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4년 3월 8일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불법 대선자금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 중수부장은 이 수사를 계기로 국민스타로 발돋움했다. 연합뉴스 | ||
송광수 전 검찰총장이 4월 19일 숭실대 강연에서 한 문제의 발언이다. 파문이 확산되면서 그의 발언이 여기저기 다소 다른 뉘앙스로 소개되고 있어 더 억측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한 결과 송 전 총장의 정확한 ‘워딩’(wording)은 이랬다.
그의 표현을 잘 살펴보면, 검찰은 어떻게 수사를 하더라도 서로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여야 양측에 불만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고충의 토로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한 발언 중에 ‘10분의 2, 3을 찾았더니’라는 표현을 놓고 야당 측은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무심코’ 한 발언에 진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송 전 총장의 발언 이후 지난 2004년 5월 대검 중수부의 불법대선자금 수사 발표에 대한 의혹이 다시 강하게 제기되자 여야는 한목소리로 국정조사나 특검을 주장하고 나섰다. 김성호 법무장관도 “(정치권이) 원한다면 대선자금 사용처를 조사할 용의도 있다”고 밝히고 있다. 불법대선자금 수사에서 아직도 남아 있는 의혹이 무엇일까.
2004년 3월 8일 검찰은 불법대선자금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노 대통령 탄핵과 4·15 총선이 맞물리면서 검찰 수사 발표는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때마침 노 대통령은 “내가 받은 불법자금이 한나라당보다 10분의 1 이상 나오면 그만두겠다”는 특유의 폭탄선언을 하며 정국의 긴장감을 더 부채질했다.
검찰 발표 결과는 한나라당 823억 2000만 원, 노 캠프 113억 8700만 원이었다. 단순 수치상으로는 ‘10분의 1.4’였다. “어쨌든 10분의 1이 넘었으니 노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는 비난과 “반올림하면 결국 10분의 1 수준 아니냐”는 반박도 나왔다. 5월 21일의 최종 수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노 캠프 쪽에 추가로 6억 원이 더 간 정황이 확인됐지만 대세에 영향을 미칠 수치는 아니었다. 송 전 총장의 발언대로 당시 수사에서 드러난 노 캠프의 대선자금이 10분의 2, 10분의 3 수준이라면 최소한 200억 안팎은 되는 셈이니 얼핏 봐도 100억 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당시 검찰 수사 결과와 관련해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 의혹으로는 검찰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바로 전날인 7일 밤 전격적으로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씨가 삼성으로부터 30억 원을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 이전까지 노 캠프의 대선자금은 83억여 원이었다. 정확히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 되는 셈이다. 야당 일각에서는 “검찰이 83억 원으로 발표하려 했다가 정확히 10분의 1이 되니까 너무 짜 맞춘 느낌이 들어서 막판에 30억 원을 끼워넣은 것 아니겠느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두 번째는 삼성의 800억 원대 무기명 채권에 대한 수사 미진 부분이다. 당시 검찰은 이 채권 중 한나라당에 300억 원, 노 캠프에 15억 원이 갔다고 발표했다. 나머지 부분은 의문부호로 남겨두고 수사를 종결했다. 그리고 이듬해 12월 검찰은 한나라당에 24억 7000만 원, 노 캠프에 6억 원의 삼성 채권이 추가로 더 간 사실을 발표했다. 즉 한나라당이 총 324억 7000만 원, 노 캠프가 21억 원인 셈이다. 나머지 443억 원의 채권은 삼성이 보관하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한 의혹은 무성했다. 삼성이 400억 원대의 채권을 3년 이상 보관만 하고 있었다는 점을 믿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검찰도 “충분히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유통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그러자 파문이 커지면서 삼성이 나중에 채권을 되돌려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 유력하게 대두됐다. 송 전 총장이 무심코 ‘10분의 2, 3’이라고 발언한 것도 혹시 이 의문의 400억 원대 채권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세 번째 의혹은 노 대통령의 위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이다. 당시 안대희 중수부장은 노 대통령에 대한 혐의 여부에 대한 판단을 사실상 유보하는 듯한 입장을 취했다. 혐의는 인정되지만 형사소추권 면제라는 헌법 규정이 있다는 설명도 나왔다. 그렇다면 대통령직을 물러나면 수사가 가능할까. 이에 대해 안 중수부장은 “그때까지 내가 검사할 수 있겠느냐”며 답변을 얼버무렸다.
최근 의혹이 다시 불거지자 한나라당 측은 “당시 중수부의 불법대선자금 수사 기록을 공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검찰에 아무리 요청을 해도 수사 기록에 대해서는 ‘절대 공개 불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당시 김성래 썬앤문 부회장 등 많은 피의자 및 참고인들이 검찰 조사에서 노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진술을 했을 텐데도 검찰은 이를 덮어버린 의혹이 많다”고 주장했다.
반면 여권의 한 인사는 “선거 때가 되니까 야당 특유의 ‘시비를 위한 시비’를 거는 것 아니냐”면서 “마음대로 검찰을 주무르던 과거의 잣대로 현 정부를 보지 마라”고 말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