여자가 혼인신고를 요구했다. 그러나 윤태식의 호적에는 수지 김이 처로 되어 있었다. 이미 수지 김의 죽음은 국내외 언론에 보도되어 사망신고를 하고 새로 혼인신고를 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윤태식은 안기부의 반대로 신고를 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대곤 했다. 그녀는 1997년 5월9일 아들을 출산했다. 윤태식은 혼인신고뿐만 아니라 아들의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다. 윤태식은 1997년 9월 그녀와 헤어졌다.’
검찰은 윤태식을 살인범에다 타고난 엉터리 사기꾼으로 만들었다. 변호사인 나는 수사기관의 발표를 그대로 믿지 않았다. 직업상 그들은 범죄와 악성만 잘 보는 외눈박이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법을 보는 관점에는 영혼이 없었다. 같이 살았다는 여자들이 갑자기 우르르 고소를 한 배경이 이상했다. 여론에 맞추기 위해 다급하게 고소를 유도했을 수도 있었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었다. 한 인간 안에 선한 면과 악한 면이 공존했다. 그러나 큰 사건의 마녀사냥에 걸려들면 영락없이 마귀로 됐다. 수사결과를 보도하는 언론에 의해 대중들의 머리는 한 가지 색깔로만 염색됐다.
변호사인 나는 윤태식의 입장이 되어 한번쯤 뒤집어 봤다. 그의 전방위 로비는 학력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건 아니었을까. 학연이나 지연의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관련 공무원, 금융기관 임직원, 언론인 등에게 매달려야 했을 것이다.
▲ 지난 2001년 11월13일 검찰에 구속되는 윤태식씨. KBS 화면 촬영 | ||
한몸이 된 경제지 사장을 통해 그는 국정원장, 정통부 장관, 재무부 장관 등 굵직한 거물들에 접근해 갔다. 그는 실무자들도 소홀히하지 않았다. 일선 잡지사 기자들까지 직접 찾아가 열심히 설명했다. 기자들이 감명을 받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주식들을 주위에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소액주주라도 주주가 되면 회사에 애정을 가지게 마련이었다. 동시에 주식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들은 계속적인 관심과 애착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는 회사직원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을 관리했다. 회식 때도 일차로 분위기만 띄우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직원들에게 그는 카리스마적인 사장이었다. 일단 성공의 조건을 갖추었다. 주식은 연일 그 가격이 폭등했다. 그는 친화력도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진술 때문에 구속된 경호과장 입에서는 원망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그 정도 주변정리를 할 수 있는 윤태식인데 하루아침에 15년 전의 살인혐의가 불거진 것이다. 안전기획부에서 보호하고 은폐했는데도.
나는 윤태식을 항소심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 세웠다. 그를 직접 보고 살필 수 있는 최초의 기회였다. 그는 살인죄와 사기죄의 파렴치범이 되어 조사를 받는 도중이었다. 검사에 의해 목줄이 죄어진 상태라고나 할까. 그는 검찰에서의 진술을 번복하고 경호과장을 도와줄 입장이 아니었다. 법정에서 본 그는 의외로 선해 보이는 커다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살인범들을 여럿 보았다. 그들에게서는 원인 모를 섬뜩함이나 푸른빛이 배어 나왔다. 그러나 윤태식의 경우 그게 없었다.
“이제는 사실대로 말해 줄 수 있습니까?”
검찰과 흥정한 걸 제치고 일부 진실을 말해달라는 메시지였다. 순간 그가 예민하게 나를 살폈다. 뭔가 알아챈 눈빛이었다. 둥그런 얼굴과는 다르게 내면이 예민한 사람이었다.
“하겠습니다.”
윤태식이 조용히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증인 윤태식씨는 청와대비서실, 경호실, 기자실의 여러 사람에게 접근해서 로비했던 사실 인정하시죠?”
“인정합니다.”
“지금 저기 서 있는 사람은 청와대 경호과장이었지요?”
내가 피고인석의 경호과장 송창규를 가리켰다.
“그렇습니다.”
“저 청와대 경호과장에게 패스21의 주식을 뇌물로 준 사실이 있습니까? 검찰의 조서에서처럼 그가 달라고 요구하던가요?”
형광펜으로 밑줄 그은 검찰에서 그가 진술한 부분을 보여주었다.
“제가 처음에는 주식을 주려고 했는데 나중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주주명부에 경호과장 부인의 명의만 사용하고 그 주식은 나중에 제 처남에게 넘겼습니다.”
절묘한 진술이었다. 뇌물을 주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왜 그랬습니까?”
“주식대금을 받지 못해서 취소시킨 걸로 기억합니다.”
뇌물이 아닌 매매였다는 것이다.
“검찰에서는 경호과장이 주식을 요구했다고 진술하셨는데 왜 그러셨습니까?”
“사실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윤태식이 정면으로 검찰진술을 번복했다.
“그러면 경호과장에게 왜 도움을 줬습니까?”
내가 물었다.
“저는 어려서 워낙 어렵게 살았습니다. 한강 고수부지에서도 살았고 천막생활도 했습니다. 경호실 과장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동정이 가서 그런 겁니다.”
그걸 그대로 믿기에는 조금 이상했다.
“증인 윤태식은 검찰에서 진술했던 사실들을 기억하십니까?”
내가 물었다.
“하도 많이 불려다녀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가 얼버무렸다. 듣고 있던 공판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봐요, 증인!”
검사가 눈에 힘을 가득 넣은 채 윤태식을 바라보았다.
“오늘 윤태식이 뭔가 진술을 번복할지도 모른다는 소리가 들려서 내가 윤태식 담당 수사검사를 만나 봤어요. 그랬더니 수사검사는 윤태식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하던데 어때요?”
그건 은근하고 강한 압박이었다. 윤태식은 살인죄로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윤태식이 순간 확 위축되었다. 검사가 계속했다.
“수사검사한테도 지금 법정에서 말한 거하고 똑같이 했어요?”
검사가 다시 그를 다그쳤다.
윤태식은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만하면 그가 배짱도 의리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의 압박을 무릅쓰고 해줄 건 이미 다 해 준 셈이다. 보통의 다른 사람들은 혼자 살아보려고 없는 얘기조차 줄줄이 불곤 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