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 협상 기본입장 및 전략’에 대한 보고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지난 15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경찰청은 내부 감찰결과를 보고하면서 “배씨가 음주운전 중 사고를 냈으며 당시 파출소의 두 직원이 배씨에 대해 음주측정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혀 그간의 의혹을 인정했다. 사실상 경찰이 사건의 은폐를 시도했음을 자인한 셈이다. 또한 “배씨가 사고 직후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전화를 했으며 민정수석실의 친인척 담당 김아무개 경정이 김해경찰서 서아무개 정보과장에게 사건 경위를 묻는 전화를 했다”고 밝혀 그동안 “(민원이 들어오기 전까지)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고 주장해 온 청와대는 난처한 입장이다.
청와대와 경찰청측은 “다른 건 몰라도 외압은 전혀 없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지만 앞서의 거짓말이 들통난 상황인지라 이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을 국민은 없을 것 같다. 음주운전 논란에서 청와대의 외압 가능성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는 ‘대통령 사돈의 음주 사고’. 3년 전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문제의 교통사고가 일어난 것은 2003년 4월24일. 노 대통령이 취임한 지 불과 두 달 후의 일이다. 경남 김해시의 한 도로에서 노 대통령의 장남 건호씨의 장인인 배병렬씨의 SM5 차량이 임아무개 경사의 엘란트라 차량을 들이받으면서 논란은 시작됐다. 경찰조사 결과 당시 배씨는 음주운전중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몇몇 경찰관 손을 거치는 과정에서 ‘단순 접촉사고’로 둔갑, 배씨와 임 경사 간에 합의서 한 장이 만들어진 채 종결된다. 그러나 현재 임 경사는 이 ‘합의서’의 실체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조용히 끝난 듯 보였던 이 사건은 그러나 사건 발생 1년6개월이 지난 2003년 11월과 그 3개월 후인 2004년 2월 피해자인 임 경사가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에 민원을 넣으면서 다시 불거졌다. 당시 민원의 주요 내용은 “음주운전자 배씨로부터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합의과정에서 회유와 협박을 받았다. 보상관계가 명확치 않으면 언론에 알리겠다”는 것이었다.
최근 사건이 보도된 직후 임 경사는 언론을 통해 “배씨가 당시 음주운전을 했으나 경찰은 이를 빼고 단순 접촉사고로 처리했다”며 “경찰 간부가 나를 찾아와 승진과 합의금을 제시하며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청와대의 외압에 의해 사건이 은폐됐음을 폭로한 것이다.
보도 직후 경찰청은 “이 사건은 단순 접촉사고였다. 음주운전사고가 아니었다”고 해명했었다. 청와대측도 강력히 반발했다. “지난 2004년 10월 당시 사건의 개요만을 파악했을 뿐”이라는 게 청와대측의 주장이다.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은 지난 3일 “민원이 들어온 직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 2명이 진정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부산지방경찰청에서 임 경사를 면담한 적이 있다. 그러나 배씨가 임 경사에게 ‘진급을 시켜줄 테니 없었던 일로 하자’는 등의 약속을 한 일은 없다”고 해명했다. 청와대는 도리어 “배씨는 음주운전을 한 것이 아니었다. 임 경사의 주장과는 반대로 임 경사가 가해자인 배씨에게 승진과 돈을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반박하며 “언론사와 임 경사를 상대로 소송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청와대측의 해명은 사실이 아니었다. 지난 15일 경찰청은 국회 행자위 전체회의에서 자체 감찰결과를 공개했다. 공개된 감찰결과에 따르면 당시 배씨는 음주운전을 했으며 사고현장에 출동한 이아무개 경장이 배씨를 파출소에 동행, 음주측정을 시도했으나 배씨가 이를 거부한 뒤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김해경찰서 정보과 직원 등으로부터 사고내용을 묻는 전화도 걸려왔다”는 것이다. 또 “(임 경사가) ‘아버지 친구분이고 아저씨뻘 된다’며 배씨를 데리고 나간 후 단순 물적 교통사고로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임 경사는 “그런 일은 없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배씨의 음주운전 여부와 청와대 사전 인지 가능성 그리고 청와대와 경찰청의 회유와 협박 사실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중 두 가지, 즉 음주운전 여부와 청와대 사전 인지 부분은 경찰청의 국회보고를 통해 사실로 밝혀졌다. 그동안 청와대와 경찰청 모두 거짓을 말해왔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제 남은 의혹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가 피해자인 임씨에게 회유와 협박을 한 일이 있는가’와 ‘만약 그랬다면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는가’로 정리된다.
청와대와 경찰청 주장의 상당부분이 거짓으로 드러난 이상 이 사건은 앞으로 청와대의 은폐 의혹으로 이어지면서 정치권마저도 뜨겁게 달굴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만약 처음 주장처럼 사건에 대해 자세히 몰랐다면 직무유기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며 이와는 반대로 이미 알고 있었으며 회유와 협박을 한 것도 사실이라면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권력형 은폐의 전형’이라며 쟁점화를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한상진 기자 sjin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