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특히 이 업체 대표들이 코스닥에 진출하기 위해 지분을 인수한 회사에 노무현 대통령의 조카가 재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은 정·관계로까지 확산됐다. 이를 계기로 대통령 측근 및 정가 유력인사들이 성인오락사업에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급물살을 탔고, 도박산업의 이권을 챙긴 ‘숨은 손’의 실체를 쫓는 언론의 취재가 본격화됐다.
성인오락실 개설, 상품권 발행업체 지정 및 게임기 인·허가 과정과 관련한 석연치 않은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또 상품권 이권 개입설, 성인오락업체들의 비자금 조성 및 조폭 유착 의혹도 끊이질 않고 있다.
노 대통령과 여당이 전국을 점령하다시피한 사행성 성인오락실에 대해 “현 정부의 정책적 오류”라고 시인할 만큼 후유증도 심각해 정국은 그야말로 폭풍전야와 같은 분위기다. 이처럼 성인오락실이 무수한 폐단을 낳으며 현 정부의 발목을 잡는 뇌관으로 발전한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이른바 ‘도박게이트’를 둘러싼 의혹과 문제점을 다시 한번 짚어봤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성인오락실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된 시발점을 지난 2002년으로 보고 있다.
그 해 2월 문화관광부가 ‘게임제공업소 경품취급기준’이라는 고시를 통해 오락실 내에서 상품권 등의 통용을 합법화하고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스크린경마 같은 사행성 오락기를 허가한 것이 되레 큰 악재를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조치가 도박 인구의 급증을 초래하고 오락업소 및 관련 사업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는 것이다.
상당수 오락실 업주들은 사용 빈도가 한정된 문화상품권보다는 현금을 선호하는 손님들의 심리를 이용, 편법을 동원했다. 오락실 손님들에게 상품권 금액의 10%를 할인한 뒤 현금으로 돌려주는 환전상이 업소 주변에 생겨난 것. 대부분의 손님들이 이 돈을 가지고 다시 오락실로 돌아와 게임을 계속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른바 ‘깡비’(상품권을 10% 할인한 금액·5000원짜리 상품권의 경우 500원)는 ‘푼돈’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지만 환전상으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힘 안 들이고 챙길 수 있는 ‘노다지’나 다름없었다. 오락실 업주들이 이를 간과했을 리 만무. 대부분의 업주들은 자신과 연관된 제3의 인물을 환전상으로 내세워 막대한 ‘깡비’를 챙겼다. 게임 수입과 상품권 수수료라는 이중 수익 구조를 갖추게 된 것이다.
‘상품권’이란 매개체를 통해 오락실에서 사실상의 현금 환전이 가능해지면서 게임장을 찾는 손님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상품권 효과’의 부작용도 차츰 커지기 시작했다. 유령 가맹점만 가입돼 있어 실제론 일부 성인오락실에서만 유통이 가능한 이른바 ‘딱지 상품권’들이 횡행해 시장을 교란시켰다.
이런 와중에 2004년 12월 7일 훗날 아케이드 게임의 대명사로 자리잡는 ‘바다이야기’가 영등위의 첫 심의를 통과했다. 또 같은 달 31일 문광부는 2002년의 경품고시를 개정해 ‘상품권 인증제’를 도입하면서 ‘민간기구’인 한국게임산업개발원에 상품권 발행업체 지정권을 넘겨줬다. 이전까지만 해도 활동이 미미했던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은 이를 계기로 막대한 이권을 다루는 기관으로 부상하면서 거대한 로비의 폭풍에 휘말리고 만다.
상품권 발행 업체의 선정을 맡은 게임산업개발원과 문광부에는 인증을 받으려는 상품권 업계의 치열한 로비와 정치권의 압력이 집중됐다. 2005년 3월 마침내 22개 상품권이 인증을 받게 된다. 그러나 불과 3개월 만에 이들 상품권들의 인증은 모두 취소됐다. 선정 업체들 가운데 상당수가 허위 자료를 제시하거나 담당자들이 봐주기 심사를 해 잡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오락가락 행정의 전형을 보여주듯 이후 문광부는 ‘상품권 인증제’를 ‘상품권 지정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하고 같은 해 8월 게임산업개발원은 9개 회사를 경품용 상품권 발행사로 지정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과 문광부, 게임산업개발원 등에 엄청난 ‘로비 세례’가 쏟아졌음은 물론.
한편 이 즈음 신종 게임기인 ‘바다이야기’가 시중에 등장함으로써 성인오락게임시장은 일대 변화를 맞게 된다. 당첨 가능성을 미리 알려주는 ‘예시 기능’과 최대 250만 원까지 상품권을 연속해서 배출하는 이른바 ‘연타 기능’으로 중무장한 바다이야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대표적인 성인오락게임으로 자리잡게 된다. 곧이어 등장한 ‘황금성’ 게임기 역시 이른바 ‘이벤트 기능’과 고액 당첨금을 내세워 인기몰이에 가세를 했다.
최근 검찰이 밝힌 바다이야기의 제작 및 판매 업체인 ‘에이원비즈’와 ‘지코프라임’의 최근 1년여간 누적 수익은 무려 900억 원에 이른다. 초기 자본금이 5000만 원으로 알려진 에이원비즈의 이 같은 ‘성공신화’는 얼마나 거대한 ‘도박광풍’이 우리 사회를 휩쓸고 지나갔는지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인오락업계에서는 최근 1년 6개월 사이에 관련 시장의 규모가 80배 가까이 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5년 3월 상품권 인증제를 도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4000억 원대에 머물던 경품용 상품권 시장이 불과 1년여 만에 30조 원대의 ‘괴물’로 자라났기 때문이다.
이같이 상품권 시장이 급팽창한 이유에 대해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 김민석 회장은 “2004년 12월 문광부가 고시를 통해 ‘경품제공방법’ 조항에 상품권 강제배출 항목을 넣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게임을 하다가 2만 원에 해당하는 점수가 되면 자동적으로 상품권 4장이 배출되도록 해놨기 때문에 상품권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게임을 하면서 당첨된 점수로 게임을 계속하도록 하면 경품용 상품권 유통량을 크게 줄일 수도 있었는데 관계 당국이 이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상품권 유통량이 크게 늘어난 또 다른 이유는 게임기의 사행성에서 찾을 수 있다. 게임기제조업체는 게임에 연타기능을 첨가해 최고 당첨금액을 불법적으로 100배 이상 높여놓음으로써 ‘100원으로 200만~30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환상을 더욱 부추겼다. 이에 이용객들은 몇날 며칠을 게임기에 매달리거나 한꺼번에 대여섯 대의 게임기를 돌리는 무모함을 저지르곤 했다.
그 결과 이용객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피폐한 심신과 구멍난 재정. 더 큰 문제는 사행성 게임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 바로 서민들이고 이 같은 현상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수많은 가정과 우리 사회의 도덕률이 붕괴됐다는 점이다.
‘왜 사행성 높은 게임기를 심의에서 통과시켰느냐’는 물음 앞에서 문광부와 영등위는 ‘책임공방전’을 벌이기에 바쁘고, ‘왜 이 지경이 되도록 사행성 오락실들을 방치했느냐’는 질문 에 검찰과 경찰은 ‘뒷북 단속과 수사’로 대답을 대신하고 있다.
사실 현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지난 2003년 5월부터 성인오락실 문제에 대한 비판과 우려는 계속 이어져왔다. 일부 신문과 방송은 성인오락실 안팎에서 이뤄지는 현금 환전 실태 등을 여러 차례 고발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에는 시민단체 ‘흥사단’이 감사원에 성인오락실과 경품용 상품권에 대한 국민 감사를 청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거대한 이권으로 둘러싸인 성인게임시장의 벽 앞에서 언론과 시민의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로 그치고 말았다.
지난 1년여간 30조 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돈이 상품권 발행업체와 상품권 총판과 대리점, 그리고 성인오락업소 사이에서 돌고 돌았다. 이제 국민들의 관심은 누가 왜 사행성 오락시장을 이처럼 키우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이들이 얼마나 이득을 취했는가 하는 데 모아지고 있다.
현재까지 제기되는 의혹은 크게 여섯 가지. 그중에서도 그간 막대한 수익을 남긴 게임기 제조업체와 판매업체, 그리고 상품권 발행업체와 대리점, 대형 성인게임업소 등에 권력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이 핵심 쟁점이다.
이와 관련, 정·관가에서는 여권 인사 6명을 포함해 7~8명 정도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L 의원은 특정 상품권 업체 사장과 술자리를 같이 하는 등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J 의원은 상품권 사업에 개입한 운동권 386 인사와 매우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력 게임 제작업체와 판매업체들의 거대한 수익이 과연 어디로 흘러들어갔는가도 의문을 사는 부분. 특히 바다이야기의 제작업체인 ‘에이원비즈’의 누적 순이익 900억 원 가운데 400억 원의 용처가 아직 드러나지 않아 정치권 로비 가능성과 제3의 전주가 존재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상품권 발행업체 선정 과정을 둘러싼 의혹도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유력 인사와 친분이 있는 거물 브로커가 상당수 업체로부터 수십억대의 로비자금을 받아 암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영등위의 성인오락게임물 심의 과정에서 외압과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도 사실 여부에 따라 큰 소용돌이를 일으킬 만한 사안.
지난해 12월 경품용 상품권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보류된 배경 또한 의문으로 남아 있다. 상품권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난해 5월 흥사단은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 이에 그해 10월 감사가 결정됐지만 어떤 연유인지 두 달 뒤 감사 보류 결정이 내려졌다.
수사기관도 의혹을 비켜갈 수 없는 상황. 검찰은 복마전으로 변해 이미 투서와 비리 의혹으로 얼룩졌던 상품권 업계를 그간 ‘방관’한 배경이 의문으로 남아 있다. 경찰의 경우 일부 비리 경찰관들이 성인게임업소와 유착해 단속 정보를 사전에 흘리거나 비호해왔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업계에서는 전직 경찰 간부들이 성인오락실에 지분을 투자했다거나 경찰과 오락실 업주를 연결시켜주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이미 지난 2003년 11월에도 부산에서 오락실 단속 관련 부서에 근무했던 경찰 10여 명이 성인오락실에 관여하거나 직접 오락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