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뭐 어떤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동생인 데다, 누구처럼 ‘가슴을 거칠게 만질’ 것도 아닌데….
“남자는 나이 들어도 젊은 여자가 좋은 거란다.” 소설가인 외삼촌이 당신의 작품에 대한 해설조로 건넨 말이다. 순간적으로 “나도 어린 남자가 좋아요”라고 대꾸해버렸다. 오랜만에 찾아간 외갓집에 민망한 침묵이 흘렀다. 실언과 잠꼬대는 닮은 면이 많다. 둘 다 진심이라는 사실이다.
12년 전 최영미 시인은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외쳤고 여대생이던 나는 ‘그렇게 당연한 걸 꼭 글로 써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당당하게 ‘젊음의 상징’이던 록 그룹에 미쳐 있었고, 홍대와 이태원의 뮤비 감상실에 묻혀 살았다. 그들과의 팬 미팅 자리, 밴드 멤버 중 하나가 딴 병뚜껑에 스물여덟 살짜리 언니가 이마를 맞았고 그녀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봤을 때 든 생각은 ‘제대로 미쳤다’는 것.
그런데 이제 내가 그 소리를 듣는다.
다니엘 헤니-데니스 오-플라이 투 더 스카이로 이어지는 ‘버닝’과 휴대폰 액정의 동방신기를 본 주위 사람의 평이다.
대부분이 80년대 생, 20대 초반인 아이돌 스타가 미디어의 메인 신을 장악한 지 오래다. 주말 버라이어티 쇼부터, 드라마·영화에 이르기까지 이들 중 한둘의 얼굴을 볼 수 없는 프로그램이 없을 정도. 그만큼 장사가 되고 팬 층도 두텁다는 얘기. 특히 동방신기, SS501, 슈퍼주니어, 주지훈과 이준기 등은 20~30대 ‘누나 부대’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요즘 아이돌 스타의 공방(공개 방송) 관객 반 이상이 20대 이상이다”라고 밝힌다. 이들은 앨범을 사 모으고, 팬 페이지를 운영하거나, 팬픽(Fan-Fiction의 줄임말,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팬이 쓰는 소설)에 열을 올리는 등 문화생활처럼 아이돌을 사랑한다.
건축사인 한 지인은 얼마 안 되는 연차 휴가를 아낌없이 일본 보이밴드 ‘아라시’에 투자한다. 콘서트 때마다 일본으로 출국해 희귀한 싱글 앨범과 사진집까지 한아름 구해오는 것. 덕분에 일어도 늘었고 일본인 친구도 많이 생겼다고 자랑한다. 한 영화 잡지사 기자는 자신의 칼럼을 통해 동방신기에 빠진 사연을 소개했다. 처음엔 취재가 계기였지만 한 달 만에 DVD세트와 팬북(팬픽을 모아 출간하는 비공식 간행물)을 구입했고, 맘에 드는 팬픽은 ‘펑펑 울며 두 번씩 읽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버닝(Burning)은 그야말로 ‘마음에 불이 나는 상태’를 말하는 요즘 은어다. 대개의 팬 페이지에는 ‘버닝 방’이란 코너가 있는데, 누나들을 위한 버닝 방은 사정없이 진한 게 보통이다. 이들 사이에 “그냥, 작품을 좋아해서…”라는 공중파용 발언은 없다. “주지훈의 배드 보이적인 이미지, 정장이 잘 어울리는 얄상한 보디가 딱 내 타입이다. 모델 시절 희귀 화보를 모으고 있다.” “유노윤호를 남자로서 좋아한다. 화려한 팝핀 댄스, 리더로서 팀을 통솔하는 카리스마 때문인지, 정말 미치겠다” 등 이유가 구체적인 데다 빵빵한 데이터도 갖추고 있다. 노주현이나 임채무를 남편 몰래 흠모하며 드라마 시간만을 기다리던 어머니 세대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밤새 동영상을 돌리고 팬픽을 읽으며 키득거리는 필자에게 남동생은 “제발 정신 좀 차려!”라며 헤드록을 건다. 정신을 차려야 할 이유는 또 무언가? 누나들은 더 이상 월급 모아 동생 공부시키고 평생을 맡길 뚝배기 같은 남자 찾기에 바쁘지 않다. 대신 비위 상하는 상사, 치고 올라오는 후배 견뎌내며 ‘살벌하게’ 일하고, 필사적인 노력으로 동안과 몸매를 지켜 낸다. 웹서핑과 여행을 통해 배 나온 남자는 듬직한 게 아니라 복부 비만이란 사실도 알게 됐고 세계 미남의 표준이 어떤 건지도 입력됐다. 그래서 이제 그 열매를 자기 입맛에 맞는 대상과 함께 누리고자 한다. 스타일부터 몸매까지 깐깐하게 체크하고 문화적 코드도 맞아야 한다.
그 대상이 TV에 나오는 띠 동갑일지언정, 왜 질타 받아야 하는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동생인 데다 누구처럼 ‘가슴을 거칠게 만질’ 것도 아닌데…. 굳이 죄라면, 자다 깬 모습을 공개하고, 방송 중 셔츠를 벗어 던지며, 바로 옆에서 ‘부비부비’하듯 춤추며, ‘누난 내 여자니까’를 외쳐댄 그들, ‘성인용 아이돌’이 공범이다. 누나들의 엥겔 지수는 무척이나 낮아졌다.
글=이선배 앙앙 컨트리뷰팅 에디터
에디터=여하연 앙앙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