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는 새로운 예능 <에코빌리지>(위)를 <일요일이 좋다>의 바로 앞 시간대에 방송한다. 아래는 <일요일이 좋다>의 ‘룸메이트’ 포스터.
이달 초만 해도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1박2일’로 구성된 KBS 2TV <해피 선데이>와 ‘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의 MBC <일밤>은 각각 4시10분에 시작했고, ‘런닝맨’과 ‘룸메이트’가 방송되는 SBS <일요일이 좋다>는 4시5분에 출발선을 끊었다. 각 방송은 3시간 넘게 방송되기 때문에 결국 시청자들은 일요일 오후 시간대에 10시간 가까이 지상파 3사가 동시에 노출하는 예능만 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시청률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자 지상파 3사는 24일부터 방송 시작 시간을 오후 4시 50분으로 못 박았다. 종료시점은 기존과 동일하게 오후 7시 55분이다. 이렇듯 마무리될 것 같던 논쟁은 SBS가 방송인 김병만을 내세운 <에코빌리지-즐거운 家>를 <일요일이 좋다> 직전인 오후 4시에 편성하면서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일요일이 좋다>에 포함되는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 이에 대해 MBC 관계자는 “SBS가 3사 합의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합의 직후 이 같은 편성을 결정한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필요에 따라 KBS와 MBC가 또 다시 SBS의 편성 전략에 맞불을 놓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상파 3사의 편성 전쟁은 예능 이전 드라마에서 이미 크게 벌어진 적이 있다. 시청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적게는 2~3분에서 많게는 5분가량 방송 시간대를 늘리는 방송사들의 편법이 판을 쳤기 때문이다.
과당 경쟁이 계속되자 지상파 3사는 2008년 동시간대 드라마를 편성하며 방송 시간대를 72분으로 맞추는 ‘72분룰’을 만들었다. 문제는 이런 규칙에 어떤 강제성도 없다는 것이다. 때에 따라 고무줄처럼 편성을 늘리고 줄이는 꼼수가 이어졌고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방송사들은 서로를 성토하며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자 지상파 3사는 지난해 10월에도 드라마 방영 시간을 기존 72분에서 67분으로 5분씩 줄이기로 합의했다.
방송 시간을 줄이는 건 장기적으로 볼 때 방송 환경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시청자들이 볼 때는 5분 차이에 불과하지만 5분의 방송 분량을 만들어내기 위해 작가는 회당 집필 분량을 늘려야 하고 편집해 잘라 나가는 부분을 고려하면 PD는 10분 가까이 더 찍어야 한다. 또한 이를 준비하는 현장 스태프는 몇 시간 이상 고생한다. 결국 이는 콘텐츠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방송국 관계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결국 편성을 통한 꼼수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시청률 지상주의’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방송사는 매일 아침 6~7시가 되면 전날 시청률 표를 받아 든다. 이제는 지상파 3사 외에 종합편성채널(종편)과 케이블채널 시청률 표까지 나온다. 1% 미만이었던 종편과 케이블채널 시청률은 어느덧 인기 프로그램의 경우 5%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는 지상파에 큰 위기감을 준다. 지상파는 시청률을 조사하는 모집단이 다르다는 이유로 종편 및 케이블과 직접적인 비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지만 언론 매체는 시청률을 기준으로 방송 프로그램의 줄을 세운다.
MBC <일밤>의 ‘진짜 사나이’ 방송 캡처.
또한 시청률과 방송 순위는 광고 판매와 직결된다. 시청률이 높을수록 해당 프로그램의 전후에 붙일 수 있는 광고는 잘 팔려 나간다. 상황이 이러하니 방송사는 조금이라도 더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런 방법 중 하나가 편성시간대를 조정하는 것이다.
지상파 3사가 시청률 사수에 더 목을 매는 이유 중 하나는 시청률 파이가 작아졌기 때문이다. 일요 3사 예능의 시청률 총합은 30%에 불과하다. 주중 미니시리즈도 마찬가지다. 11~12%면 1위를 차지하고 총합 역시 30% 안팎이다. 이는 과거 인기 있는 프로그램 한 편의 시청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20일 방송된 수목 미니시리즈의 경우 KBS 2TV <조선총잡이>가 11.1%로 정상을 밟았고, 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와 SBS <괜찮아 사랑이야>가 각각 10.6%와 9.7%로 그 뒤를 이었다. 세 프로그램의 시청률 차는 불과 1.4%다. 단 하루 만에 순위가 뒤바뀔 수 있는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송사들은 소수점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 방송 시간대를 늘리고 1~2분이라도 더 노출되려 눈치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일요 예능 전쟁도 합의 시점을 보면 시청률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편성 전쟁이 한창이던 4월 초를 보면 세 프로그램의 시청률 차이가 불과 0.9%차인 적이 있었다. 일요 예능은 지상파 3사의 간판프로그램인 만큼 물러설 수 없는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 지상파 3사는 편성 전략을 뽑아든 셈이다.
하지만 17일 방송 분량을 보면 <해피선데이>가 13.5%로 1위를 차지했고 <일밤>과 <일요일이 좋다>는 각각 11.5%와 7.2%를 기록했다. 1, 3위 차이가 무려 6.3%다. 이는 몇 분의 편성 전략을 통해 뛰어넘을 수 없는 차이다. 이런 상황에 도달하자 지상파 3사가 무의미한 싸움을 그만하자는 의미에서 합의를 도출했을 것이란 의견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게다가 SBS가 합의 직후 무리하게 <에코빌리지-즐거운 家>를 편성한 것 또한 동시간대 꼴찌인 SBS의 발버둥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 방송가 관계자는 “시청률 경쟁은 방송사들이 태생적으로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다만 콘텐츠를 통한 경쟁을 해야 하는데 편성으로 잔기술을 부르며 시청자들의 원성만 샀다”고 꼬집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