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과 성혜림의 아들 김정남. 위 왼쪽부터 성혜랑 이남옥 이한영의 지난 81년 모습. 사진제공=여성중앙 | ||
지난 50년 동안 자신과 가족 내력을 숨기며 숨죽여 지내야 했던 성일기 씨는 졸지에 ‘김정일의 처남’으로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부모 여동생 등 가족들과 떨어져 성 씨 혼자만 남한에 남게 된 이유도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성 씨가 애써 침묵으로 일관하던 지난 10년간의 세월을 깨고 최근 자신의 자전적 소설을 통해 다시 세상에 등장,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초 출간된 <북위 38도선>(교학사)은 좌익 활동을 한 부모의 영향으로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간부를 지냈던 성 씨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그리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시선의 끝은 혜랑·혜림 씨 자매를 통해 북한 내 로열패밀리로 옮겨지고 있다.
이 책을 쓴 정원석 씨(74·의학박사·아동작가)는 성일기 씨의 50년 지기. 그는 지난 5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이 책이 출간된 배경과 성 씨의 그간 생활 그리고 유럽 어느 국가에서 홀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성혜랑 씨의 근황 등을 아는 그대로 전했다.
‘주인공’ 성 씨는 현재 건강이 무척 악화된 상태여서 정상적인 대화조차도 불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본인은 여전히 국내 언론과의 접촉을 원치 않고 있다는 것이 정 씨의 전언이다. 그래서 책에도 성 씨의 직접적인 소개는 물론 사진도 일체 실리지 않았다. 그는 현재 서울 은평구 자택에서 칩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는 “대표적 빨치산 출신인 성 씨와 그 가족의 삶은 민족분단의 아픔을 상징한다. 한국전쟁 당시의 국내 빨치산 행태와 관련된 중요한 자료를 발굴, 소개한 것도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역시 책에 대한 세인의 관심은 여전히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 씨와 언니 성혜랑 씨 자매에만 쏠리는 것 같다”고 밝혔다.
어쩔 수 없이 기자의 눈에도 이 책의 끝자락에 등장하는 성 씨의 두 여동생 가족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관련된 내용이 먼저 들어왔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성 씨가 자신의 조카인 이한영 씨의 82년 귀순을 사실상 안기부에 의한 납치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이한영 | ||
96년 ‘성혜랑 씨 자매 서방 탈출 계획’이 보도된 이후 언론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이 씨는 이를 기회로 TV 출연과 언론 인터뷰 등에 수시로 스스로를 노출시켰다. 급기야 그는 북한 권력 내부의 모습을 민감하게 파헤치는 책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 잠행 14년>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머무는 궁전 내부를 적나라하게 노출시켰고 결국 그의 죽음까지도 몰고왔다.
사실 이 씨가 사실상 납치돼 국내에 들어왔다는 의혹은 예전에도 몇 차례 제기된 바 있다. 언론계 출신의 한 인사는 “이 씨가 (총격) 사고를 당하기 전 자신의 수기 등을 신문 잡지 등에 연재하기 위해 언론사를 찾아와서 ‘나는 자진 귀순한 것이 아니라 안기부에 의해 불법으로 납치돼 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소설가 황석영 씨 또한 지난 2002년 2월 한 행사장에서 “방북 혐의로 구속수감 중이던 93년 여름 서울구치소에서 당시 사기 혐의로 구속돼 있던 이한영 씨를 우연히 만났는데 이 씨로부터 ‘강제로 납치돼 한국으로 오게 됐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다”고 밝혔다.
이 책에도 이 씨에 대한 내용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자유국가로부터 멀쩡한 사람을 보쌈으로 납치해 놓고 이제 와서 (한국 정부가) 나 몰라라 하다니 너무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92년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조카 이한영을 만났다. 그러나 서울에서 10년이나 살았다는데 그동안 왜 연락 한 번 없었는지 궁금했지만 조카는 긴 말을 하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당국의 비밀공작이 개입돼 있음이 감지되었으나 깊이 묻지 않았다. (중략) 더 못마땅한 것은 그를 잡아온 정보부가 외삼촌의 생존에 대해서 그에게 함구했다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정 씨에 따르면 친구인 성 씨는 늘 안기부의 감시를 불편해 했다고 한다. 가끔 술에 취하면 “제발 날 좀 쫓아다니지 말라”고 누군가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는 것. 북한 최고 권력자의 처남 격인 그의 존재는 국내 정보기관으로서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존재였던 셈이다. 성 씨는 안기부의 감시를 받는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보호를 받는 이중적 신세였다고 한다.
성 씨는 안기부가 조카 이 씨를 데리고온 이후 자신의 존재를 10년 동안이나 감춘 것에 대해서도 대단히 불쾌해 했다는 후문이다. 정 씨는 “성 씨는 너무나 뜻밖에 조카를 국내에서 만났지만 다소 못마땅해 했다. 어딘지 모르게 경박해 보이고 언행이 가볍고 허영심이 가득 찼다고 혀를 찼다”고 전했다.
▲ 영화배우로 큰 인기를 얻은 성혜림은 김정일 위원장의 눈에 띄어 이혼 후 김 위원장과 동거했다. | ||
이보다 앞서 이한영 씨는 그해 10월 서울에서 국제전화로 모스크바에 있는 모친 성혜랑 씨와 실로 13년 만에 극적인 ‘전화 상봉’을 했다. 이날 통화에서 성혜랑 씨는 아들에게 자신도 서방세계로 탈출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당시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이 씨는 이 전화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를 한 신문사에 넘기고 300만 원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성 씨는 모스크바에서 혜랑 씨를 만나 “시간이 없다. 한국 신문사가 먼저 녹음테이프를 공개하면 큰일이다. 서둘러야 한다”고 다그쳤다고 한다. 결국 성혜랑 씨는 96년 2월 모스크바를 탈출했다. 그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가 있는 한국으로 들어오고자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정보기관에서도 그 같은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 중간 역할을 성 씨가 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97년 2월 이 씨가 성남시 분당의 한 아파트 앞에서 피살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성혜랑 씨의 국내 귀국 플랜은 한순간에 없던 일이 됐다. 성 씨 또한 남매 상봉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의 충격 이후 한국으로의 귀순은 포기했지만 보지도 못한 며느리와 손자가 있다는 사실에 성혜랑 씨는 한국 방문을 원했다고 한다. 정 씨는 “잠깐만 다녀가고 싶다는 뜻을 오빠 성 씨에게 전한 것으로 아는데 어쩐 일인지 정부가 이를 승낙하지 않아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정부가 지난 DJ 정권인지 현 정권인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정 씨에 따르면 유럽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성혜랑 씨의 동향은 현재도 국정원이 계속 체크하며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친혈육인 성일기 씨는 동생 혜랑 씨의 연락처도 주소도 알지 못한다고 한다. 다만 여동생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걸어오면 이를 통해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는 것.
얼마 전에는 성혜랑 씨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전집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를 구하기 위해 성 씨와 정 씨는 국내 서점을 돌아다녔으나 찾아내지 못해 정 씨가 집에 소장하고 있던 전집을 모아서 얼마 전 보내줬다고 한다. 물론 이 책의 전달도 국정원이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는 “아마도 혜랑 씨는 자신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박경리의 <토지>에 필적할 만한 대하소설을 준비하는 것 같다”며 “파란만장한 성 씨 일가의 일생을 소설로 쓴다면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