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최근 국내 굴지의 A 그룹 계열사 H 사장이 벼락을 맞고도 살아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한 달 전 골프장에서 라운딩 도중 벼락을 맞고 인근 병원으로 급히 후송됐다. 하지만 큰 후유증 없이 다음날 퇴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기상천외한 황당 사건은 ‘입단속’으로 인해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온 것으로 알려졌다. A 사 역시 “그런 일은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미 재계 주변에선 공공연한 사실로 퍼져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H 사장이 그동안 장학사업과 지역 봉사 활동에 특히 남다른 선행을 보여 온 점을 들어 ‘하늘의 도우심’을 받은 ‘행운의 사나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건은 지난달 10일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한 골프장에서 발생했다. 이날 서울 경기 지역에는 아침부터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먹구름이 짙게 깔려있었고 결국 오후 들어서는 낙뢰를 동반한 집중호우가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기상청에 확인한 결과 이날 서울 경기 지역에 내린 강수량은 대략 40㎜ 정도로 알려졌는데, 특히 오후 3시경부터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빗줄기가 제법 거셌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확실히 라운딩을 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날씨였던 셈이다.
그러나 ‘골프광들에게 날씨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클럽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열혈 골프 마니아 중에는 악천후에도 경기를 멈추지 않는 ‘용감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는 것.
경기도에 위치한 한 클럽의 관계자는 “클럽 측의 극구 만류에도 불구하고 ‘설마 내가?’ 하는 마음에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설마 골프 치다가 벼락 맞아 죽기야 하겠나’라며 고집을 굽히지 않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고 귀띔했다. 경기도의 또 다른 골프장에서 근무하는 한 캐디 역시 “골프 마니아 중에는 ‘목숨 걸고’ 치는 분들이 있다. 이 분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플레이를 멈추는 일이 없다. ‘라운딩을 잠시 중단하셔야겠다’고 해도 들은 척도 안한다. 낙뢰사고가 나면 1차적 책임을 져야하는 클럽입장에서는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우리나라에서 한해 발생하는 골프장 낙뢰사고는 평균 3~4건 정도로 최근 들어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집중호우가 예상되고 기상변화가 심한 6~9월 사이에 발생하는 빈도가 높다는 것. 실제로 지난해 지방의 한 골프장에서는 골프를 즐기던 40대 남자가 벼락을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 2000년 전북의 M 골프장에서는 부부동반으로 라운딩을 즐기던 한 대학교수가 역시 벼락으로 비명횡사했다. 또 1993년에는 전직 장관 부인이 골프를 치던 중 벼락을 맞고 실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숨진 일도 있었다.
H 사장 역시 주말인 이날 기상이 좋지 않았음에도 예정된 약속을 깰 수가 없어 그냥 골프를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H 사장은 이날 오후 3시 40분경 갑자기 떨어진 벼락을 맞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고 한다. 우산을 쓰고 다음 홀로 이동하던 중 갑작스럽게 발생해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는 것.
벼락을 맞고 기절한 H 사장은 긴급 출동한 119 구급대의 도움을 받아 이내 의식을 회복했다. 그는 곧장 A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장내과 중환자실에 입원한 H 사장은 병원에 도착할 당시만 해도 하반신 마비 증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천만다행으로 이내 정상적으로 감각이 돌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벼락에 직접 맞지 않고 낙뢰가 떨어진 옆자리에서 간접적인 전기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부정맥이 우려되니 좀 더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겠다는 의료진의 진단이 있었으나 H 사장은 ‘행운의 사나이’답게 별 탈 없이 식사를 하는 등 유독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는 것. H 사장은 이렇다 할 후유증도 없이 이튿날인 11일 퇴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벼락을 맞고 살아날 확률이 극도로 희박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H 사장의 기적 같은 빠른 회복은 당시 A 병원 안에서도 화제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A 병원의 한 관계자는 “워낙 희귀한 경우여서 그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정확히 잘 알고 있다”고 확인했다. 그는 “지난달 10일 낙뢰를 맞아 응급실에 급히 한 환자가 실려온 적이 있다”며 “하지만 환자 신상에 관해서는 병원 규칙상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는 당사자인 H 사장 측은 물론 골프장 측에서도 사실 확인을 거부하거나 또는 사건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A 사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그런 소문을 들은 바 있지만, 우리 H 사장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그는 “현재 지방에서 상주 근무 중인 H 사장이 굳이 경기도에 있는 골프장까지 올라올 리도 없을 뿐더러 본인 역시 최근 그 골프장에 간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사고가 발생했던 골프장 측에서도 “우리 골프장에서 그런 사고가 일어났다는 얘기를 들은 바 없다. 더 이상 말할 수 없다”며 자세한 답변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개요를 <일요신문>에 자세히 제보한 한 관계자와 A 병원 측의 확인에 따르면 날짜와 시간 등의 여러 정황이 모두 일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을 이끄는 경영자의 입장이나 그룹 차원에서도 골프를 치다가 벼락을 맞았다는 사실은 결코 알리고 싶은 일은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어쨌든 벼락을 맞고도 끄떡없이 일어선 한 경영자의 ‘행운’은 두고두고 재계의 화제로 오르내리게 됐다.
이수향 기자 ls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