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창살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잡초가 수북한 마당에 버려진 플라스틱 통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검붉은 단층 벽돌집이 죽은 영감이 지난 세월 혼자 살던 집이었다. 음산해 보이는 빈집에는 귀기가 서려 있었다. 죽은 하 영감이 눈을 부라리면서 마당에 우뚝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 는 살인이 일어났던 거실로 가 보고 싶었다. 집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대문 기둥 뒤쪽으로 연결된 바라크 벽 부분이 갈라져 틈이 나 있는 게 보였다. 한 사람 정도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마치 동굴탐험이라도 하는 듯 입 벌린 구멍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찬 빗방울이 목 위로 떨어졌다. 섬뜩했다. 허리까지 무성한 개망초 뒤로 음산한 안채가 보였다. 그곳을 향해 몇 발자국을 걸었을 때였다.
“크르르르르….”
짐승의 소리였다. 온몸의 털이 솟는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컹 컹.”
이어서 주위를 쩡쩡 울리는 사나운 개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살기어린 붉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주인영감을 잃어버린 경비견이었다. 나는 그대로 뒷걸음질을 쳐서 밖으로 나왔다. 하 영감이 살해된 지 9개월이 넘고 있었다. 그런데 개가 살고 있었다. 영감이 살았을 때도 지난 20여 년간 아무도 찾아오지 않던 집이었다.
“아니 어떻게 개가 저 집에 아직 있을 수 있죠?”
내가 밖에서 나를 기다리던 장영목에게 말했다.
“글쎄요, 이 마을에서 죽은 영감 집에 들어가 개밥을 줄 사람은 하나도 없을 텐데요.”
장영목도 고개를 갸웃하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항상 현장에는 또 다른 힌트가 남아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대문 앞에서 10여m 거리에 초록색 페인트칠을 한 양철지붕집이 보였다. 그 옆으로 단층의 벽돌집이 있었다. 그 옆은 논이었다. 길 건너편으로 전형적인 시골집들이 산재해 있었다. 집을 끼고 뒤쪽으로 좁은 시멘트 농로가 보였다. 낮에 올 경우 목격될 가능성이 농후한 조건이었다. 집 뒤는 멀리 바라보이는 야산 기슭까지 죽은 하 영감의 드넓은 과수원이었다. 농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회색 구름이 낮게 내려와 있었다. 농로 양쪽으로 불그스레한 흙 위로 배나무들이 빽빽하게 심어져 있었다. 마치 검은 군대가 행군을 하는 것 같았다. 배를 덮은 신문지 봉지가 비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농로의 오른쪽 부분을 내 동생 영두가 빌려서 배농사를 지어 왔어요. 그런데 말이죠, 이 부분이 도로로 수용된다는 말이 있었죠. 그러자 하 영감님은 동생 영두에게 배나무 포기각서를 쓰게 했어요. 동생이 키우는 배나무 보상비를 가로채려고 한 거죠. 보상금을 영감님이 다 먹으려고 했던 거죠. 그런데 아직까지 도로가 나지 않고 있어요.”
장영목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주변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죽은 하 영감은 지난 세월 이 음산한 산기슭의 무덤 같은 집에서 스스로를 유폐시키고 살아왔다.
“도를 닦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장소의 집에서 혼자 20여 년간을 살 수 있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독백같이 중얼거렸다. 난파되어 무인도에 가더라도 밝은 태양과 파도, 푸르른 하늘이 있었다. 그러나 죽은 영감이 살던 계곡에는 붉은 흙과 회색빛 안개만 흐르고 있었다. 함께 걷던 장영목이 이런 말을 했다.
“한번은 제가 가을에 동생 영두를 만나러 아내와 함께 여기에 온 적이 있어요. 땅바닥에 은행이 떨어져 있길래 무심코 몇 개를 주웠죠. 그때 하 영감이 언제 봤는지 눈을 부라리면서 왜 남의 땅에서 함부로 은행을 가져가느냐고 다가와서 소리치시는 거예요. 저와 제 처는 당황하고 무안해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어요. 그때 이 배 밭에서 일하던 제 동생 영두가 나를 보고 뛰어와서는 우리 형이라고 영감님에게 소개를 시켰죠. 땅에 떨어진 은행 몇 알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영감님을 보면서 영혼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은행 몇 알조차 아끼는 성질 때문에 가족도 이웃도 찾지 않게 된 고독한 노인이었다. 그가 세상을 버린 게 아니라 세상이 그를 내동댕이쳤는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포크레인으로 파헤친 것 같은 웅덩이가 보였다. 과수원 끝은 경사가 완만한 야산 자락이었다. 살인범들이 시체를 유기하기가 적당한 장소였다. 시신을 훼손해서 여기저기 파묻어 버리면 그걸 찾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 같았다. 더구나 영감은 혼자 사는 사람이었다.
몇날 며칠을 시신을 찾았던 일이 떠올랐다. 몇 년 전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경기도 이천의 사이비종교단체의 집단거주지역을 포크레인으로 샅샅이 파헤친 적이 있었다. 교주가 처녀 신도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걸 찾으려고 했다. 암매장한 장소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의 안내를 받아 바로 그 자리를 팠는데도 뼛조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땅도 속에서 스스로 움직인다고 했다. 근처에 도로가 생기면서 여러 변화도 있었다. 범인인 장영두나 랭가가 시신을 매장만 했으면 거의 완전범죄가 됐을지도 몰랐다. 그들은 시신을 거실 바닥에 두고 그대로 도망을 갔었다.
아마추어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수사기록을 보면 밤에 시신을 차에 싣고 저수지로 가서 쇳덩어리를 달아 수장하려고 했다는 부분이 있었다. 뭔가 맞지 않았다. 현장에는 톱도 있고 칼도 있었다. 시신을 훼손해서 집 뒤에 파묻어 버리면 될 걸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었을까.
“여기서 도로를 따라 100m만 가면 영두가 살던 집이 나오는데 가보실렵니까?”
장영목이 생각 속에 빠져 있던 나에게 말했다.
“그러죠.”
“무슨 일로 오셨죠?”
여자는 경계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살폈다.
“전에 여기서 살던 장영두의 형 되는 사람입니다.”
장영목이 공손한 어조로 자기를 소개했다.
“아, 그러세요?”
여자의 얼굴은 그래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살인범의 형이라는 걸 알아챈 표정이었다. 그때 털털거리는 기계음이 들리면서 경운기를 몰고 한 남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기름을 바른 머리에 갈색의 뿔테안경을 쓰고 빨간 남방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가 영감의 시체를 최초로 발견한 김일식이란 남자 같았다. 그의 진술이 적힌 조서를 수사기록 속에서 읽었었다.
“누구십니까?”
그가 퉁명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얼굴에는 경계의 빛이 가득했다. 그도 용의선상에 오른 적이 있었다.
“예, 여기 살던 장영두의 변호사 됩니다.”
내가 말했다.
“난, 아는 거 하나도 없어요.”
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차갑게 내뱉었다. 아예 상대조차 하기 싫다는 얼굴이었다. 장영두는 그를 증인으로 꼭 세워달라고 부탁했었다. 방글라데시인 랭가는 하 영감을 죽이기 전에 세 번을 사전에 정찰을 하러 갔다고 했다. 그때 그 집에 들렀다. 장영두는 정찰을 간 게 아니라 배농사를 지으면서 살던 집에 일이 있어서 갔다고 했다. 그 결정적인 증인이 바로 최초 시체를 발견한 김일식 그 사람이었다. 옆에 서 있던 장영목이 끼어들어 사정했다.
“저는 장영두 형이 되는 장영목입니다. 한 번만 도와주십쇼.”
장영목의 눈이 충혈되면서 눈물이 맺혔다. 그제야 김일식의 표정이 약간 누그러졌다. 장영목이 계속했다.
“영두가 여기 찾아왔던 날 있었던 얘기만 해 주세요 영감님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영두가 방글라데시인을 데리고 여기에 찾아왔었다면서요?”
장영목은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을 살피는 것 같았다. 그 역시 동생의 진실을 알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래요,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하루라도 징역을 덜 살아야지. 영두형님이라고? 목사 맞죠? 내가 그것도 알아요.”
김일식의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였다.
“그렇습니다.”
장영목이 애원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숙였다. 김일식이 마음이 풀어졌는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이렇게 물었다.
“장영두한테 좋은 쪽으로 말해줄까요? 아니면 나쁜 쪽으로 말해줄까요?”
묘한 선택을 그는 내게 강요하고 있었다.
“진실만 얘기해 주시면 됩니다.”
내가 짧게 대답했다. 순간 그의 얼굴에 불쾌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면 얘기하지 않을게요. 그저 일상적인 얘기만 했다고 합시다.”
그의 어조에는 나를 못마땅해 하는 느낌이 역력했다. 심성이 비뚤어져 있는 것 같았다. 동시에 그는 장영두의 어떤 은밀한 비밀이라도 알고 있는 것 같은 태도였다. 허세 같았다. 장영두가 하 영감에 대해 했던 불평 한마디쯤을 과대평가하는 것 같았다. 살인사건에 관여하다 보면 엉터리 탐정들이 많이도 나타났다. 주변사람들이나 증인들이 그랬다. 가볍고 경솔한 인간들이었다. 물속에 빠져가는 사람의 머리를 누르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옆에서 팔짱을 끼고 듣고 있던 그의 처인 듯한 여자가 입을 열었다.
“별 게 아니고 그날 무슨 일이 있었냐면….”
그때 그가 눈을 부라리면서 소리쳤다.
“안으로 들어가 있지 못하겠어?”
여자는 몸을 움찔하더니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가 이렇게 내뱉었다.
“영감이 죽고 둘째아들이 찾아왔더만. 평소에는 나타나지 않던 사람이 마을 사람들을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더라고. 더 잔인한 사람이더구만. 난 배운 놈들이 정말 싫더라.”
그는 진저리치는 표정이었다. 그는 이제 둘째아들의 소작인이 된 셈이다. 잔인하다는 말이 가슴 깊숙이 와서 박혔다.
“집에 보니까 아직 개가 있던데 누가 키우는 거죠?”
가까이 사는 그밖에 개밥을 줄 사람이 없었다.
“나는 안 해요. 둘째아들이 자주 오던데 그 사람일 거요.”
난 둘째아들에게 관심이 갔다. 그가 아버지의 땅을 받게 됐다. (계속)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