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주 용주골의 성매매 업소 자료 사진. 손봉숙 의원은 사실상 정부가 용주골에서 임대사업을 한 셈이라고 폭로한 바 있다. | ||
<일요신문>이 국내 대표적 ‘성매매집결지’(집창촌)인 서울의 속칭 ‘청량리 588’ 골목 일대의 토지 소유 현황을 파악한 결과 놀랍게도 상당수 업소들이 정부 부처 소유의 국유지에서 수십년 동안 윤락 영업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법으로 엄격히 성매매를 금지해온 정부가 나라 땅 위에서 벌어지는 ‘집체적 성매매’에 대해서는 오랜 세월 동안 묵인 내지는 방조해온 꼴이다.
만약 정부 당국이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그간 뒷짐만 지고 있었다면 성매매특별법을 위반(성매매 알선 등 행위)한 셈이고, 이러한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명백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그 실상을 추적해봤다.
‘청량리 588’의 성매매업소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지역은 행정구역상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와 620번지, 624번지 일대 세 곳이다. 취재 결과 이들 번지 내에 위치한 국유지 및 시유지 등 공유지는 21필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들 공유지에서 윤락 영업을 하고 있거나 최근까지 해온 업소가 무려 14곳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토지 및 건축물관리 대장으로는 확인이 안 되는 가건물과 불법건축물, 측량 자체가 불가능한 ‘불보합지역’의 업소는 제외한 수. 현실적으로는 더 많은 업소가 공유지 위에서 영업을 해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량리 집창촌의 경우 한 지번에 여러 업소들이 불규칙하게 걸쳐 있는 구조로 돼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588-○○○ 한 지번에만도 무려 10곳의 성매매 업소가 들어서 있는데 이 땅은 부동산등기부상 재무부 소유로 되어 있는 곳이다. 또 4곳의 성매매 업소가 연달아 들어서 있는 624-△△번지는 건설교통부 소유로 되어 있다. 이곳들은 모두 엄연한 ‘나라땅’으로 지목상으로는 철도용지와 도로로 되어 있다. 하지만 성매매업소들이 무단으로 점거, 영업을 해오고 있다는 것이 해당 구청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로 이 지역 일대에 무허가 건물을 짓고 성매매를 해온 업소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토지대장상 지목이 도로인 곳에도 무허가 업소들이 들어서 무법천지를 방불케 했다. 심지어 국유지를 성매매 영업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 성매매 업소의 주차장이나 사유도로로 이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성매매업소 밀집지역과 떨어진 곳, 무허가 쪽방과 가건물 등에서도 수십 곳의 업소가 비밀영업을 하고 있다는 점까지 감안해보면 정부 땅에서 성매매를 해온 업소들의 수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정작 이에 대해 성매매업소 업주들은 “불법으로 땅을 점거해 건물을 짓고 영업을 해온 것이 어제오늘 일이냐”며 “전혀 이상할 것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업주들에 따르면 이들은 이미 40~50년 전부터 국가 소유의 땅을 무단점거해서 성매매 영업을 해왔다고 한다. 한 업주는 “국가 소유의 땅에서 성매매를 해온 것은 수십년 전부터 있어온 일이다. 공유지를 불법점거해 영업을 해왔다는 것은 정부도 우리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정부로부터 별다른 제제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즉 공유지를 불법 점거해 성매매업을 해왔지만 한 번도 강제철거를 당하거나 그로 인해 영업정지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공유지를 불법으로 점거, 성매매 영업을 해왔음에도 사실상 이를 방조한 것은 국가가 아니냐는 것이 업주들의 주장이다.
▲ 지난 2004년 가을 성매매특별법이 발효된 이후 썰렁해진 청량리 588 집창촌 골목 풍경. | ||
하지만 업주들은 남의 땅에서 어떻게 영업을 해왔느냐는 질문에 “땅주인에게 돈을 냈다”고 답변했다. 땅주인이 국가일 경우 행정당국에 돈을 내고 빌려 썼다는 말이다. 몇몇 과거 행정당국으로부터 철거명령 대신 돈을 내라는 공문을 받은 기억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 불법점거에 대한 과태료 혹은 땅을 빌려주는 임대료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
한 업주는 당시 기억을 되살리며 “공유지에서 영업을 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정부가 땅 사용료를 요구한 것은 국가 땅을 불법점거했어도 돈만 내면 영업을 해도 무방하다는 의미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뒤늦게 정부가 지난 2004년 성매매특별법을 시행하며 집창촌을 집중 단속하는 것을 두고 업주들이 반발하며 비아냥거렸던 이유도 이런 과거사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업주들이 실제로 임대료나 사용료조로 돈을 냈는지, 냈다면 어떤 형식으로 누구에게 얼마를 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곳 업주들이 실제 업소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는 15명 중에 한 명꼴에 불과한 상태라고 한다. 즉 업소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해도 대부분의 업주들은 해당 건물의 주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더구나 건물주 역시 실제 주인이 아니라 명의만 빌려 등재된 경우가 많다는 게 윤락가 안팎에선 공공연한 비밀. 업주들이 실제 건물주가 국가나 자자체에 임대료 형식의 돈을 지불해왔는지,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일일이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전농동 윤락가 일대 국유지를 관할하고 있는 동대문구청 관련부서 측의 얘기는 다르다. 구청 측은 공유지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성매매업소 업주들에게 공문을 보내 임대료를 요구하거나 징수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한 구청 관계자는 “해당 번지는 분명 나라땅이 맞다. 업소들이 점유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임대료를 받지는 않았다. 측량 자체가 안 되는 불보합지일 경우 임대료를 부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즉 땅 사용료를 부과하려면 먼저 누가 어느 정도를 점유하고 있는지 정확히 측량해야 하는데 문제의 번지처럼 한 지번에 여러 업소들이 걸쳐 있는 경우 측량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매매 업소들이 점유한 문제의 공유지는 불보합지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해당 공유지를 관할하는 구청 관계자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업주 측으로부터 부과금을 징수한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구청 관계자의 말이 맞다면 업주들은 나라땅을 불법으로 점유하고도 임대료는커녕 최소한의 과태료조차 내지 않은 채 성매매영업을 계속해왔다는 말이 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뒷거래’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정부나 지자체가 성매매업주를 상대로 ‘임대업’을 해왔는지 여부가 아니라 성매매업소가 오랫동안 나라땅에서 아무 제재없이 집단적으로 영업을 해왔다는 사실 그 자체다.
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비단 ‘청량리 588’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집창촌 업소 가운데 상당수가 국·공유지를 ‘점거’한 채 영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가 한쪽에서는 국유지에서 집체적으로 성매매영업이 이뤄지는 것을 방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성매매 근절을 외치는 모습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