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재 삼흥그룹 회장 | ||
김 회장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으로 13억 7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김상현 전 민주당 의원이 전격 구속된 것. 호남 출신의 대표적인 ‘마당발 정객’으로 꼽히던 김 전 의원에 대한 사법 처리가 이뤄지면서 검찰 주변과 정치권이 다시 술렁이고 있다.
저가로 사들인 부동산을 투자자들에게 비싸게 되파는 수법을 통해 수백억 원가량의 부당 이익을 챙긴 혐의로 구속된 김 회장은 수사 과정에서 회삿돈 245억 원을 횡령하고 세금 89억 원을 탈루한 혐의가 드러나 지난 5월9일 구속됐다.
연초부터 김 회장을 내사했던 검찰은 부동산 사기와 횡령 혐의에 대한 조사와는 별도로 김 회장의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부분까지 집중 조사를 벌여온 것으로 알려진다.
상황이 이쯤 되자 검찰 주변에서는 김 회장 사건이 단순 사기가 아닌 거대 게이트로 ‘확전’될 가능성이 예고됐었다. 이 과정에서 <일요신문>은 김 회장의 지인들의 말을 빌려 김 회장이 김 전 의원을 포함한 몇몇 유명 정가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했고 김 회장의 돈이 정치자금조로 이들에게 유입됐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결국 김 전 의원이 첫 케이스로 사법 처리를 받음으로써 제2, 제3의 연루 거물이 등장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과거 몇몇 게이트 수사처럼 시간이 갈수록 수사 강도가 낮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적잖다. 과연 김 전 의원의 구속은 대형 비리로 이어지는 신호탄일까 아니면 수사의 종착역일까.
우선 전직 의원을 구속한 검찰의 수사가 과연 현 정치권으로 확산될지가 관심사다. 현재 검찰 주변에서 이른바 ‘김현재 리스트’로 거론되고 있는 정치권 인사는 10여 명. 그중에서도 김 회장과 두터운 교분을 나눈 것으로 전해진 인사는 5명 정도로 압축된다. 검찰에서 이들과 김 회장과의 특별한 ‘거래’ 사실이 밝혀질 경우 그야말로 정치권은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일요신문>은 이미 지난 몇 차례 보도(725호, 729호, 732호)를 통해 김 전 의원을 포함한 이들 5명의 인사와 김 회장이 무척 가까운 관계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특히 732호(2006년 5월 28일자)에서는 김 회장 지인의 말을 빌려 김 회장이 평소 여당의 현직 의원 세 명과 영남 출신 전직 의원과의 관계를 주변에 과시하고 다녔다는 점과 함께 이 정치인들의 이니셜을 공개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의원이 김 회장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구속되면서 나머지 정치인들도 김 회장으로부터 ‘금전적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나돌고 있다.
이미 검찰도 이런 관점에서 김 회장이 사용처가 규명되지 않은 30억 원가량의 양도성예금증서(CD)를 2002년 대통령 선거 전후에 매입한 점을 주목하고 계좌 전담 추적반까지 운영, 집중 수사를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공식적으로는 “확인된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검찰 일각에서는 김 씨의 횡령액보다 훨씬 많은 액수의 비자금이 드러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검찰에서 흘러나오는 비자금 액수, 그리고 김현재 관련 언론 보도는 빙산의 일각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미 지난 5월 취재진에게 “검찰이 김 씨 회사 직원과 가족 명의로 된 차명 계좌 100개를 추적했고 이 과정에서 김 씨가 1000억 원 상당의 CD를 매입했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지난 2004년 9월 사기 혐의로 구속돼 현재 복역 중인 호남권 유명 조폭 두목인 K 씨가 김 회장과 정치인들을 연결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했다고 언급하며 “검찰이 김 회장의 비자금을 K 씨가 세탁해 정치권에 전달한 사실까지 파악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현재 수사 중인 상황이어서 말할 수 없다”며 확인을 피한 바 있다.
이 관계자는 “여권에서 C, Y, J 의원과 특히 Q 전 의원이 김 회장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안다”며 구체적인 이름을 거론하기까지 했다.
현재까지 검찰은 공식적으로 김 전 의원이 김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만을 확인한 상황. 그러나 5·31 지방선거 등 전·현직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어렵게 만들던 걸림돌이 사라진 만큼 김 전 의원에 이은 ‘후속타’가 터져나오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게 검찰 주변의 전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김 전 의원의 구속으로 이번 수사가 마무리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적지 않다. 실제 검찰 사정을 잘 아는 일부 관계자 및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는 “검찰이 김 전 의원 외에 리스트에 올라 있는 정치인들의 계좌 추적에서 별다른 혐의점을 못찾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김 전 의원의 혐의 외에는 더 큰 뉴스가 없다는 게 최근 검찰 내의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출입 기자들도 김 회장 건과 관련해서는 특별히 ‘법조일지’를 쓰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한편으로는 현직 의원 수사에 따른 정치적 파장에 부담을 느낀 검찰이 정치권을 떠난 전직 의원을 구속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지으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공교롭게도 앞서 김 회장과 ‘각별한 관계’인 것으로 거론된 정가 인사 5명 가운데 김 전 의원을 제외한 네 명은 여권 인사들. Q 전 의원은 현직은 아니지만 현 정권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원로급으로 알려져 있다.
과연 김현재 파문이 정치권을 휘감는 게이트로 번질지 아니면 단순 사기 사건으로 종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