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근 민주당을 중심으로 여권에서는 8·8재보선 이후 신당창당설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다. 노 후보측에서는 개혁중심의 신당을, ‘비노’측에서는 반창-비노 세력의 연합을 골자로 한 신당설이 그렇다. 정 의원이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그가 반창-비노 세력에 의해 대선후보로 옹립될 가능성 때문이다. 이한동 전 총리도 같은 차원에서 거론된다.
그러나 정작 정 의원 본인은 말을 극도로 아끼고 있다. 월드컵이 끝나면 자신의 입장을 본격적으로 밝히겠다던 그였다. 하지만 정 의원은 월드컵 이후 마무리 절차가 남아있다는 이유로 미국, 중국, 일본 등 해외를 자주 다닌다. 정치권 상황이 하루가 멀다하고 변하는 현 시점에서 ‘다크호스’ 정 의원은 지난 7월28일 또 다시 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 의원은 정말 올 대선에 출마할까. 그가 노리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정 의원은 월드컵 이전 언론을 통해 대권도전을 시사하는 발언을 수차례 했다. 지난 4월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이번 대선에 출마한다면 기존 시스템과 싸우는 것이 아닌 기존 시스템을 유지·보강하는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며 자신의 출마는 변수가 아닌 상수라는 뜻을 밝혔다. 이 때문에 당시 정치권에서는 정 의원이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대권도전을 공식화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정 의원은 월드컵이 끝난 지 한 달이 넘도록 구체적인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월드컵 이후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그는 “조만간 밝히겠다”는 말만 되풀이해왔다. 다만 9월 정기국회 전에 자신의 거취를 표명할 생각이라고 그는 밝혔다.
|
||
| ▲ 지난 6월29일 터키전 이후 선수들이 정 의원을 헹가래 치는 모습. | ||
정 의원의 최근 행보는 여전히 월드컵과 관련돼 있다. 지난 25일 그는 월드컵 조직위원장 자격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방문해 서청원, 한화갑 대표를 만났다. 또 월드컵 성공적 개최에 대한 화답 차원에서 각계 각층 인사들을 만나고 있다. 28일 미국으로 떠난 그는 8월 초까지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을 방문해 월드컵 때 보여준 교민들의 성원에 감사의 뜻을 전달할 예정이다.
물론 이 같은 정 의원의 행보가 출마를 위한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를 잘 아는 한 정치권 인사는 “재보선 이후 정치권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 선뜻 자신의 뜻을 밝힐 수 없지 않겠느냐”면서 “신당창당, 독자출마, 제 세력간 연대 등을 놓고 정 의원을 돕는 사람들이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즉 정치권 변동상황을 예의주시함과 동시에 월드컵 이미지를 계속 연상시켜 나감으로써 대선 때까지 인기를 유지한다는 전략이라는 것.
정치권도 정 의원이 정치세력간 연대보다는 신당창당을 통한 독자 출마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회창, 노무현 등 각당 후보측도 이 같은 가능성을 대비해 사전 전략마련에 고심중이다. 한나라당은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정 의원에 대한 일차 공격을 감행할 방침이다. 당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의 회계자료 분석 등을 통해 정 의원의 약점을 들춰 낼 것이라고 한다.
노 후보측도 정 의원에 대한 견제는 마찬가지다. 실제로 노 후보측의 사정은 심각할 정도다. 3자구도를 가정한 여론조사에서 영남에 지역구를 둔 정 의원이 이 후보보다 노 후보 표를 더 많이 잠식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그래서 노 후보측에서는 정 의원 출마를 막을 수 있는 나름대로의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 의원이 실제로 대선에 출마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정치권은 내다보고 있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정치력, 정치적 지지세력이 없다는 점, 1천7백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산에 대한 치밀한 검증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
||
물론 정 의원은 분명 대통령 후보로서 자질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 국제적 인지도, 3김 정치와는 다른 깨끗한 이미지, 동서를 포괄할 수 있는 포용력 등이 그렇다. 이 때문에 월드컵 이후 정 의원에 대한 언론보도는 출마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 의원이 비밀리에 대선준비팀을 가동중이라는 보도도 비슷한 시각에서 나왔다. 현대 계동사옥팀, 광화문사무실팀, 현대아산병원팀 등 TF팀도 여러 가지다. 실제로 자원봉사 차원에서 정 의원을 돕는 최고의 브레인들이 있다.
정 의원 형제들의 지원사격도 힘을 더해주고 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몽준이는 인물이나 경력으로 보아 빠질 사람은 아니다. 잘생겼고 제일 똑똑하며 미국 MIT대학원도 나왔다”며 그를 훌륭한 대통령감으로 치켜세웠다. 정 의원 스스로도 “우리 가족 반이 출마를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그러나 이 같은 정 의원측 움직임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선후보로 주가 높이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를 잘 아는 정치권의 한 중진의원은 자신의 가치를 높여 이를 정치적 카드로 활용할 것이라는 뜻에서 “정 의원은 정치와 경제의 역학관계를 잘 아는 분”이라고 우회적으로 말했다. 정치권의 또다른 한 인사는 “92년 한때 대선출마를 고려했다가 포기했던 김우중씨의 대우와 끝까지 출마했던 정주영씨의 현대가 YS정권 들어 어떻게 다른 대접을 받았는지 그는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의 출마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최근 출간된 대기자 출신 손광식씨의 〈한국의 이너서클〉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에는 92년 정주영 회장의 대선출마 비화가 기록돼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당시 정 회장과 YS는 선거 종반에 우열이 판명나는 사람에게 표를 몰아주기로 묵시적 합의를 했다고 한다.
정 회장이 이 같은 묵계를 한 이유는 ‘정주영식 사이버 게임’ 때문이었다는 것. 정 회장의 출마는 상당히 계산적이었다고 한다. 선거 때가 되면 재벌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돈을 뜯기게 돼 있는데 차라리 자신이 입후보를 하면 돈달라는 소리를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 또 선거 종반에 당선이 유력한 후보의 손을 들어 자신의 표를 몰아주면 차기 정권에서 현대그룹의 입지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그런데 정 회장이 YS와의 묵계를 깨고 대선에 끝까지 출마한 데는 당시 주한 미국대사 글라이스틴의 격려와 넥타이 선물 때문이었다고 한다. 글라이스틴 대사의 이 같은 행동에는 정 회장의 당선 가능성에 대해 미국측이 긍정적으로 본 데서 나온 것이었다. 정 회장도 자체적으로 확인해 본 결과 자신이 박빙의 리드를 하고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결국 대선게임을 앞두고 정보입력 과정에서 오류를 범해 정 회장은 화를 자초했다는 것. 대선에서 참패한 정 회장과 현대는 YS정권 이후 심한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DJ정권 들어 현대그룹은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금강산 관광 등 대북사업과 현대에 대한 정부의 지원 등이 그렇다. 이런 관계를 정 의원과 형제들은 너무나 잘 안다.
물론 정 의원측은 대선출마와 현대의 함수관계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4선 의원으로서 출마는 당연히 고려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출마를 결심할 경우 “선친의 이름이 오르내릴 것 같아 고민”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지난 6월 한 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가 정 의원의 출마와 현대중공업 주가에 대해 분석한 적이 있다. 이 애널리스트는 정 의원에 대해 “모든 것을 확인한 뒤 (대선 구도에) 들어가는 소심할 정도로 치밀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출마에 대한 입장표명에 대해 “정확하게 계산해 본 뒤 대답을 하겠다”고 정 의원 스스로가 밝힌 것처럼 곧 있을 정치권의 빅뱅 과정에 그의 대답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