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기자는 서울 구의동 자택에 머물고 있는 추 의원과 전화통화를 했다. 하지만 그는 “언론과는 ‘당분간’ 인터뷰할 생각이 없다. 가만히 있을 생각이다”면서 인터뷰 요청을 극구 사양하며 상당히 말을 아꼈다. ‘’당분간’이 언제까지를 얘기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나도 모르겠다”라고만 짧게 답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겠다는 게 추 의원의 생각인 듯했다.
그럼에도 민주당 지도부의 그에 대한 러브콜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당 관계자들은 ‘추 의원의 부활’을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현재는 지친 심신을 달래고 있지만 머지않아 정치 일선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 다만 언제쯤 예전의 ‘추다르크’로 컴백할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추 의원은 총선 이후 언론에만 모습을 비치지 않았을 뿐 그동안 구의동 자택과 자신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오가며 ‘조용히’ 짐 정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일에도 아침 일찍 의원회관 사무실에 나가 밤늦게까지 자신의 개인 책장 등을 정리했다고 측근은 전했다. 추 의원은 자신의 손때가 묻은 책들뿐만 아니라 8년 동안 의정활동을 하면서 축적된 정책자료집과 국감 질의서까지 꼼꼼히 챙겼다는 것.
그의 한 측근은 “(추 의원은) 보좌진에게 사무실 정리를 맡기지 않고 손수 자료를 분류하고 정리했다”며 “나중에 의정자료집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자료 하나 하나를 소홀히 다루지 않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비록 지금은 정치일선에서 한 발 물러났지만 언젠가는 권토중래하겠다는 의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면 언제쯤 추 의원은 정치 활동을 재기할 것인가. 최근까지 민주당 안팎에서는 6·5 재·보궐선거에서 추 의원이 제주도지사 후보로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가 제주 4·3항쟁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에 적극 앞장섰다는 점도 이런 ‘설’을 부추겼다. 지난 4월 광주의 ‘3보1배’에 앞서 4·3항쟁 기념식에 참석했을 만큼 추 의원의 제주도에 대한 애정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제주도지사 출마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만 난 꼴이 됐다. 그는 단 한번도 재보선에 출마하겠다고 언급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행 선거법도 ‘60일 이상 해당 지역에 주민등록이 돼 있어야만 피선거권이 있다’고 규정돼 있다. 만일 추 의원이 제주도지사에 출마하려면 적어도 지난 4월6일 이전에 주소지를 제주도로 옮겼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그는 현재의 구의동 자택으로 주소지가 등록돼 있었다.
그렇다면 뜬금없이 제주도지사 출마설이 나온 까닭은 뭘까. 이는 민주당 일부 지도부가 추 의원의 부활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일으킨 ‘자가발전’으로 해석된다. 9석의 소수 야당인 민주당으로선 아직도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추 의원이 당 재기를 위해 리더로 나서주길 바라는 눈치가 역력하다. 최근 한 리서치 전문기관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4·15 총선에서 낙선한 정치인 중 아쉬운 인물’로 김홍신 전 의원(26.9%)과 추 의원(26.3%)이 꼽히기도 했다.
추 의원의 유재섭 보좌관은 “의원님이 정치를 재개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재·보선 출마는 법적으로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출마할 명분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8일 전화 통화에서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나설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단호한 목소리로 “그럴 생각이 없다”고 일축했다. 유 보좌관도 “당 대표 출마에 대해선 일절 얘기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추 의원은 6월 전당대회 때도 전면에 나설 뜻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추 의원에 대한 잇따른 ‘러브콜’은 아직까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셈이다.
그러면 과연 추 의원은 언제쯤 정치 행보에 나설 것인가. 이와 관련해 추 의원과 가까운 장성민 전 의원의 얘기를 들어보자.
“추 의원은 (집에서) 살림하고, 난 공부하면서 한 1년 동안은 조용히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서로 했다. 6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치르고 난 다음 (국회의원) 재선거가 예정된 올 10월까지는 조용히 지켜보자고 했다. 10월 재선거 출마가 여의치 않으면 내년 4월 (2차) 재보선까지 지켜볼 수도 있다. 서두르려고 하진 않는다.”
다시 말해 추 의원은 빠르면 올해 10월 재선거를 통해 정치 일선에 컴백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검찰과 법원 주변에서는 이번 총선 당선자들 가운데 최대 30명까지 ‘무더기로’ 당선 무효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추 의원의 정치 재개 시기는 어느 지역에서 재선거가 실시되느냐에 따라 앞당겨질 수도 있고, 뒤로 더 늦춰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뿌리가 깊은 수도권 지역에서 재선거가 여러 건 실시될 경우 10월을 전후해서 정치 일선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것. 그렇지 않다면 내년 4월 재선거 때까지 와신상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첫 해외 순방 일정(10∼19일)이 끝난 이후 추 의원이 정치활동에 나설 것으로 점치기도 한다. 추 의원은 기회 있을 때마다 “DJ의 햇볕정책을 계승하는 적자라는 자부심을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말해왔다. 항간에는 추 의원을 ‘DJ의 딸’이라고까지 부른다. DJ 역시 추 의원을 총애하고 있다. 총선 당시에도 DJ는 정치적 발언은 일체 삼가면서도 장남인 민주당 김홍일 의원에게 ‘3보1배’를 마친 추 의원의 안부를 물었다는 후문. 그럼에도 추 의원은 지난 1월1일 동교동의 신년하례식에 다녀온 후 DJ를 찾지 않았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아버지’인 DJ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총선 이후 추 의원은 ‘아직’ 동교동에 다녀오지 않았다는 게 측근의 전언. 그렇지만 추 의원이 어느 정도 심신을 추스리게 되면 DJ가 해외순방 일정을 끝내고 돌아온 다음 동교동을 찾지 않겠느냐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리고 동교동 방문을 계기로 다시 정치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판사 출신인 추 의원이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유 보좌관은 “변호사 개업은 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도 “비록 이번 총선에서 참패했지만 아직도 차기 지도자 후보로 거론되는 추 의원이 벌써부터 변호사 개업을 통해 정치권과 멀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