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부자증세’를 주장하는 피케티식 경제해법에 우려를 나타내며 반박 세미나를 계획하는 등 분주하다. 사진은 전경련회관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21세기 자본>은 847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다 가격도 3만 3000원이지만, 예약 판매만 5000부에 이를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피케티는 이 책에서 지난 300년 동안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소득과 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소수의 부유계층에 자본이 집중돼 분배구조의 불평등이 악화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그는 경제적 불평등을 낳는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파헤치는데,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늘 높기 때문에 경제적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임대료와 이자 등 자본이 스스로 증식해 얻는 소득이 임금 등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을 웃돌기 때문에 부자와 빈자 사이에 소득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을 바로 잡으려면 상위 0.5∼1% 고소득층에 80∼90%의 누진소득세를 물리고, 전 세계 모든 금융·비금융 자산에 최고 10%의 누진자본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해법을 내놓았다.
재계가 책 한 권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배경에는 그의 주장이 한국사회를 자극할 정도로 파격적인 데다, 이로 인해 자칫 ‘제2의 마이클 샌델 신드롬’이 일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10년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발간돼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정의가 사회경제적 갈등의 중심 이슈로 부각됐던 현상이 재연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에는 정의 열풍이라고 할 정도였다”면서 “샌델의 초청강연과 정의 관련 서적 발간이 잇따랐고, 특히 정치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2010년 5월 24일 출간 후 2011년 4월까지 11개월 만에 100만 부를 돌파했다. 이듬해까지 120만 부가 넘게 팔린 것으로 전해진다. 소설이나 처세서가 아닌 인문서가 밀리언셀러가 된 것은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당시의 정치 상황에 만들어낸 한국적 현상이란 분석까지 나왔다.
‘정의’에 대한 열풍은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과 대선까지 여야 정치권 가릴 것 없이 복지를 앞세우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특히 원청-하청 기업 간 ‘갑을 관계’의 불평등 시정, 소득불균형과 기업들의 불공정 관행을 겨냥한 경제민주화가 주된 공약으로 등장하게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도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했기 때문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박 대통령의 집권 1년차인 지난해 일감몰아주기 규제, 순환출자 금지, 하도급법 개정 등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으로 몸살을 앓았던 재벌 기업들로선 다시 듣기도 싫은 단어가 ‘정의’였던 셈이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반박 성격의 도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바로읽기>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피케티의 책이 샌델의 책처럼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한국 사회가 다시 경제적 불평등이란 담론 속으로 빠져든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그런 정서가 정치권에 자극을 주고, 기업들에게 큰 부담을 주는 정책 변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게 가장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의 우려대로 정치권엔 이미 ‘피케티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마저도 한국어판이 나오기 전인 지난 8월 국회 민생정치연구회 주최 세미나에서 “세계적으로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지만 개인적으로는 피케티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을 정도다. 더욱이 피케티는 19일 1박2일 일정으로 직접 한국을 찾는다. 그의 방한은 단순한 출판 기념 차원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본격적인 공론화의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이에 따라 재계는 일단 피케티의 논거를 반박하는 세미나를 잇달아 계획하고 있다. 피케티 현상이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속내가 역력하다. 그의 방한에 집중될 시선들을 겨냥한 재 뿌리기 성격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아시아금융학회와 함께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타워에서 ‘피케티 21세기 자본론과 한국 경제’란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다. 한 관계자는 “보수-진보로 나뉜 진영논리에 따라 피케티의 책을 바라볼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기업의 입장에서 피케티의 논리를 평가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제>는 보수적 우파 자유주의 학자 7명이 참여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바로읽기>를 펴냈다. 이 책에서 전경련의 유관기관인 자유경제원의 현진권 원장은 “성장이 빈곤층의 경제적 희생에 의해 생겼다는 제로섬게임처럼 생각하는 피케티의 사고가 우리 사회에 퍼지면 우리는 다시 빈곤에 빠져 허덕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좌승희 KDI(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불평등으로 발생한 경쟁의식과 동기부여가 성장을 낳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재계가 피케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재계 일각에선 피케티의 책에 정치적 시선이 가미되는 것은 피케티가 자초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피케티는 고국인 프랑스의 2012년 대선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의 ‘고소득층 75% 소득세’ 공약을 지지했다. 하지만 이 공약은 위헌판결을 받았다. 올랑드는 경제성장률 급락과 실업률 급등 등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지난 3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자 시장주의자인 마뉘엘 발스를 총리로 임명하기도 했다. 피케티의 이론적 근거가 설령 타당하다손 치더라도, 현실적용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만들어져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현 상황은 피케티가 제기한 경제적 불평등 문제에 가장 뜨겁게 반응할 정치, 경제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피케티의 주장에 반박하는 세미나를 하고 책을 펴낸다고 해서 세월호 참사로 형성된 정부 불신에다, 경기침체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며 “피케티가 주장한 누진적 소득세율 인상을 통한 자본수익률 억제, 자본 규제 강화 등을 둘러싼 논쟁은 어쩔 수 없이 가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웅채 언론인
















