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안양교도소는 교정·교화 활동의 일환으로 두 달여 동안 재소자들의 문학작품을 공모해 <달아 달아 푸른 달아>라는 제목의 창작문예집(창간호)을 냈다. ‘푸른 달’은 푸른 수의를 상징하는 것이다. 교도소 최초의 이 문학작품 공모전에는 무려 700여 편의 작품이 응모됐고 심사위원단이 시·수필·서간문·독후감 등 44편을 추려내 문예집에 실었다. 시의 경우 응모작 400여 편 가운데 10여 편이 실렸는데 여기에 ‘사진 속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유영철의 자작시가 포함됐던 것.
유영철은 12행짜리 이 시에서 ‘어느 날 가족 모두를 끌어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사진첩 속에서 꺼내어 본 아들의 심정’을 차분한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 유영철은 온 가족이 모인 그 날 ‘너무나 행복한’ 마음에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았다고 시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특히 “어머니 당신 품에 자식 모두를 안고 싶어/ 정말 힘들게도 겨우 모두를 안고 계신다”는 마지막 연에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진다.
재소자 창작문예집을 기획·심사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유영철이 크게 문제를 일으켰던 재소자는 아니어서 뚜렷하게 기억에 남진 않는다”면서 “하지만 유영철이 쓴 어머니의 사랑에 관한 시를 보는 순간 마음에 퍽 와 닿았다. 차분하면서도 진솔한 시가 아마추어치고는 잘 쓴 시로 보여 당선작에 넣게 되었고 장려상 정도를 준 것으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그때 내가 유영철을 좀 더 가깝게 대하고 세심하게 보살폈더라면 그도 이 같은 흉악범은 되지 않았을지 모르겠다”면서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브레이크 없는 살인기계’였던 유영철이었지만 자신의 어머니에게만큼은 그냥 ‘평범한 아들’로 남고 싶어 했던 흔적은 또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2004년 9월 6일 연쇄살인 혐의로 기소돼 첫 공판이 열렸을 때 유영철은 이 같은 내용의 진술을 했다. 체포 당시 범행 때 신었던 구두를 신고 있던 유영철이 기수대(기동수사대)로 찾아온 어머니가 대성통곡을 하는 모습을 보고 ‘범행을 부인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뒤 맨손으로 구두 밑창을 뜯어내 숨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영철은 자신의 어머니만 가슴 한 구석에 품었을 뿐 세상의 수많은 어머니에 대해선 전혀 눈길을 돌리지 못했다. 유영철은 살인행각을 벌이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그때 그 자작시를 적어놓은 노트를 체포 당시까지 거주했던 자신의 오피스텔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참혹하게 목숨을 앗아간 사람들과 그들의 어머니들…. 그의 시를 보면서 어쩌면 많은 어머니들의 가슴에 자식을 묻게 한 죄야말로 그가 저지른 가장 큰 범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유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