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인터넷 무료접속 서비스를 발표하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 연합뉴스 | ||
손 사장은 일본에서 IT업계의 풍운아로 불린다. 1981년 PC용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인터넷업계에 발을 디딘 그는 일본 IT역사의 선두주자였다. 소프트뱅크는 포털사이트인 야후재팬을 비롯, 초고속인터넷(ADSL) 사업체인 야후BB, 유선전화 일본텔레콤, 무선전화 소프트뱅크 모바일 등을 거느린 일본 최대 IT기업군이다. 손 사장 행동의 원동력에는 최종 목표 달성을 향한 ‘집념’이 자리한다. 이는 IT 거품 붕괴 뒤의 위기 극복 과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소프트뱅크는 IT 거품 붕괴 직후 야 BB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일본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ADSL의 무료배포였다. 전례 없는 무료배포에 업계에서는 ‘무모한 일’ ‘곧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무료배포로 시장 점유율을 크게 늘린 야후BB는 현재 소프트뱅크에서 최대 이익을 내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야후BB는 물론 일본텔레콤, 소프트뱅크 모바일 등 현재 주력사업군 모두 IT거품 붕괴 이후 시작한 사업들이다.
그동안 손 사장은 19세 때 인생목표를 정했다고 말해왔다. ‘20대 때 이름을 알리고 30대 때 수천억 엔의 군자금을 모아, 40대 때 수조 엔 규모의 승부에 나선다. 50대 때 이를 완성하고, 60대 때 후계자에게 넘겨 준다’는 것이었다. 손 사장의 현재 나이는 만 50세. 최대 승부수를 뛰우는 시점이 된 셈이다.
현재의 최대 승부처는 무선전화 사업이다. 손 사장은 지난해 4월 세계적인 휴대전화업체인 보다폰 일본법인을 2조 엔에 사들여 NTT 도코모와 KDDI가 양분해온 일본무선전화시장에 참여했다. ‘ADSL로 PC 세계에 인터넷혁명이 일어난 것처럼 휴대전화 세계에도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것이 참여 명분이었다. 당시 기업매수는 은행을 제외한 일본 최대 규모였다. 천문학적 투자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 우려로 소프트뱅크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지만 불과 1년 만에 세간의 평가를 완전히 되돌려 놓았다.
이는 지난 8일 발표된 소프트뱅크의 2006 회계연도(2006.4~2007.3)의 실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소프트뱅크는 매출액 2조 5442억 엔, 영업이익 2710억 엔으로 모두 신기록을 세웠다. 특히 소프트뱅크 모바일의 영업이익은 1년 전에 비해 76.4% 증가한 1346억 엔에 달해 견인차 역할을 했다. 당시 손 사장은 회견에서 “보다폰 재팬의 인수는 성공이었는가? 그 답은 예스”라고 자문자답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부터는 휴대전화사업이 연결 결산대상이 되면서 매출액이 전기대비 약 1.3배 증가했으며, 영업이익도 3.4배 늘었다. 특히 영업이익 가운데 휴대전화사업 비율은 57%를 차지했다. 침몰해 가는 배의 인수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 보다폰 인수로 또다른 도약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된 번호이동성제 시행에서도 소프트뱅크는 신규계약에서 해약건수를 뺀 순증가가 70만 건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소프트뱅크 휴대전화 가입자끼리는 저렴한 기본료 외에 통화가 무료인 상품을 내놓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가격 파괴를 주도하고 있다.
▲ 한창우 마루한 회장. 연합뉴스 | ||
작년에는 프로야구단도 인수,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퍼시픽 리그 최고 구단으로 키우며 일본 프로야구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 차원의 저출산 문제 대응책으로 사원들이 셋째 아이를 낳을 경우 100만 엔, 넷째 300만 엔, 다섯째 500만 엔씩의 출산 장려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을 내놓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지자체나 일부 기업이 출산 보너스를 지급하고 있지만 기업에서 이 같은 축하금을 주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손 사장이 IT업계의 ‘미다스의 손’이라면 한 회장은 일본 최고의 오락산업인 파친코로 일가를 이뤄내면서 ‘파친코 제왕’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회사명 ‘마루한’은 파친코에 사용되는 ‘구슬’을 뜻하는 일본어인 ‘마루’와 한창우 회장의 ‘한’을 합친 이름이다. 그를 태어나게 한 나라 한국과 그를 성장시킨 나라 일본을 고려한 셈이다. 마루한은 현재 본거지인 나고야를 중심으로 현재 일본전역에 현대식 점포 214개를 운영하고 있다. 종업원만 9000명에 달한다. 95년에는 도쿄 중심부인 시부야에 7층짜리 건물 전체를 파친코 매장으로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마루한의 회원고객은 100만 명. 매출이나 회사 규모면에서 일본 파친코 업계 1위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규점포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2005년 매출 1조 엔 돌파 때에는 지바 마쿠하리 국제전시장에 9000명을 초청한 초대형 호화행사를 개최해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온 한 회장의 인생 역정은 지금이야 자수성가, 성공신화로 포장되지만 당시에는 굴곡 그 자체였다. 경남 삼천포(현 사천시) 출생으로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일본행 밀항선을 탔다. 일제시대 징용으로 끌려갔다 일본에 정착한 큰형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검정고시로 고졸 자격을 딴 후 호세이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교토에서 매형의 파친코 매장을 인수하면서 업계에 발을 디딘 뒤 볼링장 운영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지만 일본의 볼링 열기가 식으면서 고통에 처하기도 했다. 한 회장은 이후 볼링사업을 접고 대도시 교외에 적합한 대형 파친코로 사업을 전환, 고객 제일주의에 초점을 맞춘 카페형 시설을 만들며 각광을 받기 시작해 오늘을 일궜다. 한 회장은 그동안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받쳐준 것으로 헝그리 정신과 챌린지 정신을 강조해왔다.
이런 한 회장은 요즘도 ‘매출액 5조 엔 목표’를 강조하면서 현장을 누비고 있다. 파친코 업계에서 5조 엔이 갖는 의미는 상상 이상이다. 2005년 일본 파친코 업계의 총 매출액은 29조 4800억 엔. 2005년 회계연도 매출액 1조 3000억 엔의 마루한 입장에서는 ‘먼’ 목표다. 그럼에도 5조 엔을 강조하는 것은 높은 전략목표를 통해 회사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일본 파친코 업계가 놓여있는 위기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저출산 고령화 추세로 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거품붕괴 이후 파친코를 멀리했던 일반인들은 경제상황이 나아진 지금도 좀체 매장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과거의 도박성보다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레저 지향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감독 당국 역시 7월부터 도박성 강한 기계보다 레저 감각의 기계 도입을 적극 권장하고 있는 상태다.
한 회장은 “일본발 국제문화는 그동안 인스턴트라면, 가라오케 등에 불과했다”며 “파친코를 제3의 문화로 규정해 해외에 수출하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최근 들어서는 그동안 쌓은 부를 바탕으로 모국과 재외동포들을 위한 지원 사업은 물론 마루한컵 한·일 여자프로골프 대항전을 주최하고 있기도 하다.
박용채 재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